일기장

앞으로의 계획

2016.01.12 18:46

설치형 블로그로 이전할 생각이다


그나마 할 줄 아는게 메갤 다루면서 xe 조금 익힌 것밖에 없는데


xe로는 블로그 만들기가 시망인거 같아서 wp를 새로 배워야 할 거 같다.


그와 동시에 개인 홈페이지(겸 블로그 메인페이지)도 하나 만들고


도메인도 구입할 예정이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다. 새로 배워야 하는거라...


홈페이지 따로 블로그 따로 할까 생각해봤는데


딱히 홈페이지에 쓸만한 것도 별로 없고 해서 그냥 블로그랑 같이 묶어서 만들려고 한다.


현재 운영중인 메탈갤 서버에 같이 올려서 운영하면 될듯.


이 블로그의 온갖 쓰레기글들과 뻘글 똥글들은 놔두고 갈 예정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학교에서 오며가며 가끔 마주치는 고양이 한 마리가 있다.


누군가가 먹이를 주는 거 같은데, 나는 먹이를 안 줘서 그런지 경계하는지라 가까이 간 적은 없다.


그래도 앉아있는 걸 구경하는 정도로는 도망을 가지 않기 때문에 몇 번 구경을 했는데,


그 고양이는 할 일이 없으면 자동차 밑이나 나무 밑, 혹은 바위 위에 앉아서 식빵자세를 하고 몇시간이고 계속 앉아서 졸고 있다.


내가 가면 눈을 떠서 쳐다보고, 멀리 이동하면 다시 눈을 감고 조는 것을 반복한다.


아마 그 자리에 없을 때는 어디 먹이를 구하러 가던가 다른 고양이를 만나거나(다른 장소에서 다른 고양이랑 놀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하는 경우일 것이다.


어떤 때는, 고양이가 앉아 있는 것을 목격하고 나서 세 시간 정도 후에 그쪽 길을 다시 지나가는데 여전히 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본 적도 있다.


결국, 그 고양이는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앉아서 졸면서 보내는 것이다.


하기야 고양이가 할 일이 얼마나 많이 있겠는가? 심지어 주변에 아줌마들이 먹이까지 갖다 주니까 힘들게 쓰레기통을 뒤질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문득 그 고양이가 나랑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그저 아무 것도 안 하고 자리에 앉아서 졸면서 보내는 고양이, 남이 갖다 주는 음식이나 먹고 가끔 놀러 다니고, 그러지 않을 때는 그저 자리에 앉아서 사람들이 오면 구경이나 하면서 생을 살아가는 고양이.


과연 그 삶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물론, 삶에 목적이나 이유 따위는 없다. 모든 존재는 궁극적으로 우연히 발생해서 "그저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라면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비록 형이상학적 허상 따위는 없을지라도 그 "삶" 내에서 어떤 이루고 싶은 목적이나 꿈 같은 것이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를 위해 살아가며 인생에 스스로 의미를 부여한다.


이것이, 정상적이고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건설적인" 삶의 자세이다. 그렇지 않고, 아무 목적이나 꿈이나 희망 따위가 없이 그냥 살아가는 삶을 "무의미한 삶"이라고 한다.


밤중에 집으로 돌아갈 때, 가끔 생각한다. 오늘 나는 무엇을 하면서 24시간을 보냈는가? 그에 대한 대답은,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다" 이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이러한 삶을 살아왔다.


최소한 표면적으로는, 내실 따위 없더라도 그저 표면적으로 본다면 무언가를 하며 살아온 적도 있다. 물론 그것들은 지금에 와서는 아무 쓸모도 없긴 하지만, 최소한 나는 그 순간에는 가만히 앉아서 졸면서 지낸 것이 아니라 분명 무언가라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아무것도 하기 싫다.


하루하루 고양이처럼, 용돈이나 받고 무의미하게 하루하루를 아무 것도 안 하는 채로 보내면서, 무언가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냥 평생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살면 좋지 않을까 싶을 정도이다.


그 고양이는, 지금껏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남은 생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그 고양이와 내가 다른 점은, 나는 언젠가는 무언가를 하도록 "강제지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언제까지고 부모님께 손 벌려가며 살아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중에 내가 무언가를, 그것에 무엇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무언가"를 "하면서" 살게 된다면, 과연 그것이 실제로 그 무언가를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고양이가 평생 앉아 있지 못하고 언젠가는 밥을 먹고 똥을 싸기 위해 일어나야 하는 것처럼, 강제로 일어나서 무언가를 하는 행위를 "한다"라고 볼 수 있을까?


그것은 궁극적으로는 아무 것도 안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나는 그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금 이 순간도 그저 앉아 있고 싶을 뿐이다. 아무 의미 없이 그저 살아간다는 것이 내 내면을 고통스럽게 할 지라도, 그 내면에서는 여전히 무언가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 고양이가 내 모습과 참 닮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1. 2015.12.16 02:48

    비밀댓글입니다

근황

2015.06.08 14:59

1. 취직은 거의 포기

내 인생은 어떻게 되려나 모르겠다. 이뭐병...

 

2. 라노벨 감상중

다 늦은 나이에 뒤늦게 입덕해서 뭘 어쩌자는 건지 모르겠다. 10대 꼬꼬마들이나 읽는 책들인데... 근데 내 정신연령이 딱 중고딩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재밌긴 하다. 가장 최근에는 "개와 공주"라는 걸 읽었는데 뒷맛이 매우 찝찝해서 짜증...

 

3. 시드사운드 앨범 수집중

지금 14장인가 15장인가 모았는데, 아직 한참 더 남았다. 재밌는게, "백야" 앨범이 예전엔 6만원 넘게 가던게 이젠 2만원 정도면 구할 수 있다. 물론 파는 사람이 없어서 문제지만... 시드사운드 자체가 한물 가서 그런건지는 모르겠는데 안습이다. 이것도 역시 뒤늦게 입문해서 아무도 안 알아주지만 혼자 덕질하는중...

 

 

 

 

요새 메탈을 잘 안들어서 딱히 블로그에 쓸 만한 글도 없다. 안드로이드 롬질이라든지 이어폰 관련해서 글 몇개 쓴거 빼고는 없다. 근데 내가 쓴 티타늄백업 같은 글이 네이버 검색결과 최상위에 링크되는 바람에 블로그 방문자수는 확 늘었다. 갤포아 루팅 관련 글은 누가 지식인에 올려놓는 바람에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다.

 

요즘은 머리가 잘 안 돌아가서 똥글도 못 싸겠다. 가끔씩 생각나서 키보드를 잡곤 하는데, 중간쯤 쓰다가 막혀서 결국 다 지우고 접어버리곤 한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1. nick 2015.06.09 23:42 신고

    매갤질하다가 우연히 블로그 들어와서 쓰신 글들 읽어보았습니다.

    나름대로 고민이 많으신 것 같네요.

    원래 남 설득하는 일이 가장 힘든지라
    정말 관여안하지만
    제가 예전에 겪어던 경험들과 비슷하기도 하고,
    몇 마디 하고 싶어 적어봅니다.


    저도 중딩때까지는 모범생이었다가 DC에 게임질에 빠져 고딩때 시궁창테크트리를 타 본 경험이 있습니다.

    그러다 반수 아닌 반수를 할 때
    연락처 싹 다 정리한채로 은거생활을 하다보니 답답한 데 딱히 배설할 곳은 없어서 블로그나 SNS에 내 자신에게 혼자 대화를 했습니다. (관념, 일기, 그 때의 기분등등)

    그러다 군대가서 정신차린 케이스인 데...
    하도 병신짓을 하니까 매일 갈굼당하고 쳐맞았습니다.
    그렇게 매일 당하니까 악이 받쳐서라도 개선되더군요.
    (요지를 벗어나니 넘어갑니다.)

    여튼 살면서 "방향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어렸을 때부터 꿈이 뭐냐고 물었을 때 대부분 "직업"을 주입시키는 데, 이 자체가 잘못된 것죠.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가?"가 정답인 데,
    이를 알려면 자기 자신을 한 번 분석해보세요.

    두 가지가 있는 데
    경험적인 것과 객관적인 데이터가 있습니다.
    경험적인거야 이미 충분히 자기 자신이 어떻게 살아오셨는 지 아시는 것 같네요. 이를 7세부터 현재까지 ±7점으로 쭉 표기해보세요. 살면서 계속 불행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각각의 느낌을 적어보세요.
    그렇게 하나 경험적인 데이터가 만들어집니다.
    객관적인 데이터는 MBTI, Strength Finder, 다중지능 같은 검사지로 다 보시고 공통점을 추출해보세요.

    그렇게 두 가지 데이터에서 뽑아내면 구체적으로 "내 강점/약점, 흥미"가 나옵니다.

    이를 보고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가?"라는 힌트가 나옵니다.


    광고같이 뭐 주저리 적었는 데
    해보실 지 안해보실지는 마음대로 하시고...

    그냥 귀찮고 아무 생각없이 물 흘러가듯 살고 싶으시면 안하셔도 됩니다.

    다만 전 "양산형 복제품"이 되기 싫었기 때문에 저런 방법들을 써서 내가 어떤 사람인 지 파악하고, 내가 지향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개인적인 배설은 그만하고, 사람 좀 만나보세요.
    저랑 비슷하게 존재욕, 표출욕이 많으신 분같은 데..
    가장 일반적인 같은 관심사를 가진 모임이지만 성격을 고치고 싶으시면 봉사단체에 기여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이만 줄입니다.

  2. BlogIcon 배몰이꾼 2017.01.30 12:26 신고

    동국대 법대 다니시면 취업 충분히 하실 텐데요..
    명문대 다니시는 분이 취직 포기하시면 저 같은 지방대생은..

나는 어릴 적부터 이문열같은 책을 읽으면서 지적 허영심과 의미없는 만연체 등을 익히고, 그로 인해 글을 좆같이 길게 늘여쓰는 법을 터득했다.

 

이러한 글쓰기 방식은, 중고등학교 때에는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되었다. 뭘 쓰라고 할때 보통 글자 수나 원고지 쪽 수로 세기 때문에, 글을 길게 늘여쓰면 같은 주제와 내용을 갖고도 친구들보다 훨씬 길게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심각한 마이너스가 되고 있다. 기본적으로 글이란, 같은 내용을 다룰 경우 최대한 간결하고 짧고 정확하게 작성하는 글이 좋은 글이다. 또한 그렇게 써야 가독성이 뛰어난 글이 된다.

 

나처럼 좆같이 늘여쓰는 글은, 딱 봐도 읽기가 싫게 생겼다. 일단 문장 자체가 더러울 뿐더러, 딱 봐도 좆같이 길이가 긴 것이 글을 클릭하자마자 스크롤을 내리고 싶게 만들기 때문이다.

 

근데 문제는, 이를 알고 있으면서도 고치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나는 말이 좀 많은 편이다. 머릿속에 들어있는 잡생각도 많고, 이를 굳이 밖으로 표출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똑같은 리뷰를 쓰더라도 남들보다 더 길게 쓰게 된다.

 

물론 쓸데없는 부분은 과감히 자르는 것이 좋은 글쓰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결코 쉬운 부분이 아니다. 따라서 요즘에는 고민하기 시작했는데, 과연 리뷰 같은걸 쓸 때 어느 정도의 길이로 써야 하는가, 그리고 어떤 부분을 필수적으로 다루고 어느 부분을 날려야 하는가 하는 부분이 고민이 된다.

 

요즘에는, 앨범에 대한 소개나 감상 후기 등을 작성할 때, 굳이 모든 곡 하나하나를 자세히 다뤄야 할 필요가 있나 생각한다. 우선, 일단 귓구멍이 있는 이상 누구나 들어보면 그 음악이 어떻게 되어 있는가 하는 부분은 다 알 수 있다. 예컨대 독후감을 쓴다고 보면, 책의 내용 같은건 읽어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므로 이를 일일히 쓰는 것은 별로 좋은 독후감이 아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짧게만 쓴다면, 읽는 사람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글이 된다. 내가 메킹의 코멘트 제도를 싫어하는 것도 같은 이유인데, 짤막한 코멘트 정도로는 제대로 된 음악 소개나 감상평을 남길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계속 고민을 해 봐야 할 것 같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내가 더러운 문장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나의 꿈은 무엇인가? 솔직히 말하자면, 고등학교 올라와서 수학 성적에 좌절하고 방황하기 시작한 이후부터 나의 꿈은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그 전까지는 확고했다. 과학자가 되어서 연구원에 들어가서 인류에 도움이 되는 과학적 성과를 거두고 싶었다. 그러한 꿈이 좌절되고 나서, 나는 수리 나형을 응시하고 대충 성적 맞춰서 허접스런 학교의 허접스런 학과에 들어가서 대충 허접스럽게 시키는 공부나 하며 살아 왔다.

 

나는, 대학교 1학년 생활을 하면서 앞으로 나는 어떻게 될 것이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고민했다. 그러나 나는 그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없었고, 군대 문제라는 것이 남아 있었기에, 일단 군대에 들어가서 군대 문제도 해결하고 제대하기 전까지 진로 문제도 고민해서 나오기로 했다.

 

그러나 군대에서 2년을 낭비하고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 진로에 대해서 어떠한 작은 결론조차 내리지 못하고 그대로 제대하고 말았다. 나는 한때 공무원을 할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공무원이라는 직업은 훌륭한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뭔가 나의 감정은 일종의 본능 차원에서 그것을 거부했다. 나중에는, “공무원은 합격하기도 하늘의 별 따기만큼 힘들지만, 들어가고 나서도 연봉은 쥐꼬리만큼 밖에 못 벌고 승진조차 한참 걸린다”라는 사실을 핑계로 대면서 공무원을 안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그러한 결론을 내리고 나니 어느덧 4학년이 되어 있었고, 주변의 동기들은 다들 지방공무원 준비나 법원공무원, 혹은 경간부 시험 등을 준비하기 위해 떠나 있었고, 취직을 목표로 준비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솔직히,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고, 심지어 알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그렇게 또 시간을 낭비하다 여름방학쯤 되고 나서부터 비로소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어떤 종류의 회사에 들어가서 어떤 종류의 일을 하고 싶은 건가? 이에 대한 해답은 아직도 전혀 알 수가 없다. 솔직히 말해서, 뭘 하고 싶은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아마 이것은, 애초부터 하고 싶었던 것이 없었기 아닐까 생각한다.

 

군대 이후, 나의 인생의 목적은 단 하나가 되었다. 내가 병신임을 인지하고, 이 세상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하는 잉여라는 점을 자각하고 나서, 나는 “나 혼자만이라도 즐겁게 살자” 라고 결론을 지었다. 어떻게 즐겁게 살 것인가? 이에 대한 해답은 예술에서 찾았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헤비메탈 음악을 매우 좋아한다. 비록 음악 이론이라고는 아무것도 모르고 악기도 다룰 줄 모르지만, 음악을 듣는 순간만큼은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예술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음악만 듣고 있는다고 밥이 쏟아지는 것도 아니고, 누가 신보를 갖다 주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먹고 살 돈이 필요하다. 나는 그러한 돈을, 내 능력껏 취직해서 벌어서 쓰기로 결론지었다. 즉 나는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취직하는 것이고, 그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는 먹고 살면서 예술작품을 감상하기 위함이다.

 

결국, 나는 솔직히 말해서 하고 싶은 “일”이 없는 것이다. 뭔가 생산적인 목표가 전혀 없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소비”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에 취직해서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인 지 마땅한 목표나 야망이 없다. 면접에서 많이 떨어졌던 이유도 아마 여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나는 예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도피해 왔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세상에서 무언가를 성취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두렵고 힘들어서, 계속 하기 싫다는 마음으로 도피해 온 것일지 모른다. 그럼으로써 인생의 목표를 잃고 하고 싶은 것 하나 없이 그저 대충 되는 대로 살자고 생각하며 살아 온 것인지 모른다.

 

나는 인생의 목적을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것으로 했다.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그리 힘이 들지 않는다. 이러한 것을 통해 개인적인 성취를 달성할 거리 또한 많지 않다. 나는 이를 통해, 진로를 정하고 꿈을 정하고 목표를 위해 나아가고자 하는 그 어렵고 힘든 과정에서 도피를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심지어, 나는 지금도 이러한 글이나 쓰면서 도피를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뭔가 생산적이고 쓸모 있는 고민과 행동을 해야 할 지금 이 시기에, 컴퓨터나 붙잡고 별 도움 안 되는 글이나 쓰면서 도피하고 있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아직 사회에 나갈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사회에 나가서 일을 잘 할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다. 뭔가 하고 싶은 것도, 목표도 전혀 없는 나의 정신연령은 아직도 어린애에 머물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물론 그 전에는 멀쩡했다는 것은 아니다

 

내가 멍청하다는 사실은 나 자신이 제일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나마 인간으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던 빈약한 두뇌마저 점점 퇴화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본래 책을 좋아했다. 그래서 많은 책을 읽었고, 수능 언어영역 같은 경우 단 한번도 공부를 한 적이 없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점점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그 뿐만이 아니다. 나는 본래 글 쓰는 행위를 좋아했다. 그래서 나름 인간의 기능을 할 정도로 글을 쓸 수 있었고, 퇴고를 전혀 거치지 않고도 커다란 논리적 오류나 문제점 없는 글을 쓰곤 했다.

 

그러던 것이 어느 순간부터 문장을 올바르게 구성하고 제대로 된 단어를 선택하는 등의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더불어서, 글 자체를 논리적으로 구성하는 능력 또한 심각하게 떨어졌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다. 아무래도 블로그에 싸지른 글들을 보면 최소 2011년도부터 그런 게 아닐까 생각된다.

 

그리고 요새는 심지어, 내가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조차 종종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예컨데 맛폰을 하다가, 갑자기 A라는 어플을 실행할 필요성이 생겨서 홈버튼을 누르고 나갔는데, 홈화면을 보는 순간 갑자기 왜 홈버튼을 눌렀는지 생각이 안 나서 "내가 왜 홈 화면으로 나왔지?" 하고 고민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결국 다시 이전 작업으로 돌아가서, 무엇을 하려고 했었는지 기억해내야만 한다.

 

이렇게 나는 점점 멍청해지고 있다. 이전부터 나는 10년 전 중학교 졸업 때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했었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지켜내지 못하고 오히려 중학생 수준보다 더욱 퇴화하고 있는 것이다.

 

불안하다. 아무리 쓰레기같은 나라도 사회적으로는 정상인으로써 기능하고 살아가고자 하는 소망이 있다. 그런데 이제는 점점 그것이 불가능해진다는 것을 느낀다. 나는 이대로 쓰레기로서의 운명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아무리 나같은 쓰레기라고 할 지라도, 쓰레기로 살고 싶어서 쓰레기로 사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 갈수록 멍청한 두뇌가 더욱 멍청하게 퇴화한다면, 쓰레기에서 벗어나기는 커녕 점점 더 심한 악취를 풍기는 쓰레기로 전락해 나가고 말 것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그것을 무엇이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아주 간단하게 말하자면, 나라는 인간은 매우 지독하게 이기적인 인간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나는 나밖에 모르는 놈이다.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주변인들과 공감하고, 주변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기본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나는 기본적으로 나 자신밖에 모르기 때문이다.

 

군대에서 선임이 했던 말이 있다. "넌 정말, 지독하게 이기적이야." 이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부모님은 나에게, 내가 정이 없다고 말한다. 정확하게는 크면 클수록 정이 점점 사라진다는 것이다. 나도 그렇게 느끼고 있다. 그것이 뭔가 문제가 있고, 인간으로써 뭔가가 결여되어 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점점 나밖에 모르는 인간이 되어 갔다.

 

그럼으로써 드디어 나는 인간으로써의 무언가를 완전히 상실했다고 생각한다.

 

이를 돌이킬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여하튼 이러한 사실은 내가 열등한 인간이며 쓰레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증명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나는 생각한다. 과연 내가 부모님이 돌아가셨을때 눈물을 흘릴 수 있을까? 나는 부모님이 몸이 성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하루에 단 1분도 부모님의 건강을 걱정한 적이 없다. 그러한 사실을 이렇게 문득 깨달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섬뜩함을 느낀다.

 

나는 나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저히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이는 아마도, 내가 나밖에 모르는 인간이기 때문에, 우물 안 개구리가 우물을 조명할 수 없듯이 나 자신을 조명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놀랍게도 나 자신만을 생각한다. 타인의 기분이나 감정 따위를 생각한 적이 없고, 배려할 줄도 모른다. 나는 인간으로써의 중요한 기능 한 가지를 구실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존재는 존재하는 것 자체가 해악이다. 이러한 나 자신이 괴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칠 수 없다. 이미 나는 인간이 아닌 쓰레기로써 완전체로 진화한 것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1. Buddhist 2015.04.07 19:34 신고

    안녕하세요, 실존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며 검색하다가 들어와 글을 몇개 읽었어요.
    많이 고민하신 흔적은 보이지만, 아직 완전체가 아니신 것 같아요.

    1.

    우월한 인간과 열등한 인간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셨는데, 기준이 모호하네요.
    1) 정신적으로 깨달은 사람은 우월한 사람이고 못깨달은 사람은 열등하다인가요?
    2) 사회에서 생산성이 높은 사람이면 우월하고 아니면 열등하다인가요?

    님은 1)의 기준에 따라 우월감을 느끼지만 말로는 아닌 척하고, 2)에 의해서는 열등감을 느끼고 있으신 것 같네요. 어떤 것을 추구하시는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2.

    1)을 기준으로 잡으셨다면 아직 부족하긴 해도 이런 고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우월해질 가능성이 있는 사람입니다.

    2)를 우월함의 기준으로 삼으신다면, 묻겠습니다.
    석기시대, 수렵사회에서도 지금처럼 공부잘하는 사람이 잘나가는 사회였나요?
    본질적으로 우월하다는게 시대와 장소에 따라 보편적인가요?
    각 시대마다 노동의 수요와 공급이 다르고, 그에 따라 노동의 가격이 정해질 뿐이죠.

    사회에서 돈을 얼마 버느냐에 따라 님이 "본질적으로" 우월하거나 열등한 존재라고 할 수 없습니다.

    3.

    님이 왜 이 세상에 해악을 끼치는게 잘못된 건가요? 누구를 위해서? 님이 남에게 피해를 끼치면 안되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나요? 결과적으로 사회가 사회의 유지를 위해 정해놓은 가치관에 얽매여계신 겁니다. 님이 만약 노예제 사회에 태어났다 하더라도 주인 말 잘듣고 "착하게" 살아야 하나요?

    "인간성"이라는 한계를 이성으로 극복하신 것까지는 좋았는데 이제와서 그거에 죄책감과 회의를 느끼시고 있네요. 뭔가 이 세상에 나같은 사람만 있으면 동물의 왕국일 것 같고, 내가 잘못된 인간인 것 같죠? 다른 사람들은 나같지 않길 바라고...그것이 님이 인간으로서 가진 자기반성과 가치추구의 능력입니다.

    착해지라는 뜻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지금 밖에 나가서 돈뺏고 사람 때리라는 뜻은 아닙니다. 있는 그대로를 봐야 불행감에 휩싸이지 않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님의 열등감과 그로 인한 불행감은 기반이 약해요.

    주어진 조건에 지배당하지 말고,
    주어진 조건을 똑바로 보고 인과가 흘러가는 모습을 지켜보시라는 거예요.
    그걸 깨달으면 마음이 평화로워질 겁니다.
    제대로 정신차리고 행복해지세요.

    그때서야 비로소 완전체라 할 수 있고,
    그때부터는 새로운 고민을 시작하는 겁니다.
    어차피 살아있는 목숨, 그 이후로는 어떻게 "잘" 살지 말입니다.

  2. Buddhist 2015.04.07 19:40 신고

    너무 길어서 안읽으시려나. 세줄요약하면

    1. "인간성"이라는 거에 너무 큰 환상을 갖지도,
    2. 그렇다고 너무 비관하지도 마세요.
    3. 자신의 쓰레기임을 아는 것 자체가 이미 훌륭한 첫걸음입니다.

    -모든 존재가 행복하기를_()_

우월한 자들은 자기 자신의 잘못을 돌아볼 줄 안다.

 

그들은 본능적인 욕구보다 이성적인 판단을 우선할 줄 알기 때문에, 어떠한 사건이 발생할 경우 외부에 책임을 돌리고 자기 자신을 방어하고 싶은 욕구보다 상황 자체를 객관적으로 조망하는 이성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자기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 것이 가능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극복해 나가고 이를 통해 성장할 수 있다.

 

반면에 열등한 자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그저 남 탓을 할 뿐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나 또한 그러하다.

 

내가 살아온 삶을 보면 끊임없는 남 탓의 연속이었다.

 

중학교 때는 음악 미술 체육에서 평균 점수를 대폭 깎아먹는 바람에 순위권에서 번번히 밀렸는데, 나는 이를 항상 잘못된 교육정책과 여학생들의 존재 탓을 하며 위안을 삼았다.

 

(그러나 이러한 나 또한 한 순간이나마 우월했던 적이 있다. 음악 미술 체육을 못하는 이유는 내가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인데, 이를 극복하고자 끊임없는 노력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때가, 유일하게 전교 5등을 함으로써 한 자리 석차를 달성했던 때였다.)

 

고등학교 때는 나의 수학 점수가 형편없는 것을, 수학 선생들이 그저 학원에서 돌고 도는 문제들만을 갖고 시험문제를 내는 탓으로 돌렸고, 나아가 입시제도 자체의 문제로 돌렸다.

 

대학교 때는 내가 친구를 못 사귀는 이유를, 주변 동기들이 그저 술이나 좋아하는 멍청한 인간들이라 맨날 술만 마시러 다니기 때문이라는 탓으로 돌렸다.

 

군대에서는, 나를 갈구는 수많은 못된 선임들의 존재와 괴롭힘을 그들이 쓰레기이기 때문인 탓으로 돌렸다.

 

취업 준비를 하면서는, 내가 취업이 안 되는 이유를 학교의 부실한 취업지원 프로그램과 심각한 경기 침체 탓으로 돌렸다.

 

그러나 사실은, 내가 음악 미술 체육을 선천적으로 못 하도록 타고났으면서 딱히 노력도 안 했기 때문에 점수가 낮은 것이고, 수학 점수를 올리려고 학원을 적극적으로 찾아다니고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로 노력했어야 하는 것이 맞고, 친구들과 어울릴 때는 술도 같이 마시러 다니면서 적극적으로 활동해야 하는 것이고, 군대에서는 후임이 눈치껏 빠릿하게 행동해야 하는 것이고, 경기 침체라고 해도 잘난 놈은 취직하게 마련이다.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또한 나는 이러한 사실을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항상 무엇이 닥치면 남 탓을 한다.

 

그리고, 이렇게 남 탓을 하는 것을 멈출 수가 없다.

 

이는 내가 열등하다는 증거일 것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그것은 내가 열등하기 때문이다.

 

열등한 인간과 우월한 인간의 구별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개인적인 판단에 의하면 이는 "본능적 욕구"와 "이성적 판단" 사이의 저울질에 따른 결과로써 구분된다.

 

즉, 우월한 인간일수록 이성적 판단이 본능적 욕구를 능가하고, 열등한 인간일수록 본능적 욕구가 이성적 판단을 넘어선다.

 

그리고 나는 열등한 인간에 속한다.

 

본능적 욕구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욕구로써 "생"에 대한 욕구가 빠질 수 없다. 사실, 모든 본능적 욕구는 생을 지속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생명 객체는 DNA의 운반자로써, DNA가 널리 복제되어 존속하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생에 대한 열망을 강하게 갖는다.

 

나 또한 당연하게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이렇게 무의미하고 열등한 인간이라 할지라도 그 본능적 욕구의 가장 큰 곳에는 생에 대한 욕구가 가득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철저히 이성적으로 판단하자면 이러한 나의 삶의 존속은 무의미하며 해가 될 뿐이다.

 

만약 내가 우월한 인간이었다면, 지금 당장 창문 밖으로 뛰어내린다는 판단을 내리고 행동으로 옮길 것이며, 그것이 옳은 것임을 열등한 나 또한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열등하기 때문에 이러한 판단을 행동으로 옮길 수 없다. 본능이 이성을 훨씬 넘어서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살고 싶고, 죽는 것이 두렵다. 그렇기 때문에, 무의미한 쓰레기같은 삶이라도 연명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나 자신을 바라보는 내 이성은 괴롭지만, 열등한 나의 본성은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본능에 충실할 뿐이다.

 

스스로 생을 끊는 사람들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을 것이다. 하나는 깨우친 자들이며, 다른 하나는 어리석은 자들이다. 깨우친 자들이란, 자신의 삶의 존속이 더 이상 의미가 없으며 때에 따라서는 오히려 해만 끼친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실천에 옮긴 사람이며, 어리석은 자들이란 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자들이다.

 

전자의 경우는 철저하게 이성적인 판단에 의존한 결과로써, 지극히도 우월한 인간이다. 설령 그들의 객관적인 삶의 모습이나 살아온 인생이 나 자신보다 열등하거나 쓰레기같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위와 같은 점에서 나보다 우월할 수밖에 없다. 후자의 경우는 언급할 필요 없이 열등한 인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행위는 순간적인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오로지 우월한 자들만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다.

 

바로 이것이, 내가 이러한 무의미한 삶을 연명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열등하고, 생에 대한 욕망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계속 쓰레기를 생산해내고 말 것이다.

 

열등한 인간은 존재 자체가 비극이다. 나는 나 자신을 보면서 비극을 깨닫는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1. BlogIcon 공감자 2016.05.04 23:20 신고

    제가 계속 생각했던 내용이네요. 저는 고생의 끝이 행복이라면 또한 행복의 끝은 고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그것의 반복인 것 같아요. 그냥 계속 고통을 겪을 때마다 멍청하게 이제 행복이 올거라며 자기위로를 하는 일이 반복되겠죠. 되게 삶이 무의미해지고 왜 굳이 살아야하나 나는 차라리 아무것도 느끼고 싶지않다 나는 이 굴레를 내가 스스로 끊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결국 안죽는 내가 이상했거든요. 왜 죽으려고 하지않지 왜 무의미한삶을 반복하지. 본능이라고 하셨는데 저는 그게 죽음 뒤에 뭐가있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때문인지 아니면 죽을 때 느낄 고통때문인지 궁금해요. 그리고 왜우리는 고통을 바로 없애는 죽음이 있음에도 감내하고 살려고 발버둥칠까요. 어떻게 우리는 그런본능을 갖게된 걸까요. 어디에 박힌걸까요. 혹시 고민해보신적 있으신가요

    • BlogIcon WeirdSoup 2016.05.12 16:09 신고

      요새 블로그 확인을 안해서 답글이 늦었습니다.

      "본능적 욕구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욕구로써 "생"에 대한 욕구가 빠질 수 없다. 사실, 모든 본능적 욕구는 생을 지속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생명 객체는 DNA의 운반자로써, DNA가 널리 복제되어 존속하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생에 대한 열망을 강하게 갖는다."

      본문 중간에 언급해놨죠. 이건 생물학적으로도 사실이기 때문에, 모든 객체가 기본적인 삶에 대한 욕망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리고 글 쓰는 당시엔 한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는데, 스스로 생을 끊는 자들 중 열등한 자들에는 순간적인 충동에 의한 자살 뿐만 아니라 도피를 위한 자살도 (당연히) 포함됩니다. 사실 그 순간적인 충동이 거의 대부분 도피에의 욕구로 인해 발생하기 때문에 엄밀히 분간하는 걸 간과했네요. 도피성 자살도 충분한 심사숙고를 거칠 수도 있으므로....

      도피라는 것은 삶이 괴롭고 힘들고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이 또한 본능적 욕구 즉 고통을 겪고 싶지 않고 쾌락을 추구하고 싶은 욕구의 연장선상에 있으므로 지극히 본능적인 행동입니다. (도피에의 욕구가 원초적인 생에 대한 욕망을 뛰어넘을 정도로 괴로운 상황이면 이런 일이 가능해지죠) 즉 이러한 행동 또한 당연히 열등한 행동입니다.

      또한 깨우친 자살이라는 것도 여기서는 다소 부정적인 의미로 서술한거 같은데, 논리적으로 생각해보자면 이는 단지 본능적 욕구에 따른 죽음이 아닌 철저한 이성적/객관적/논리적 판단에 따른 죽음을 의미한다고 봐야 합니다.

      사실 현명한 사람들의 자살이라는게 얼마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애초에 그런 인간들은 십중팔구는 평범한 사람들보다 훨씬 우월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위인들을 보면 알 수 있죠. 넓은 의미로 보자면 소신공양을 수행한 틱광둑 같은 인물도 그러하다고 할 수 있겠죠. (생을 연명하는 것보다 소신공양으로 항거하는 것이 더 낫다는 객관적인 판단에 따른 것) 전태일 같은 경우도 그러할테고...

      여튼, 그러하지 않은 단순한 도피성 자살은 열등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말씀하신 부분과 같은 무의미한 고통의 악순환을 깨뜨리는 방법 같은 부분은 불교에서 주로 강조하는 것과 같이 번뇌를 탈출하고 열반의 경지에 오르는 것과 훨씬 관련이 깊어 보이네요. 그 부분에 관심 있으시면 불교 철학을 알아보시길...

예전에 "기븐"이라는 인간이 태어난 이유에 대해 쓴 글이 있다.

 

이 글은 그 글과는 달리, "나"라는 인간 자체에 대한 글이다. 사실 겹치는 부분도 많지만, 주제 자체가 엄밀히 말해 좀 다르다.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미리미리 이러한 글을 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나의 집안은 도저히 내세울 만한 것이 하나도 없는 쓰레기같은 집안이었다. 우리 할아버지는 평생을 돈을 벌기 위해 노력만 하다가 결국 내가 초등학생 때 폐암으로 불행하게 돌아가셨다. 평생을 성실하게 노력했던 할아버지가 어째서 그러한 최후를 맞이해야만 했던 것일까? 그것은 우리 집안 자체가 도저히 잘 되는 것이 불가능한 쓰레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5살때까지 할아버지와 할머니 댁에서 살았다. 나는 외동인데,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만약 둘째를 낳는다면 자신이 직접 기르지 않은 나보다 둘째에게 더 정이 가게 될까봐 일부러 낳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심각한 오산이었다. 왜냐 하면, 내가 지금과 같은 병신이 된 큰 이유 중에 하나는 내가 외동이기 때문이다.

 

외동들은 지 혼자 살고 뭐든지 자기 위주로 돌아가기 때문에 이기적이고 사회력이 떨어지며 배려심이 부족하고 사랑을 베풀 줄 모르고 시야가 좁고 철이 들지 않으며 책임감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바로 내가 그러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미 나는 이러한 병신이 될 운명 속에서 자라난 것이 아닐까? 그러한 생각을 해 본다.

 

어린 시절을 할아버지 할머니 밑에서 보내며, 내게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전부였다. 그러다가 점점 자라면서 아빠가 1주일마다 한 번씩 나를 보려고 할머니댁에 내려오면 아빠를 따라가고 싶어서 울곤 했다고 한다. 나는 이 즈음에서 생각해 본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대체 어떠한 심정으로 나를 길렀을까?

 

생각해 보면 애새끼를 기르라고 부모님한테 던져 주는 행위는 심각한 불효이다. 애새끼를 기르는 데는 엄청나게 힘이 들고, 기껏 키워 놓으면 결국 지 아빠한테 가 버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지극정성으로 나를 길렀다. 쓰레기를, 보물처럼 길러 온 것이다.

 

도대체 이러한 행위에서 어떠한 보람과 의미가 있을 것인가? 여하튼, 그러한 과정을 통해 나라는 거대한 쓰레기더미는 우리 부모님 손으로 옮겨왔다. 그러한 과정에서, 우리 할아버지는 엄청난 착각을 하게 된다. 내가 머리가 좋고 영리하다는 것이다.

 

누구나 자기 자식은 똑똑하고 영리한 줄 안다. 심지어 그것이 손자일 경우, 더더욱 콩깍지가 씌일 것이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매우 불행하고 결정적인 실수가 일어나는데, 우리 부모님이나 나 자신이 그러한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어버렸다는 것이다.

 

나는 친구도 없이 병신같은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초등학교 때 어떤 병신같은 선생이 내가 책 한권을 통째로 외우는 등 병신같은 짓거리를 해 대자 착각을 일으키고는 내가 영재일지 모른다며 검사를 받아보라는 말을 했다. 바로 이 선생 때문에 불행한 우리 부모님은 아직까지도 내가 머리가 좋다는 엄청난 착각을 하기에 이른다. 물론 영재 테스트 결과는 지극히 평범한 병신이었다.

 

그런 식으로 무의미한 초등학교 시절이 흘러갔다. 이 시기에, 나와 내 부모님은 엄청난 실수를 저지른다. 바로 나에게 "과학만화책"을 사 주고, 그것을 닳도록 읽은 것이다.

 

과학만화책은 재미있다. 그렇게 쓰여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엄밀히 말해, 그것은 과학이 아니라 상식 정도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것을 알 리 없는 나는 어린 시절에 그 과학만화책을 탐독하며 심각한 실수를 저지르게 되는데, 바로 "과학자"로서의 꿈을 키우게 된 것이다.

 

내 대가리에 과학자라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마치 키 150cm에 얼굴은 개떡같은 병신이 톱스타가 되기를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의 병신같은 꿈에 불과했다. 그러나 앞서의 착각과 그 빌어먹을 과학만화책으로 인해, 나는 그러한 병신같은 꿈을 꾸며 중학교에 진학했다.

 

그리고 1학년 1학기 중간고사를 봤는데, 그때서야 비로소 내 병신같은 대가리의 한계가 드러나고 말았다. 그 시험은 나라는 인간의 한계를 아주 객관적으로 드러낸 것이었다. 나는 그 시험에서, 대략 82/340 등을 했다.(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 그러하다.)

 

집에 그 병신같은 성적표를 들고 갔을 때, 아버지의 충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머리가 좋은 줄 알았는데 사실은 병신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이유로 인해 무진장 깨졌고, 그때부터 병신같은 "공부"라는 걸 하기 시작했다.

 

나처럼 병신같은 대가리로도 공부를 하면 성적이 오르긴 오르기 때문에, 그렇게 내 성적은 지속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학교 2학년때 그 정점을 찍게 되는데, 한 번은 전교 5등까지 한 적이 있다. 그 때가 내 병신같은 쓰레기 인생의 정점이었으며, 덧없고 허상에 불과한 행복을 이루었던 시기였다.

 

그러나 바로 그 때, 나는 인간으로서의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무언가를 상실했다.

 

앞서 말했다시피, 나는 어린 시절을 할머니댁에서 보냈기 때문에 할머니는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었다. 초등학교 때는 할머니가 집에 오는게 제일 좋은 일이었다. 나는 할머니를 가장 사랑했다.

 

그런데 중학교 1학년과 2학년때 사춘기를 지나면서, 내 대가리는 드디어 병신으로의 완전체로 진화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할머니라는 존재 자체가 어렵고 부담스럽고, 심지어 부끄럽게 여겨지기 시작했다.

 

나의 감정 자체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암튼 그러한 여러 가지 감정의 변화로 인해, 어느 순간부터 나는 할머니에게 전혀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언젠가 할머니가 우리 집에서 한달 정도 지낸 적이 있는데, 그 때 나는 할머니에게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 때 할머니가 느낀 섭섭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완전한 쓰레기로 거듭난 것이다. 어째서 이러한 일이 일어났는지 나로서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여튼 나는 아직까지도 할머니에게 말을 할 때 어려움을 느낀다.

 

그렇게 중학교 2학년을 보낼 때, 나는 또 한번의 변화를 겪었다. 그것은 바로 병신같은 친구를 사귄 것이다. 이 때의 이야기는 http://weirdsoup.tistory.com/248 이 글과 매우 흡사하므로 생략한다. 여튼 그렇게 나는 마지막 하나 남은 장점을 싸그리 제거하고 인간 쓰레기로 거듭났다.

 

그래도 중학교때 까지는 그나마 정상적인 인간으로서의 기능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중학교때 까지가 마지막이었고, 중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약 10년이 지난 지금, 내 생을 돌아보면 나는 바로 그 순간에서 단 하나도 발전하지 못하고 10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낭비했다. 아니, 오히려 퇴화했을 것이다.

 

나의 정신연령과 사고 수준, 지적 수준 등은 딱 10년 전, 중학교 시절에 머물러 있다. 나라는 인간 자체가 10년 전에 정체되어 있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병신같은 과학만화책으로 인해 빚어진 병신같은 꿈으로 인해 병신같이 과고에 진학하고자 하는 헛되고 허황된 꿈을 꾸다가 좌절되고 나서도, 내가 병신이라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는 불행한 일이 벌어졌다.

 

나는 태생 자체가 병신이며 이미 고등학교 때는 쓰레기로 전락했기 때문에, 나의 고등학교 시절은 그 자체가 완전한 쓰레기이며 아무 의미를 찾을 수 없는 분리수거 불가능한 폐기물에 불과하다. 그러다가 나는 적당히 성적에 맞춰 병신같은 대학교에 진학했다.

 

이미 그 시점에서 나는 인간으로서의 온전한 기능을 할 수 없는 인격적 장애인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대학 생활 자체를 제대로 할 리가 없었다. 나는 친구들과 전혀 어울리지 못하고 그저 겉돌면서, 그러한 나 자신이 병신이라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그저 남 탓과 환경 탓을 하면서 병신같은 1학년을 보냈다.

 

생각해 보자. 내가 병신일 가능성이 높을까, 나를 둘러싼 대학이라는 사회 전체가 병신일 가능성이 높을까? 당연히 전자이다. 게다가 나는 이미 객관적으로 병신이기 때문에 이 사실은 더 이상 말할 가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동기들이 그저 공부라고는 안 하고 술이나 마시고 다니며 저급하기 이를 데 없는 병신들이기 때문에 내가 적응을 하지 못하고 어울리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도 안 되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이 여파로 인해, 나는 지금도 대학 친구라고는 없다. 대학을 4년동안 다녔으면서 친구가 단 한명도 없는 것이다. 이는 정상적인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다. 내가 얼마나 대학을 병신같이 다녔는지를 증명하는 것이다.

 

나는 내일 졸업한다. 그러나 나는 같이 졸업사진을 찍을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사실 그래서, 나는 졸업식에 가지 않을 생각이다. 가봤자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어튼 그렇게 병신같이 1학년을 보내고 다음해 1월에 군대에 입대했다. 고등학교에서, 대학에서 병신이었던 내가 군대라고 멀쩡하게 지낼 수 있을 리가 있을까? 당연하게도, 나는 아주 병신이자 쓰레기같은 노답 고문관새끼가 되었다.

 

신교대에서는 힘세고 잘난 동기들이 나의 병신스러움을 존나 혐오하고 맨날 구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하게 지낸 동기들이 몇 있는데, 나중에 자대에 같이 온 동기들도 있다. 그러나 자대 내의 부대가 다르고, 나의 특유의 병신스러움으로 인해 그들과는 오래 교류하지 못하고 전역한 이후에 지금까지 단 한번도 연락을 하지 않는 사이가 되고 말았다.

 

나는 몸이 약한데다 운동이라고는 지지리도 못했기 때문에, 신교대에서 굉장히 아팠다. 지병인 천식이 돋아서 맨날 기침을 하고, 입과 코 주위의 피부가 전부 헐어서 연고를 떡칠하고도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고, 밤에 코피가 났는데 피가 30분이 지나도록 멈추지가 않아서 자고 있던 의무병들을 깨워서 괴롭히기도 했다. (의무병들도 내게 뭔가 문제가 생긴 게 아닐까 걱정할 정도였다.)

 

신교대에서 나를 맡았던 소대장은 막 임관하고 나서 처음으로 우리 부대를 맡았던 신임 여군 소대장이었는데, 아마 나 때문에 시작부터 고생했을 것이다. 실제로 소대장은 나를 보기를 병신 보듯이 했는데, 이는 매우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관찰이었지만 나는 그것도 모르고 소대장이 그저 나를 싫어하는 줄 알았다.

 

다행일지는 몰라도 암튼 5주를 보내면서 나는 어느 정도 적응했고, 자대에 가서는 그렇게 아픈 일은 더 이상 없었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몸이 아픈 건 전혀 문제가 안 되었던 것이, 나라는 인간 자체가 병신이기 때문에 자대 생활 자체를 병신스럽게 함으로 인해 선임들에게 찍히게 되었다.

 

이쯤에서 한 가지 말할 게 있다. 우리 엄마는 나를 좋은 부대로 보내기 위해 인맥을 활용하여 나를 아주 좋은 부대로 빼놓기로 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일이 틀어져서 결국 나는 그냥 그 부대에서 계속 지내게 됐는데, 이러한 이야기를 들은 나는 병신스럽게도 언젠가 좋은 부대로 옮겨가지 않을까 하는 헛된 바람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병신스럽게도 이로 인해 나는 더더욱 자대에 대한 애착을 잃고 병신스럽게 지내고 말았다.

 

나는 전입을 하자마자 쓰레기같은 선임 한마리를 영창으로 보내버리는 엄청난 일을 저질렀다. 그놈은 인격이 병신이라 영창에 간 것이 당연하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나는 시작부터 찍혀서 고생하게 되었다. 내가 만약 병신이 아니었다면 일을 잘 해서 만회할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병신이기 때문에 일도 제대로 못해서 결국 선임들과 매우 불편한 관계를 지속하게 되었다.

 

그렇게 선임들은 나를 미워하고 나는 선임들을 미워하며 병신같은 생활을 하다가, 일병 말이 되자 행정반에 자리가 하나 비게 되었다. 나는 중대장에게 강하게 어필해서 행정병으로 가고 싶다고 했고, 내가 워낙 육체능력이 병신인지라 윗사람들도 나를 행정병으로 보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서 결국 행정반으로 가게 되었다. 말할 것도 없이 행정반 선임들은 매우 싫어했다.

 

행정반 일은 사실 매우 쉬운데다 별 할 일도 없어서, 그 이후부터는 별 탈 없이 군생활을 계속 하다가 전역했다. 물론, 친한 후임 따위는 전혀 만들지 못했고, 지금까지도 나는 군대 관련 인맥들과는 연락 자체를 끊고 지내고 있다. 그런데 그 시절에, 나는 내 성격이 아주 지랄같다는 사실을 새로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원하는 어떠한 결과가 틀어지게 되면 못 견뎌하는 것이었다.

 

무슨 말이냐면, 예컨대 내가 A라는 결과를 내고 싶어서 그렇게 맞춰서 행동하는데, 옆에서 이를 훼방놓게 되면 심각한 빡침을 느끼고 이를 표출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지랄같은 성격은 전역하고 나서 약 몇개월 동안 아주 정점을 찍게 되었는데, 왜냐면 바로 그 시기에 심각한 멘탈 붕괴를 겪었기 때문이다.

 

전역하고 나서 나는, 아침에는 12시가 넘도록 잠이나 자고, 일어나서는 컴퓨터나 하는 무의미하고 한심한 생활을 몇달간 보내게 되었다. 원래는 공부도 하고 알바도 하려고 했는데, 내 천성이 게을러서 그런지 한번 폐인생활을 하다 보니까 계속 그렇게 지내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온갖 의욕도 잃고 그저 폭서 채팅방이나 다니고 메갤질이나 하면서 온갖 똥글이나 싸고 어그로나 끌면서 살게 되었다.

 

그러다가 나중에 집에서 엄청난 구박을 받고 알바를 하나 하게 되었는데, 사무직 알바였다. 사실 별로 하는 일도 없는게, 서류 정리나 하고 복사나 하고 도장이나 찍고 암튼 그런 잡일이었다. 그러나 나의 병신본성은 어딜 가지 못해서, 거기서도 일을 잘 못해서 알바를 부리는 정직원들한테 미움을 받게 되었고, 그렇게 어영부영 돈이나 받고 다니다가 대충 때려치고 복학했다.

 

학교를 다니면서, 위에서 말한 지랄같은 성격이 아주 폭발하게 되었다. 급기야는 아무 이유 없이 분노가 폭발해서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고, 심지어 멀쩡하게 전철을 타고 가다가 옆에 서 있던 아줌마가 잠깐 팔에 닿았다는 이유로 아줌마를 확 밀치고 씨발거리기까지 했다.

 

나는 내가 도저히 정상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그 길로 정신과에 상담을 받으러 갔다. 그러나 예약을 안 하고서는 진료를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는데, 그 날을 정점으로 찍고 나서 나의 이유 없는 분노는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내 정신병이 고쳐진 것은 아닌 듯 하다.

 

복학하고 나서는 친구도 하나도 없고 뭐 어디 조직에 들어가서 하는 일도 없었기 때문에, 그저 열람실이나 다니면서 공부나 하고 지냈다. 필연적으로 성적이 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높은 성적만을 위안거리로 삼으면서 무의미한 3년을 보냈다.

 

나는 대학교에 진학하고 나서부터, 미래에 하고 싶거나 되고 싶은 것이 완전히 사라져서 하나도 없게 되었다. 복학하고 나서도, 대체 무엇을 하며 먹고 살 것인지 도저히 결정을 못 내렸다. 그러다가 4학년이 되고 나서부터 비로소 "취직이나 해야겠다" 라는 막연한 목표를 갖고 준비를 하기 시작했는데, 뭐 하나 잘난 스펙도 없이 늦게 시작한 취직준비가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결국 작년 하반기 공채에서 전패하고 나서 이렇게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다가 대학을 졸업하게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나는 느낀다. 내 인생은 당최 쓰레기의 연속이었다. 무의미한 24년 8개월을 보내며, 나는 하나도 이룩한 것이 없고 뭔가 좋은 일을 한 적도 없고 사회에 도움이 된 적도 없이, 그저 자원이나 축내는 역할이나 충실히 하고 있었다.

 

모든 생명의 가치가 동등한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로 우리의 법은 동물과 인간을 분명하게 구분하고 있다. 인간이 만든 가치이기 때문에 당연하겠지만. 인간과 동물의 가치가 다르다면, 인간 사이의 가치 또한 같을 리가 없다. 누구는 가치 있는 생명인 반면, 누구는 아무 가치가 없는 생명인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가치가 있는 사람이 될 가능성이 있는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시작부터 병신이었다. 쓰레기가 될 운명이 내 앞에 놓여 있었고, 나는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나는 그저 빨리 치워지는 것이 더 유익한, 그러한 역할을 앞으로도 수행하게 될 것이다.

 

누군가가 가치가 있다면, 그 사람이 사라질 경우 주변에 악영항을 미칠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가치가 없다면, 사라지더라도 별 악영항을 끼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좋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생각해 보자. 집에 가득 찬 쓰레기봉투를 바깥에 내다 버리면 집안에 악영향을 끼치는가, 좋은 영향을 끼치는가?

 

이 글은 순전히 내가 보기 위해 쓴 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나 이 쓰레기더미를 읽은 사람이 있다면, 이러한 쓰레기로 시신경을 더럽히게 된 것에 대해 삼삼한 사과를 하고 싶다. 이렇게 쓰레기에 불과한 나 자신에게도 나의 삶은 유일하기 때문에, 그러한 쓰레기 더미나마 되돌아보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글을 쓰게 되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1. BlogIcon 유입 2015.02.23 21:38 신고

    어쩌다보니 들어와서 읽었네요....그래도 저 보단 괜찮으신거 같습니다.
    대학도 나름 인서울권에 성적도 좋으시고...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하시는거 아닐까요...

  2. 힘내 2015.04.03 18:29 신고

    힘내

  3. BlogIcon @ 2015.05.10 23:05 신고

    부럽다

  4. 2015.05.15 14:09 신고

    병신이 병신인 걸 알면 너무 슬프자나
    나를 봐 나를 캬ㅏ하

  5. BlogIcon ㅋㅋ 2016.04.23 09:30 신고

    인생 결국 부모빨 씨바 부모새끼잘못만나면 ㅈ댐

  6. ? 2016.10.19 00:22 신고

    글을 잘 쓰시는데요??

  7. 이창훈 2016.10.28 03:13 신고

    당신은 멋진 사람입니다.

    이 블로그에 와서 많은 도움을 얻었습니다.

    윗분 댓글처럼 글을 무척 잘 쓰시는군요...

    기븐님이 가진 탁월한 재능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아름다운 인생을 사시길 축복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8. ㅁㄴㅇㄴㅇ 2017.03.31 10:44 신고

    재밌네요

    나도 병신인데 ㅋㅋㅋ

    병신도 병신 나름대로 살 방법이 있을겁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