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가 났는데 손자는 죽고 할아버지는 살아난 사건을 보고 든 생각


이 사건은 인터넷 기사로 접하게 되었는데, 사실 기사 자체는 그리 중요한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도 많이 봤을 거라고 생각해서 링크는 걸지 않는다.

난 처음 보고 들은 생각은 상당히 모순적 비극이라는 것이었다. 80대의 할아버지는 살았는데 세상을 살아보지도 못한 18살의 손자는 죽었으니 말이다.

그 후에, 과연 내가 왜 저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저 생각이 과연 정당한지를 생각해 봤다. 이는 분명 무의식적인 사고의 반응이고, 어떠한 논리를 갖고 있지는 않았다. 또한 중요한 것은, 꽤 많은 사람들이(비판적 사고를 거치지 않고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최소한 둘 다 죽지는 않고 한명이라도 살았으니 다행이지 않은가?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너머의 비극을 본다. 어쩌면 거기에서 살아난 할아버지에 감정 이입이 되어서 그런건지도 모른다. 그 할아버지는 분명 차라리 자기가 죽었으면 좋았을 텐데 라고 생각하며 남은 시간을 후회와 탄식 속에 보내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것보다 더 한 단계 나아가서 생각해 보기로 했다. 우리가 왜 그렇게 생각해야 하는가? 할아버지가 죽고 손자가 살아난 것 보다, 할아버지가 살고 손자가 죽은 사건이 왜 특별히 더 비극적이어야 하는가? 이것을 인정한다면, 결국 사람들의 생명이 모두 동등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밖에 안 된다. 누군가의 생명은 다른 누군가의 생명보다 더 소중하다.

만약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즉 모두의 생명이 소중하다고 생각한다면, 위에서 예시를 든 두 가지 경우는 모두 동등한 정도의 비극을 담고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이 있겠지만, 굳이 예를 들지는 않겠지만, 조금만 찾아보면 사람 생명 사이에 선택을 해야 하는 경우도 많이 있고 그 선택에 있어서 더 좋은 선택과 더 나쁜 선택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모든 사람은 동등하지 않다는 것의 또 다른 증명이다. 이는 너무나도 당연하고 확실하며 우리 모두가 무의식 중에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지만, 오늘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막연하고 환상적인 평등/평화/사랑 따위의 동화적인 감상에 사로잡혀서 이 사실을 외면하거나 거부하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은, 모든 사람이 결코 동등하지 않다는 것이다. 뛰어나고 위대한 누군가는 그렇지 않은 자에 비해 더 우월하다. 지하철 노숙자가 스티븐 호킹과 결코 동등하지 않다.

당신은 열등한 종자로 전락하고 싶은가, 우월한 인간으로 도약하고 싶은가? 명심해야 할 것은, 모든 생명이 결코 동등하지 않으므로, 당신이 가만히 앉아 있는다고 해서 당신이 다른 누군가와 동등한 가치를 보장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스로 우월하고자 하는 자만이 진정 우월해진다. 힘은 모두의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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