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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과 결과는 현상의 본질을 정의한다.

요즘 몇몇 SF 영화를 보다 보니 종종 생각나는 한 가지 의문점이 존재한다. 고도로 복잡한 AI를 창조해서 인간의 뇌 활동을 거의 그대로 모사하게 한다면, 그 개체는 인간과 동일한 자아 및 감정을 실제로 보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가? 예컨대 AI가 사랑 같은 감정을 거의 그대로 모사한다면, 실제로 AI가 사랑을 느끼고 이를 바탕으로 행동하고 있다고 간주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근데 이건 사실 다른 모든 것도 다 마찬가지며, 인간의 행동 또한 예외가 아니다. 인간들 중에서도 감정을 못 느끼는 일부 인간들이 있으며, 우리는 이를 사이코패스 라고 부른다. 이러한 사이코패스들이 다른 사람들의 감정표현을 유심히 관찰한 후 거의 그대로 따라한다고 가정해 보자. 우리가 겉으로 보기에 이들 사이코패스와 "진짜"..

양성평등 - 결과적 평등이 아닌 절차적 평등의 필요성에 대해

(14. 12. 29. 제목이 다소 부적절한 듯 하여 수정함.) 우선, 본인은 결과적 평등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공산주의자도 아닐 뿐더라, 지극히 상식적으로만 생각해 보더라도 결과적 평등이란 오히려 능력 있는, 노력한 사람들에 대한 역차별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평등이란 절차적 평등이 되어야 하며, 절차적 평등이 제대로 지켜진다면 그 결과는 어찌 되었든 간에 그것은 공평하며 정의로운 것이다. 이러한 절차적 평등에는 당연한 전제 조건이 있는데, 기회 균등의 원칙이 그것이다. 모두에게 있어서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졌을 때, 비로소 절차적 공정함은 그 의의를 갖는다. 그렇다면 이러한 관점에서 현재 몇몇 여성운동가들의 행태를 생각해 보자. 상당히 많은 인간들이, 결과적 평등주의를 외치고 ..

디씨인사이드의 어느 (지금은 삭제된) 글에서 퍼옴

인생은 결국엔 허무하다는 귀결은 잘못됐다. 나는 원래 염세주의자다 그래서 제일좋아하는 철학자도 쇼펜하우어이고. 종교따위도 믿지않는다. 어차피 공허한 세상을 못견뎌 허상을 믿는거니까. 어떤것을 해도 초월적인 기쁨을 주지 않으며, 단순한 욕망에 사로잡힌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특이점이후 150억년이 흘렀지만, 내 인생은 아둥바둥해도 결국 1세기를 넘길까 말까. 내가 죽고나면 내 시체는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거나, 내 뼈들은 풍화작용으로 가루가 되어버리겠지 결국 우리는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일 뿐이다. 노무현전대통령이 유서에 이런글을 남겼지. `죽음또한 삶의 일부다`라고. 나도 그와 같은 생각이다. 우리는 죽음으로써, 우리를 만들었던 자연이라는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가는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내가 이세상에 존재하는 ..

화재가 났는데 손자는 죽고 할아버지는 살아난 사건을 보고 든 생각

이 사건은 인터넷 기사로 접하게 되었는데, 사실 기사 자체는 그리 중요한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도 많이 봤을 거라고 생각해서 링크는 걸지 않는다. 난 처음 보고 들은 생각은 상당히 모순적 비극이라는 것이었다. 80대의 할아버지는 살았는데 세상을 살아보지도 못한 18살의 손자는 죽었으니 말이다. 그 후에, 과연 내가 왜 저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저 생각이 과연 정당한지를 생각해 봤다. 이는 분명 무의식적인 사고의 반응이고, 어떠한 논리를 갖고 있지는 않았다. 또한 중요한 것은, 꽤 많은 사람들이(비판적 사고를 거치지 않고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최소한 둘 다 죽지는 않고 한명이라도 살았으니 다행이지 않은가? 하지만 많은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