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들/개독교

창조과학이 무엇이고 왜 병신인지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할 필요조차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생각해 보자면, 이러한 실소조차 나오지 않는 개념을 들고 나오는 작자들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개독교의 병신성을 증명하는 동시에 아직도 인간 지성이 이딴 헛소리를 조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할 정도로 형편없는 수준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증거로 생각된다.


그러나, 조금만 달리 생각해 보자면, 오히려 이렇게 "창조과학" 따위가 생겨나는 사실 자체가 인간 지성이 그만큼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즉, 창조과학을 조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하거나 심지어 그러한 개념을 믿는 작자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들의 지성이 형편없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창조과학 따위가 등장했다는 사실이, 즉 그러한 개념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인간 지성의 발전을 의미하기도 한다는 말이다.


생각해 보자. 과거에는 "과학" 따위는 고려할 가치가 없는 개념이었다. 사람들은 기적이나 신의 말씀 따위를 절대적으로 숭상하고 있었고, 아무리 관찰과 실험을 통해 어떤 사실을 깨닫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신의 말씀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에는 당연히 그 실험 결과를 배척했다. 신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는 것이 당연한 시기였기 때문에, 그것과 충돌하는 것이 당연히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써 천동설과 지동설을 들 수 있다. 감히 신의 말씀과 충돌하는 관찰결과를 계속해서 주장할 경우 종교재판에 처해질 수도 있는 불경스러운 행위로 간주되었고, 그렇기에 더욱 더 신의 말씀은 절대적으로 믿어야 할 대상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발전을 거듭하고 인간의 지적 수준이 그에 맞춰서 점점 상승해 가면서, 사람들은 관찰과 실험을 통한 과학적 결과물의 상당 부분이 신의 말씀과 충돌한다는 사실을 점점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점차 사람들은 신의 말씀의 절대적 지위에 의심을 품기 시작했고, 이렇게 맹목적인 미신의 늪에서 점차 빠져나오는 현상은 인간 지성의 발전을 가속화시키기 시작했다. 이들 둘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발전해 나갔던 것이다.(즉, 미신으로부터의 해방-인간 지성의 발전-미신의로부터의 해방...)


그리고 마침내, 더 이상 개독들이 단지 "신의 말씀이다!!!" 라고 외치는 것 만으로는 그들의 믿음을 관철시키기 힘든 경지에 이르고야 말았다. 과학과 인간 지성의 발전을 통해 사람들이 과학적 결과에 상충하는 대상에 대한 맹목적 믿음에 대해 점차 회의감을 품게 되면서, 그들의 개독사상을 유지하는 것에 점점 위기감을 느끼게 된 것이다. 이것이 점점 심화되면서, 개독들은 점차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즉, 신의 말씀에 어긋나는 과학적 결과물을 무조건 배척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결과물들을 어떻게 하면 신의 말씀과 융화시킬 수 있을까를 연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전통적으로 종교는 그들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 처음에는 과학을 억압했으나, 나중에는 과학과 종교는 별개의 사실임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즉 과학은 엄연히 형이하학적 현실세계에서의 문제이고, 종교는 이를 넘어선 내세와 구원의 세계, 즉 믿음의 세계로서의 문제임을 강조함으로써 과학과 종교와의 상충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이는 마치 과학은 사실판단만을 할 뿐 그 자체로써 가치판단을 하지 않는다는 문제와 비슷한데, 여기서 문제는 종교는 실제로는 가치판단의 영역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엄연히 사실판단의 영역까지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러한 주장의 발목을 잡는다는 사실이다. 즉, 종교는 그 자체의 세계관을 위해 가치판단 뿐만 아니라 사실판단 영역까지 상당 부분 관여하고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종교와 과학의 영역은 서로 상충되는 부분이 존재할 수밖에 없던 것이 문제였다.


예수쟁이들도 전부 바보는 아니었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기존까지는 그저 과학을 배척하기만 하면 됐지만, 더 이상 그럴 수 없었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 몇 가지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물 중의 하나가 바로 창조과학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창조과학의 병신성을 파악했기 때문인지, 혹은 종교를 설명하기 위해 과학적 방법론을 차용한다는 그 자체 모순적이고 스스로도 부끄럽다고 느낄 만한 사실 자체에 거부감을 느꼈는지는 몰라도, 창조과학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예수쟁이들은 많이 존재하는 것으로 아는데, 그러한 사람들이 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대체적으로 현재 성경에 존재하는 사실판단의 영역을 상당 부분 "비유"로 해석한다는 사실이다. 즉 6일만에 세계를 창조했다든가 인간을 흙으로 만들었다든가 하는 부분들을 죄다 비유로 해석함으로써 과학과의 상충을 피한다. 이러한 사람들 중에서는 심지어 진화론을 인정하는 사람들도 존재하는데, 그 이유는 과학의 발전에서 종교를 지키기 위해서는 종교의 영역을 철저하게 가치판단의 영역으로 한정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엄연히 지들의 성경에 씌여 있는 내용을, 지들 좆대로 어떤 문장은 비유로 해석하고 어떤 문장은 의미 그대로 해석한다는 사실 자체가 웃긴 코미디에 불과하긴 하지만, 최소한 이들은 명백한 과학적 결과물에 대해 종교의 믿음 강조만으로는 더 이상 대항하지 못하고, 결국 이에 맞서 종교를 지킬 방법은 그 영역을 철저하게 정신적인 부분에 한정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현명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그러한 마음가짐을 갖고 종교를 믿고 있는 지성인들도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많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 과학자들도 종교를 믿는 모습을 가끔 볼 수 있는데, 그러한 사람들이 대부분 가치판단을 다루지 않는 과학만으로는 정신적 공허감을 해소하기 힘들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을 충족받기 위해 종교를 믿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세상에는 이들 같은 사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훨씬 더 병신같은 사람들이 넘쳐나는 것이 현실이다. 그들은 종교와 과학의 상충 문제를 두고, 종교와 과학의 영역을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이들을 합치기 위해 고민했다. 물론 과거에 그랬듯이 과학을 탄압하고 성경만이 옳다고 주장했다가는 대부분 코웃음을 칠 뿐이기 때문에, 결국 이들이 취한 행동은 바로 그 과학에 대가리를 숙이고 허리를 굽히고 기어들어가는 웃기는 방법이었다. 즉, 사실은 성경에 나와 있는 사실판단적인 부분이 실제로는 과학적 결과물과 일치하고 있다고 주장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 이후의 결과물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할 가치조차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창조과학 따위가 등장했다는 사실 자체에 그것을 만들어내거나 그들을 따라서 이를 추종하는 인간들의 형편없는 지성에 주목하여, 인간 지성이 아직까지도 이 정도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탄하거나 혹은 이로 인해 인간 지성이 후퇴했다고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위에 언급해놓은, 창조과학의 발생 과정을 잘 살펴 보면, 오히려 이것은 인간 지성의 형편없는 수준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인간 지성의 발전 과정 상에 존재하는, 인간 지성의 발전을 증명하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갖는 지극히 명료한 상징성은 다음과 같다. 과거 암울한 시절에 과학을 배척했던 그 종교쟁이들이, 즉 과학으로 하여금 종교에 맞추도록 하기 위해 억압해 왔던 그들이, 이제는 과학에 대가리를 숙이고 들어가서 "사실은 우리 말이 과학느님의 말과 일치한다!!!" 라고, 종교를 과학에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 이상의 말이 필요할까? 그 이후에 저들이 과학을 좆대로 해석하고 얼토당토않은 주장들을 내세우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창조과학도 과학이라면서 창조론과 진화론을 같이 교육해야 한다는 병크마저 저지르고 마침내 FSM님을 이 세상에 강림시키는 사태를 초래한 것들 따위는 이 부분에서 더 이상 중요한 사실이 아니다. 중요한 사실은, 그동안 대가리를 쳐 들고 과학적 결과물에 대해 빼애애액 거리면서 미신을 강요하려고 했던 바로 그들이, 이제 고개를 숙이고 어떻게 하면 과학의 나와바리에 엉덩이를 비빌 수 있을까 이리저리 기웃거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명백히 인간 지성의 발전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제 이렇게 하지 않으면, 성경에 있어서의 사실판단적인 부분을 다른 사람들에게 옳다고 주장하기 힘들어진 것이다. 이는 그만큼 인간들의 보편적인 지성이 높은 수준에 도달했기 때문에 가능해진 일이다. 이는 결국, 인간들이 점점 미신의 늪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창조과학이 온갖 병신소리를 늘어놓아서 주위에 폐를 끼치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다. 이미 현세대 인류의 지적 수준은 창조과학의 병신성을 완전히 논파하고도 까마득하게 남을 정도이고, 결국 그들은 (자신들과 비슷한 지적 수준을 갖추고 있는 작자들과 함께) 그들만의 리그에서 노는 것에 그치게 될 것이다. 창조과학의 등장은 인간 지성의 암울한 현 상태의 표상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 지성의 발전과 승리의 한 초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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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4.29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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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자들에 대한 가장 빈번하고 멍청한 공격이 바로 "도덕성"에 대한 공격일 것이다. 그들의 논지는 이러하다. 모름지기 도덕이라는 것은 예로부터 절대적인 기준이 있었고, 그 기준이 바로 종교이다. 그런데 무신론자들은 그러한 종교를 부정함으로써, 도덕성의 근본마저 부정하고 있다. 그런데 도덕이라는 것은 본래 강제성을 띄고 있는 것으로, 어떠한 기준이 없다면 누구도 그것을 지키려 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무신론은 도덕을 약화시키고 무질서를 옹호한다는 것이다.

 

종교인들의 이러한 멍청한 열등의식과 인간성에 대한 패배의식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지만, 뜻밖에도 우리 사회의 보편된 통념에는 "하늘" 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있어서, "천벌"을 운운하는 광경을 너무나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비록 개독교따위 신자가 아니더라도, "하늘이 두렵지 않은가" 따위의 말을 통해 도덕을 지키고자 하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들은 자신도 모르게 도덕 법칙에 있어 어떤 "절대자"를 상정하고, 그 절대자가 무너지는 순간 도덕 법칙도 끝장나는 것이라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도덕을 협소하게 정의내림으로써 발생하는 것에 불과하다. 분명 도덕에는 저러한 종교적 도덕도 존재한다. 그러나 종교로 인해 확립된 도덕이 사라진다고 해서, 모든 도덕이 파괴되고 말 것인가? 그것은 인간의 진화심리학적 관점을 싸그리 무시한 개소리에 불과하다. 가장 기본적인 도덕 법칙은 인간에게 내재된 것이기 때문이다.

 

도덕을 정의내림에 있어 여러 관점이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도덕이란 두 가지가 존재한다. 하나는 사회를 형성하면서 만들어진 사회 규범으로, 이것이 발전하면 (꼭 "발전"이라고 하기는 뭣하지만, 여튼 "법적 확신"을 갖게 되고 그것이 규범하되면) "법"이 되고, 그렇지 못한 것들은 일종의 관습적 규범이 된다. 이러한 규범들은 구성 사회마다 다소 차이가 있는 점이 특징이다. 예컨대 어느 사회는 사촌간 결혼이 부도덕한 일이지만 어느 사회에서는 권장할 만한 일이고, 어디에서는 매춘이 불법이지만 어디에서는 합법이기도 하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인간 스스로에게 내재된 기본 도덕법칙들이다. 이는 사회 이전에 존재하는 층위의 것으로써, 가장 기본적인 양심을 이루는 부분이다. 예컨대 살인을 꺼리는 마음, 어려운 자들을 도우려는 마음, 공명정대함을 추구하려는 마음 등이 있다. (한가지 혼동하지 말아야 할 것은, 양심의 가책이란 사회 규범을 어겼을 때에도 발생하는 후천적 학습으로 형성되는 것 또한 존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단순히 "가책"만 가지고는 이를 논할 수 없고, 가장 기본적으로 인간 DNA에 내재되어 있는 행동 특성만을 논해야 한다.)

 

인간은 진화하는 과정에서 서로 공존하고 평화롭게 살아가기 위해 어떠한 행동규범을 그 습성으로 내장했는데, 이것이 바로 기본 도덕 법칙이다.(인간의 사회성이 진화 과정에서 내장되었다는 건 내가 지어낸 말이 아니다. 자세한건 검색) 이러한 기본 도덕법칙은, 사실상 인간 "본성"이라고 해도 무관할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인간의 "본성", 즉 인간이 다른 것과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질적 차이란, 여타한 형이상학적 뜬구름 잡는 이야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유전자"에 있을 뿐이라는 철저한 합리적 실증주의의 입장에 기반하고 있는데,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인간의 본성은 도덕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비록 종교 따위 없다고 해도, 기본적인 도덕은 인간의 본성 그 자체로서 존재할 것이다. 지금 내가 주장하고 있는 것은, 도덕에는 형이상학적 실체로서의 기준이 필요 없다는 말이다. 현대 사회에서의 도덕의 기준점은 사회 관습 그 자체로서 존재하며, 그 근본은 다름 아닌 인간의 본성이다. 신이 아니라는 말이다.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그 신이 도덕 법칙을 관장하는 주체자라면, 사회마다 도덕이 전부 다른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 전지 전능한 신이 어째서 도덕 법칙이 차이나는 현상이 발생하도록 방치하였는가?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생각해 보면, 결국 그 신이 정한 기준점 외의 모든 도덕은 전부 거짓된 것이고, 결국 우리 사회의 수많은 법과 관습, 규칙들 중에서 단 한 가지만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도덕 법칙은 잘못된 것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런데 무엇이 진정으로 옳은 것인가? 사람마다 주장하는게 전부 다르고, 같은 기독교라도 교리마다 차이가 존재한다.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참 다중인격이거나 일처리를 엉터리로 하는 신이 틀림없다.

 

게다가 여기에는 상당히 중요한 시사점이 있는데, 위에서 언급한 사회 규범으로서의 도덕은 사회가 변화함에 따라 같이 변화하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즉 죽어 있는, 고정된 법칙이 아니라 사회와 같이 살아서 변화하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전지전능한 신이 있다면, 그 신이 만든 도덕법칙은 인간따위가 변화시키는 사회와는 무관하게 항상 범우주적으로 불변하는 진리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게 인간 사회에 존재하기는 하는가?

 

사회의 변화에도 무관한, 인간 기준으로 거의 불변인 것처럼 보이는 기준은 딱 하나밖에 없다. 바로 인간 본성에 내장된 도덕 원칙이다.(물론 이것도 진화 과정에서 변화하게 마련이지만, 진화 과정은 인간이 목격하고 관찰하기 힘들 정도로 길기 때문에 인간 기준에서는 사실상 불변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신이 아니라 인간이다.

 

무신론자들이 오로지 그 삶의 기본 규범으로 따르는 것은, 바로 저 인간 본연의 도덕 원칙밖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유신론자들과는 달리, 위에서부터 강제로 (소위 "천국과 지옥의 협박" 따위를 통해) 주입되고, 절대자가 저 위에서 심판의 철퇴를 들고 윽박지르며 억지로 따르게 만드는 그 작위적이고 소극적이며 패배주의적인 엉터리 도덕원칙과는 달리, 바로 인간 본연의 본성에 근거한 자연스럽고 자주적이며 인본주의적인 도덕 원칙 말이다. 과연 어느 것이 더 도덕적인가? 절대자의 심판을 면하기 위해 지키는 도덕과, 스스로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목소리에 따라 스스로 기준을 정하고 맞춰 행하는 도덕, 어느것이 더 도덕적인가?

 

이를 통해 살펴보면, 오히려 도덕으로 공격받아야 할 것은 종교이다. 그 존재 여부마저 불확실하고 전지전능하다고는 믿겨지기 힘들 정도로 중구난방이며 줏대 없는 절대자가 천국과 지옥의 협박을 통해 강제적으로 따를 것을 요구하는 도덕 기준을 내세우는 작위적 행태를 일삼는 바로 그 종교 말이다. 그들에게는 절대자나 천국지옥 따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도덕 따위를 지켜야 할 필요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얼마나 허황된 개념인가?

 

이로서 알 수 있는 사실이란, 종교가 인간 본성과 지성을 억압하며 인간을 수동적이고 패배적인 존재로 이끈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는 것에 불과하다. 다시 한번 강조한다. 인간이 인간 스스로 위대하고 소중한 존재로 거듭나는, 그리하여 패배주의적이 아니라 당당하게 인간의 가치를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바로 종교로부터의 해방에 있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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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부족한 자들

2014.12.29 20:09

우리 사회에는 믿음이 부족한 자가 너무나도 많다.

 

지금의 상태를 보라. 동성애자들이 판치고, 불신자들이 신자들을 조롱하여 오히려 신실한 신자일수록 억업당하며 살아야 한다. 적그리스도들은 사탄교회를 대놓고 홍보하며, 심지어 기독교의 국가 미국에서조차 당당히 사탄의 교리를 설파한다. 소돔과 고모라가 따로 없다. 지금 이 사회에 의인이 얼마나 있던가? 남색행위로 인해 멸망하여 영어단어 "Sodomy"의 어원이 된 그 소돔과 고모라와 우리 사회가 다른 점이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교회의 상태는 어떤가?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고 외치는 주님의 양들을 "이단" 이니 "민폐" 니 "우리는 저런 또라이들과 다르다" 느니 이딴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고 있다. 정말이지 통탄할 노릇이다.

 

무릇 주님께서는 그분을 통하지 않고는 결코 구원에 다다를 수 없다고 하셨다. "예수천국 불신지옥" 이라는 문구가, 적그리스도들에 의해 마치 웃긴 표현인 것처럼 폄하되고 있지만, 사실은 정확히 주님의 말씀과 일치한다. 그런데 우리 신자들은 지하철에서, 길거리에서 그러한 푯말을 들고 무지몽매한 불신자들에게 그분의 말씀을 전파하는 사람들을 "또라이" 라고 하지 않았던가? 심지어, 그러한 사람들 때문에 사람들이 기독교에 편견을 갖게 된다며 욕하지 않았던가?

 

요한계시록을 보라. 일곱 교회들이 어떻게 해서 무너졌는가? 적은 외부에 있지 않다. 내부에 있는 것이다. 적그리스도란 바로 내부에서, 저러한 신실한 신자들을 비웃고 주님의 말씀을 전파하기를 우습게 여기고 전도행위를 민폐행위로 폄하하는 바로 그들, "믿음이 부족한 자들"을 말하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분명 성경책에서 전도하라고 말씀하셨다. 주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결코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심판의 날에, 신자들은 구원을 받을 것이나 불신자들은 영원한 고통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다. 이 세상 사람 기준으로 어떠한 선행을 베풀고 덕을 쌓더라도, 그분의 말씀을 통하지 않고서는 공허한 행위에 불과하며, 어떠한 죄인조차도 주님의 이름 앞에서 진실로 회개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명명백백하게 공언하고 계신다.

 

그러나 믿음이 부족한 자들은 어떠한가? 그러한 주님의 말씀을 한 마디라도 따른 적이 있는가? 이웃들을 지옥의 나락 앞에서 구원하기 위해 열심히 전도하고 계시는 믿음이 출중한 신자들을 욕할 때, 우리 자신들은 과연 한 마디라도 전도를 행한 적이 있던가? 심지어, 동성애를 옹호하고, 타 종교에 대한 "관용" 따위를 외치지 않았는가?

 

대표적으로 저 이단들의 대표자이자 우상숭배자 교황이 그러하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교회가 동성애 신자들을 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지어 타 종교들과 함께 손잡고 걸어가자는 말도 안 되는 말까지 내뱉고 있다. 이것이 이단이 아니고 무엇인가? 로마 카톨릭 교회는 아직도 중세 시대에 면죄부를 팔아치우고 내면으로부터 썩어들어갈 대로 썩어들어갔던, 그리하여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기에 이르렀던 바로 그 때의 죄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바로 그러한 자들이, 우리 시대에 적그리스도를 판치게 만들고 있다. 저런 교황 같은 사람들이 엉터리로 내뱉는 저런 웃기지도 않는 관용이니 어쩌니 하는 말들을 우리 그리스도교 신자들도 무심코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타 종교를 배척하고 동성애를 거부하며 철저하게 주님의 말씀을 따르고자 하는 진실된 신자들을 비웃고 억압하는 것이다. 다시 한번 요한계시록이 생각난다. 우리네 교회가 그런 모습을 닮아가지는 않는가?

 

교회의 적은 믿음이 부족한 신자들이다. 다시 한번 성경책을 통독하기를 바란다. 아직도 지하철에서, 길거리에서 전도하는 사람들이, 우상숭배 불교와 엉터리 단군신화를 배척하고 불상과 단군상을 훼손하는 사람들이, 믿음을 위해 가족도 친구도 저버리면서까지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만을 갈구하는 그런 분들이 우스운가? 세상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개독교인" 이라고 생각되는가? 기독교를 욕먹게 만드는 그런 사람들 같은가?

 

웃기는 소리다. 주님의 제자들은 로마로부터 그렇게 심하게 핍박을 받는 와중에도 절대 굴하지 않고 오로지 주님의 말씀만을 섬겼다. 구원이 뭔지 모르는 무지한 세상 사람들로부터 욕먹는 게 두려워서, 그저 "눈치" 보느라 몸을 사리지는 않았던가? 어째서 믿음이 강한 그런 분들이 믿음이 약한 자들로부터 욕을 먹어야 하는가?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리 사회는 소돔과 고모라와 같다. 한 명의 의인이 아까운 시점이다. 어째서 적그리스도에 굴복하려 하는가?

 

우리 사회는 믿음이 강한 자들이 필요하다. 세상 사람들 앞에서 주님의 말씀을 당당하게 외치고, 오로지 성경책에 쓰여진 대로, 주님의 말씀대로 행할 사람들이 필요하다. 성경책의 말씀을 멋대로 왜곡하고, 세상 기준에 맞게 적당히 완화하고 수정하여 써먹으려는 생각은 그저 믿음이 부족한 적그리스도적 행위에 불과하다. 다시 한번,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쳐야 한다.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그리해야 한다. 눈 앞에 자신의 영혼이 타락되고 있는 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불쌍하지 않은가?

 

동성애를 옹호하고 타 종교를 인정하고 수용할 생각일랑 하지 마라. 다시 한번 금송아지를 만드려는 생각을 버려라. 불교를 믿는 중들이 좋은 이야기를 책으로 쓰고 설교하고 한다고 해서 그들의 말이 좋게 보이는가? 바로 그런 사람들이 믿음이 부족한 자들이다. 저들은 명백한 사탄의 화신들이다. 돌덩어리를 깎아 놓고 머리를 조아리는 우상 숭배자들에 불과하다. 주님께서는 마땅히 우상을 파괴하라고 하셨는데, 어째서 우상을 파괴하는 행위가 욕을 먹어야 하는가?

 

이 세상 사람들이 민폐니 범죄니 하는 이야기에 속지 마라. 모름지기 믿음이 강한 자들에게 있어서 율법이란 세상의 율법이 아니요, 오로지 주님의 율법만이 진리일 따름이다. 어째서 세상 율법에 굴복하여 주님의 율법을 저버리려 하는가? "적당히" 란 있을 수 없다. 그 "적당히" 세상에 굴복하고자 하는 마음 때문에 일곱 교회가 무너진 것이다. 이미 성경에서 명백하게 다 경고하고 있는 행위들이다.

 

디시 한번 말한다. 믿음이 부족한 자들이 많다. 그래서는 안된다. 믿음이 강한 자가 되지는 못할망정 그런 사람들을 "개독교인"이라고 폄하해서는 절대 안 될 일이다. 누가 "개독교"인인가, 누가 적그리스도인가 생각해 보라. 오로지 그분의 말씀만을 따라라. 동성애 옹호, 타 종교 인정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교황 같은 우상숭배자 엉터리의 설교가 적그리스도를 키운다. 교회의 적은 내부의 믿음이 부족한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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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우선 확실히 해야 할 것은, 예수고 부처고 누굴 숭배하던 간에, 모든 종교는 그 자체로서 개병신이라는 점이다. 신이 없다는 사실은 신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지 못함으로써 끊임없이 증명되고 있고, 인간의 이성은 이미 종교에 대해 의지하는 것을 거부할 정도로 성숙해져 있다. 간단하게 말해서, 부처든 예수든 이미 2천몇년 이전에 죽었으며, 부처에게 아무리 끊임없이 소원을 빌고 우리 자식 서울대가게 해달라고 백팔배를 하던말던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사실은 내가 하고자 하는 말과 전혀 관련이 없다.

 

(아 참고로 부처는 당연히 석가모니, 고타마 싯다르타를 말한다)

 

 

 

1. 예수는 독창적인 사상이 없다.

이것은 사실 예수의 근본을 생각해 보면(종교인) 너무나도 당연한 말일수도 있다. 부처를 한 종교의 창시자 이전에(사실 부처는 자기를 섬기라는 말도 한 적 없고 돌부처를 깎아놓고 절이나 하라는 말도 한 적 없다) 한 명의 철학자라고 한다면, 예수는 스스로 여호와의 자식이라고 하기 이전에 한 명의 종교(유태인들의) 지도자일 뿐이다.

 

예수의 사상 중 핵심적인 것으로써 보통 황금률을 든다. 이는 산상수훈에 나오는 말로써,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뜻이다. 자, 이것이 특별하거나 특이한가? 사실 이것은 인간 윤리의 가장 근본적이고 핵심이 되는, 다시 말해서 아주 당연한 말로써,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미 고대로부터(아리스토텔레스, 공자 등등) 전해져 내려오는 기본사상이다. 예수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으로써 드는 것이 사랑인데, 이 사랑은 바로 저 황금률에 기반한 것이다.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도 내밀라던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던지, 단 하나도 특별한 것이 없으며 삶의 진지한 통찰이나 진리에 대한 성찰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먼 것들 뿐이다. 다시 말해, 예수에게는 특별히 독창적이라 할 만한 사상 따위가 애초에 없으며, 진리에 대한 탐구와는 거리가 백만광년 쯤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부처는 뭐 말할 것도 없겠지만, 한 가지 언급하고 넘어가자면 그 당시에(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인도는 신의 대륙이라 불릴 정도로 신들을 깊이 숭상하는 븅신스러운 대륙이었는데, 부처는 사실상 무신론을 선언하고 있다. 사실 이 이유 때문에 부처 사후 한동안 인도에서 불교가 뿌리내리기 힘들었기도 하다.

 

 

 

2. 예수는 종교, 부처는 철학

이는 너무 명확한 종교의 한계에 기인하는 아주 물 흐르듯이 당연한 현상이다. 즉, 예수에게 있어서 그 모든 사고바탕의 중심에는 바로 여호와 라고 하는 절대유일신이 상정되어 있다. 이러한 종교인에게, 삶의 진리나 우주의 진리 따위는 모두 신에게 속하는 것이고, 그 방식은 바로 믿음과 기도를 통한 것이다. 그 어느 곳에도 인간 내면의 탐구나 우주 진리의 탐구는 속해 있지 않은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이, 다음과 같은 너무나도 극명한 차이를 불러온다. 부처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온갖 고행을 수행하다가, 깨달음의 길은 중도에 있음을 깨닫고 보리수나무 밑에서 수행한 끝에 마침내 진리를 깨닫게 된다. 예수는 세례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고 난 다음 광야에 나가 40일동안 금식기도를 하면서 사탄의 세 유혹을 이겨낸 끝에, 마침내 전도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너무나도 근본적이고 명확한 차이가 느껴지는가? 부처의 수행 목적은 "진리", 즉 인간을 비롯한 전 우주의 진리를 위한 것이고, 예수는 "신"을 섬기기 위한 것으로써 신을 제외하면 어떠한 의미도 의의도 없는 행동이다. 그러한 자에게, 진리니 뭐니 따지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인 것이다.

 

우리는 학교에서 불교 "철학"을 배우지만, 기독교 "철학"을 배우지는 않는다. "신학"을 배울 뿐이다. "철학"이란, 종교가 배제되었을 때 비로소 출발하는 것이다. 인간 이성이 신의 굴레로부터 해방되었을 때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다. 오로지 성숙한 이성이 존재할 때만 가능한 행위이다. 신에게 의지하고자 하는, 어떠한 진지한 고찰이나 성찰 없이 그저 신에게만 매달리고 기도나 하고 기적이나 바라는 종교인들에게는, 인간 이성이란 매우 위험한 사탄의 도구, 이브가 따먹은 선악과에 지나지 않으며, 아버지 신에게서 멀어지고 세속적인 유혹의 대상에 불과하며, 결국 영원히 정신적인 유아 상태로 머무름으로써 스스로의 가치를 박탈하고 스스로를 구속하게 될 뿐이다.

 

 

 

3. 예수 행적 하나하나가 병신

예수가 한 일을 생각해 보자. 그가 무엇을 했는가? 인간을 진리로 이끌었는가? 인류를 위해 뭔가 유익한 일이라도 했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예수의 행적은 그저 전도와 기적의 연속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는 기적 따위는 불가능한 일이며 거짓임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예수가 실제로 한 일은 무엇이겠는가? 한마디로 말해서, "믿으라" 한마디만 외친 것 밖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뭘 하든 믿으랜다. 자기가 신의 아들인 것도 믿고, 새로운 율법도 믿고, 죽으면 천국가고 지옥가는 것도 믿고, 믿고 믿고... 암튼 요즘 종교가 하는 병신같은 짓거리들의 집합체를 생각하면 정답이다.

 

물론 이 또한 종교의 한계에 기인한다. 종교는 어떠한 이성적인 사고방식이나 증거에 기인하지 않기 때문에, 그 주장의 정당화 방식은 무조건적인 믿음의 강요 밖에는 없다. 애초에 경험으로써 증명할 수 없기에, 아니 애초에 그 자체로써 거짓이고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입증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들은 "믿음"을 외치는 것 밖에는 해답이 안 나온다. 부처와 같이 진지한 성찰 하에 구축한 사상이 아니라 노무현 시체팔이하듯이 신의 이름을 팔아서 행하는 것에 불과하기에, 그의 모든 행적의 핵심을 뽑으면 결국 "믿음" 밖에는 남지 않게 되는 것이다. 실로 병신스럽지 아니라 할 수 없다.

 

 

 

4. 예수는 실존인물이 아님

예수는 후대 사람들에 의해서 완전히 창조되었거나, 그 당시 존재하던 예언자들 몇 명을 간추려서 합쳤거나, 혹은 시기를 달리하는 여러 명의 행적이 종합된 것이거나, 어떤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가 뻥튀기되었거나, 암튼 그러한 종류의 하나이다.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성서 상의 인물 자체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는 수많은 증거가 뒷받침한다. 당대 지중해 근처의 역사를 기록한 많은 유명한 역사학자중의 기록 중에,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어느 특정한 인물에 대해 기록한 문구는 단 한 개도 발견되지 않는다. 사실 예수쟁이들이 증거랍시고 가져오는 것들이 있긴 하다만, 그 연대기로 보거나 주변 정황으로 보거나 심하게 신빙성이 떨어지는 것들 뿐이다.

 

예수의 일생은 고대 이집트 신 호루스와 거의 유사하게 구성되어 있다. 물론, 호루스라는 것도 전혀 실존하지 않은 가상의 신에 불과하다는 점을 상기해 볼 때, 이는 가톨릭이 고대 종교를 편입하는 과정 속에서 그대로 차용되었거나, 기타 필자가 잘 알지 못하는 종교학 상의 몇 가지 이유들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성경 상의 예수라는 인물 자체는 완전히 허구라는 말이다. 뭐, 석가모니의 실존에 관해서는 수많은 사료들이 증명하고 있으므로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겠다. 참고로 사료에 대해 말하자면, 예수가 석가모니보다 몇백년 후대 사람이라고 가정된다는 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당연히 사료가 있다면 몇백년 후대의 사람의 것이 더 명확하고 많이 증명되어야 할 텐데, 그렇지 않다는 점은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이상의 이유로, 부처를 진리라고 가정한다면 예수는 개병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난 불교신자도 아니고 이 글 또한 부처 개인을 찬양하기 위해 쓴 글이 아니다. 단지 예수의 병신스러움을 다시 한 번 강조하기 위함일 뿐이다. 사실 이 이야기에는 가장 중요한 점이 빠져 있다. 그것은, 예수가 바로 인류의 역사와 현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다. 그 수많은 병신성, 십자군 전쟁까지 언급하지 않아도 이미 너무나도 충분한, 기독교가 존재함으로 인해 이루어진 수많은 병신스럽고도 비극적인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진리를 위한다던지, 인간 이성의 해방을 위한다든지, 이런 거창한 이유를 대기 이전에, 그저 이러한 병신짓을 그만두고 이러한 비극을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 영원히 작별을 고하기 위해서, 기독교는 지구상에서 하루빨리 사라져야만 할 것이다.






게재하기가 부끄러울 정도의 완전한 개소리. 이유는 댓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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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배필2폐인 2014.04.07 08:29 신고

    기븐님 재미없네요 노잼

    • BlogIcon WeirdSoup 2014.05.22 23:32 신고

      이님 살아있었네. 나 디씨 접은지 오래고 지금은 메탈갤러리에 상주하고 있음

  2. BlogIcon WeirdSoup 2017.02.17 05:53 신고

    반신론자 여려분은 절대로 이딴 글을 쓰거나 읽어서는 안 된다. 애초에 수준 자체가 떨어지는 것은 둘째치고, 완전히 틀린 내용을 맞는 것처럼 자랑스레 서술하고 있다. 4번 항목의 경우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에서 보고 넣은 것인데, 애초에 그 주장 자체가 완전히 개소리이고, 나중에 도킨스 본인이 자기가 틀린 말을 했다고 사과까지 했다.

    그리고 우리의 목적은 2000년 전에 죽은 예수를 까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 훨씬 오래 전에 죽은 석가모니를 찬양하기 위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모든 종교를 그 근본 논리에서부터 근원적으로 타파하고, 인간을 종교 따위의 사슬에 얽메이지 않은 인간 본연의 자유로운 지적 존재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예수따위 백날 공격해봤자(그것도 저들이 신봉하는, 마땅히 타파해야 할 "성경"에 오히려 우리 스스로 기어들어가서 이에 근거해서는) 아무것도 안 나온다. 그러지 말자.

빌어먹을 네놈이 추천하는 바람에 "신을 옹호하다"라는 희대의 병신책을 보고야 말았다

 

진짜 병신이 따로 없다. 다행히 다 읽진 않고 초반에 개 병신소리 하는 거 보고 바로 쭉쭉 넘기고 나서

 

후반에도 계속 좆병신 소리 지껄이는 거 보고 그냥 덮었다

 

참고로 이 책을 학교 도서관에서 봤는데, 이미 이전에 읽은 어느 누군가가 책의 병신같은 부분 부분마다 코멘트를 달아놨더만. 존나 개씹쓰레기라고

 

심지어 뭐라고 말하는지도 제대로 알아듣기 힘들다. 아마 번역상의 문제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내가 봤을때 유신론자들(분명 저자는 무신론자 맔시스트라고 주장하긴 하지만) 특유의, 증거와 현상을 무시하고 잘난체하고 남들한테 얕보이지 않기 위해 맨날 하는, 지나치게 수사적이고 현학적인 작문 형식을 적극 활용하여, 존나 횡설수설하며 질질 늘이고 했던 말 형태만 바꿔서 반복하며 은근슬쩍 병신같은 주장을 객관적 사실인 양 갖다 붙이는 꼬라지를 해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외로 이 책을 읽고 내가 받은 정신적 피해는 예상만큼 크지는 않았다. 그 이전에 훨씬 더 병신같은 진짜 개씹병신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도킨스의 망상"이라는 책이다. 이 책을 읽은 이유 또한 우긔두긔 때문이다. 네놈이 나한테 "만들어진 신"의 병신성을 하도 역설해서, 어디 한번 "만들어진 신"을 반박하는 책을 읽어 보고 판단해 보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진짜 하나부터 열까지 다 병신같아서, 처음에는 진짜 하나하나 존나 까대는 글을 써 볼까 생각했는데, 진짜 짜증나기도 하고 시간 낭비인거 같아서 그냥 갖다 치워버렸다.

 

병신같이 예수의 망상에 사로잡혀서 지옥의 영원한 형벌이나 두려워하고 십자가 고통에 눈물찍찍 흘리는 놈들은 전혀 모르겠지만, 정상적인 사고를 할 줄 아는 놈이면 저 책이 얼마나 병신인지 그냥 읽고도 대번에 알 수 있으며 몇 페이지만 읽으면 병신같은 내용들 아무리 적어도 두세가지는 추려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각종 책들(저것 뿐만이 아니라 무신론 책도 더 많이 읽어봤고, 지금도 읽는 중이다)을 보고 느낀 결론은, 유신론자들과는 아예 애초에 말이 안 통한다. 그러므로 아예 말을 섞지 않는 것이 상책이며, 무신론자들은 최소한 알아들을 수 있는 지성을 갖고 세뇌가 덜 된 사람을 대상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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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긔두긔 2015.08.16 01:36 신고

    만들어진 신의 병신성을 느끼려면, 창조과학계에서 내놓은 얼토당토 않는 사이비 과학서적이 아닌 도킨슨 자신이 쓴 교양과학 명저를 읽어야지. 그가 비록 새로운 과학적 사실을 개척한 과학자는 아니었지만, 윌리엄스와 해밀턴의 다윈주의를 유전적인 관점에서 조명한 학술적 내용을 대중에게 효과적으로 저술한 교양과학 명저를 읽다가 만들어진 신 같은 책을 읽다보면 이것이 정말 동일한 작가가 쓴 것인지 의문을 품으며 병신성은 알아서 느끼게 된다.

    이기적 유전자 - 확장된 표현형 - 눈먼시계공을 잇는 시리즈에서 눈먼시계공은 창조과학의 대한 반박과 유전자의 보존만이 유일한 생명의 본질적 목적이라는 논쟁적 저술목적과는 별개로 감정을 배제하고 과학적 방법론으로 누적적인 자연선택을 입증하고, 진
    화론의 메커니즘과 타당성을 설명해낸 책이지. 하지만 만들어진 신은? 마치 오래된 부랄친구가 여친에게 실연당한후 자신의 구구절절한 드라마를 동이 틀때까지 반복재생하는 것처럼 이제까지 뻔히 알고 있던 내용들을 동어반복하는 것에 지나지 않지. 그런 책을 읽고나서 얻을 수 있는게 뭐지? 성경 텍스트의 대한 디테일한 내용과 성경의 수많은 오류들? 아니면 이제 무신론이 완전히 승리했다는 자아도취적 승리감?

    도킨슨의 만들어진 신의 그러한 자기본위의 동어반복은 오히려 문제의 본질에 다가서는 걸 막고 있지. 무신론적, 그리고 인본주의적 관점에서 종교가 어떻게 사회,역사,문화적 층위에서 탄생했고 인류 문화권과 서민들이 그러한 개념과 양식을 발전시켰는지 말이야. 그리고 과연 종교를 '제거'한다고 해서 그러한 모든 문제들이 도킨슨이 말한대로 사라질까? 도킨슨은 이미 구닥다리가 되버린 19세기 순진한 계몽,이성주의를 설파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믿음과 희망을 만들어진 신에 써놨지. 그는 종교에 대한 모든 문제를 1차원적이고 단순한 수식같은 것으로 일축시켜버렸어. 맑스야 말로 제대로된 무신론자중 한명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즘 현대인에게 있어서 무신론이란 것은 일종의 악세사리에 지나지 않지. 그들에게 바랄 수 있는 논리란 것은 그건 다 구라야라는 일축밖에 없다.)그는 종교를 인민들의 눈물이 흘러들어간 계곡으로 표현했고, 인간의 물질적 기반들이 변혁된다면 종교는 자연히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했지. 도킨슨은 애초에 유물론적 기반에(현실에 모순과 고통, 그리고 기득권의 이익이 복합적으로 섞인) 종교가 세워져 있는 것이 아닌 종교가 독단으로 존재하는 것이고, 그 종교가 초월적으로 물질적 기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종교가 제거된다면 인류는 희망찬 미래를 향해 나아갈 것이라는 원인과 결과를 구분하지 못하는 구닥다리 주장을 하고 있는데, 뭐 깔건 많지만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애초에 도킨슨이 까이는 것은 그의 명석한 교양과학 저석때문이 아니라, 인문학을 제대로 전공하지도 않았으면서 인문학 투사로서 펜을 들려고한 그의 영역 침범 때문이지. 자신이 알고 있는 진실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그리고 차가운 지성으로 창조과학을 간접적으로(하지만 가장 직설적이고 강력하게) 반박한 눈먼시계공을 읽다가, 자기 감정도 주체 못하고 주절주절 했던 말 하고 또하고 또하는 만들어진 신을 읽다보면 바로 이 책을 라면 받침대로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 도킨슨은 옜날에 계몽학자들이 주장했던 말을 논쟁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지. 지긋지긋한 동어반복의 형식으로.

    물론 창조과학이라는 사이비 과학으로 주류과학계는 아예 신경도 쓰고 있지 않는 주장을 일반인들에게 떠벌리며 마치 정당한 대립각이 성립되는 양 연기를 하고 있는 창조과학을 지지하는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에게 빡친 도킨슨이 이해가 되지 않는건 아니지. 이제 나이도 많으신데 말이야

    그리고 글을 읽어보면 해리 이글턴의 책을 정독했는지 의문이다. 물론 번역이 병맛같은 부분이 있는 것도 인정하고 난해하고 해학적인 문체가 번역투와 맞물려 좀 편하게 읽기는 그렇다는 부분은 인정하지만 알아듣기 힘들다고 말하는 것은 좀 오버처럼 느껴지니까. 그렇게 따지면 대체 인문학 원전이나 서적중에 읽을만한 게 뭐가 있지? 이해를 돕기 위해 링크를 남긴다. kells.tistory.com/223

    여튼 도킨슨의 망상같은 책을 읽느라 버린 시간의 애도를 표한다. 네 말대로 지옥은 아니었지만 해병대에서 좀 구르다 와서 덧글이 늦었다.

    • BlogIcon WeirdSoup 2015.08.16 02:05 신고

      와... 대단하다. 시공간을 뛰어넘어 댓글을 달은 너의 의지에 경의를 표한다. (비꼬거나 놀리는거 아니다. 애초에 이 글을 어떻게 찾았는지부터 놀랍다)

      글에 대한 내용은, 당연히 몇년 지나면서 전부 다 까먹었다. 솔직히 뭐라고 할 말도 없다. 본문에 쓴 책 또한 내용 하나도 기억 안난다. 그리고 저때 무신론 및 유신론 책들을 탐독하고 내린 결론 또한 일치한다. 애초에 난 관련 전공자도 아니고, 그저 한 명의 일반인으로써 상식과 경험 선에서 접근할 뿐이다. 솔직히, 종교가 어떻게 생겨났고 무슨 영향을 끼쳤는지는 그렇게까지 관심있는 분야는 아니다. 나한테 중요한 것은 결국 그 종교가 진리인가, 그리고 나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서 삶에 적용해야 하는가 라는 부분이고, 이에 대한 결론은 저 당시나 지금이나 달라진 부분은 없다.

      만들어진 신을 처음 읽었을 당시에는 군대에서 온갖 기독교의 횡포를 겪으면서 그야말로 증오심이 온 몸에 체현된 상태에서, 기독교를 이처럼 신명나게 까대고 무신론의 옳음을 역설하는 책을 보게 되자 가뭄에 단비 내리듯이 (종교인들이 성령 내리심을 받듯이) 그 책을 받들었던 면이 분명 존재한다. 지금은 그 책에서 예수는 실존인물이 아니라고 하는 등의 오류(이 점은 도킨스 본인도 인정함)라던지, 기타 등등(너님도 지적한 것들이라든지)의 이유로 굉장히 여러모로 까이는 책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무조건적으로 (예전에 그랬듯이, "무신론의 바이블"과 같이) 숭배할 생각은 없다. 사실 마지막으로 읽은 지도 몇 년 지나서 잘 기억도 안 나고...

      마지막으로 종교 논쟁에 대해 말하자면, 이미 난 그런 쪽의 논쟁에 관심 끊었다. 내가 내린 결론은, 본문에 써 있기도 하지만, 유신론자와는 궁극적으로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애초에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리고 믿음이라는 것을 기본 전제로 깔고 가기 때문에, 아무리 논쟁해봤자 평행선이고 무의미한 행위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난 그냥 관련 논쟁을 포기하고 오로지 사실 판단에 입각하여 현상을 받아들이고 그걸 바탕으로 나만의 행동방침을 결정하기로 했다. 무신론 및 유신론 서적들 또한 저 당시 읽은 것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읽을 생각도 없고...

      암튼 그러하다. 참고로 만들어진 신이 여러 문제점이 많다고는 해도, 최소한 관련 서적들 중에 가장 "사이다 같은" 책에 속한다는 사실은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인기를 끌 수 있었겠지. 나 자신에게도 (과격한 급진적 반종교 및 무신론 사상을 갖게 한 점을 제외하면) 나름 여러 모로 충분히 도움이 됐다고 생각함. 그렇다고 단점들 다 덮고 명저로 인정해주자 뭐 그런건 당연히 아니고, 최소한 냄비받침보다는 책장 한구석에 위치하는 걸 수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는 것.

  2. 우긔두긔 2015.08.16 02:39 신고

    일부러 찾아서 들어온건 아니고, 매버릭을 검색해보다가 우연히 이 블로그로 들어와서 글을 보게됨. 아마 메버릭이 존나 좋지 않았으면 이 블로그에 오래 머물 이유도 없었겠지.

    나도 사실 내가 그때 무슨 글을 썼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아마 만들어진 신이 마치 무신론의 바이블인양 표현하고(스피노자나 러셀이 들었으면 코웃음을 칠만한) 도킨슨을 무슨 혁신적 사상가로 빨아대는 수많은 글들에 대한 짜증이 엉뚱한 곳으로 튀어서 생각없이 쓴 글이 아닌가 한다.

    자기모순으로 보일 것이고, 이해가 가지 않겠지만 나는 유신론자이면서 동시에 개정판 책을 다시 구입하는 도킨슨의 팬이기도 함. 좋은 교양 과학 서적을 쓸 수 있는 역량을 가진 과학자가 창조과학회 같은 곳에 어그로에 휘말려서 정력낭비를 하며 진흙탕 싸움을 하고 있는 걸 보니 답답한 마음이 들어서 써보기도 했음. 애초에 그는 무신론자로서 자신의 신념을 알리는 것은 그가 쓴 과학저술로만으로도 충분히 효과적이었고 그의 논쟁적이고 정치적인 켐페인들과 발언들은 같은 인본주의적 계열에서 그의 안티만 양성했을 뿐이었으니까.

원래 대중은 자기가 보고 싶어하는 것만 보고 듣고 싶어하는 것만 듣는다.(그렇기에 실제로는 우월하지 않은 권력자가 우월한 척 하며 "민주"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것이고)


그러한 일반 다수 대중들에게 있어서, 자신들이 열등하고 세상에는 그보다 뛰어난 사람들이 얼마든지 많다는 사실,


또한 "만인은 동등하다" "신 앞에 모든 사람은 공평하다" 따위의 잘못된 개념에만 매달리고 그것을 믿고 싶어하는 자들은 실제로 열등하기 때문에 자신이 열등하다는 사실을 보고 싶지 않는 것이라는 것과, 한편으로 세상에는 힘을 얻을 수 있는 위대한 사람이 있고 실제로 힘을 얻고자 하는 사람만이 우월해질 수 있다는 것은 심히 불쾌하고 보기 싫은 사실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그 정신적 수준이 아직도 유년기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종교인이다.


하지만 사타니즘이 일반 대중들에게 천대받든 말든 그건 그리 중요한 사실이 아니다. 그것은 결코 대중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인은 동등하다" 따위의 말을 지껄이는 건, 사실 자기는 열등한데 옆의 다른 어떤 사람은 우월하다는 것이 배가 아파서 자기도 그 사람처럼 되고 싶어하는 열망이 역으로 작용하여 "다 같이 못살자" 라는 식으로 발전한 허접스러운 개념이다.


주둥이로만 나불대 봐야 소용없다. 스스로 위대해지고 싶은 자만이 실제로 위대해진다. 사탄은 권력이고, 힘이고, 자유이다.


옆의 잘나가는 사람만큼 우월해지고 싶은가? 힘을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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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탄 2014.10.30 17:02 신고

    꼭 나를 찾아오지 않아도 자유든 권력이든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이 있어.. 뭐 나를 찾아오는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이 노래는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던 노래였는데, 언제부턴가 의식적으로 듣지 않게 되었다. 그 이유는 바로 이 노래를 번안해서 부른 우리나라 CCM 가수들과, 그 기독교적 가사 내용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어느날 저 동영상을 보고 이 노래를 다시 듣기로 마음먹었다. 이번 글의 주제는 바로 이것이다. 저 동영상이, 개독교가 어떻게 순수하고 아름다운 인본주의에 먹칠을 가하는지 너무나도 극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본래 이 노래는 뉴에이지 밴드인 시크릿가든이 부른 노래로 알고 있다.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면 이 노래가 CCM이다 아니다 해서 말이 많은데, 사실 이 노래를 애초에 CCM으로 의도하고 만든 것이던, 원래는 그냥 대중가요였는데 개독들이 지멋대로 CCM으로 바꾼 것이던 별로 중요하지가 않다. 본질적인 것은, 개독적인 마인드로 바라볼 때와 순수 인간적으로 바라볼 때의 관점의 차이와, 그로 인한 결과에 있기 때문이다.

이 노래의 가사는 매우 간단하다. 사실 정규 교육을 받았다면 이 정도의 영어를 못알아먹는 사람은 없어야 하겠지만, 어쨋든 인터넷에 검색해 보면 수많은 친절한 사람들이 번역해 준 것들이 있다. "내가 힘들고 괴로울 때 당신이 곁에 있기에 다시 힘을 내고 일어설 수 있다" 라는 따뜻한 인간애를 주제로 하는 노래이다.

헌데 수많은 개독들과 일반인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이, 바로 You가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사실 사물과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정상인에게 있어서는 솔직히 별반 해석이 필요하지 않다. "당신"은 연인이 될 수도 있고 부모님이 될 수도 있고 아들딸이 될 수도 있고 형이나 동생이 될 수도 있고 친한 친구가 될 수도 있다. 누구든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사실은,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 인간이 살아갈 수 있다는 바로 그 사실이다.

그런데 뇌송송 구멍탁이라는 수식어로도 모자란 지능과 판단력을 보유하신 우리 개독님들께서는, 이러한 지극히 기본적인 것마저도 생각하지 못하고 "대체 You가 누구인가" 하는 질문을 하기에 이르렀다. 사실 개독이라는 게 바로 인간 본연의 가치와 그 가능성을 무시하고 말살하며, 자기가 죄인이라고 끊임없이 외쳐대며 있지도 않은 절대자를 상정해놓고 거기에 어린아이처럼 기대서 스스로 일어서서 개척할 생각도 못 하고 다른 누군가(예수)가 날 알아서 구원해주기를 바라는 게 아니던가?

그래서 개독들은 You가 바로 신이라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의 개독적인 마인드로는 인간은 너무 나약해서 스스로 의지할 수 없고 반드시 신이 이끌어야 한다는 수동적이고 패배적인 생각밖에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희대의 역겨운 노래가 탄생했다. 바로 "날 세우시네"이다. (이거 말고도 "주 날 일으켜" 등 많은 버전이 있다)

내가 이 노래를 더 이상 듣지 않게 된 계기가 바로 저 CCM을 듣고 나서 부터이다. 본래 ccm이라는게 역겨움 투성이지만, 저것보다 더 역겨운 건 아마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절망마저 느낄 수 있었다. 개독들은 자기 스스로는 아무것도 못한다. 자기 인생마저 스스로 개척할 수 없다. 항상 신이 있어야 한다. 자기보다 힘쎄고 능력좋은 절대자가 자기를 받쳐 주어야만 비로소 자기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이보다 더 역겨운 게 더 어디 있을까? 다 큰 어른들이 아직도 어린아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어리광을 피우고 있는 모습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난 위에 링크를 걸어놓은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역설적이게도, 저 영상을 처음 본 장소가 바로 군대 안에 있는 교회에서이다. 어떤 정신교육을 듣던 중에 저 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이 역겨운 노래에서, 개독적 색채를 제외하는 순간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가 되리라고는 도저히 생각치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조상들이 "인간"이라는 단어를 만들 때, 이미 그 진리성을 깨우치고 있었던 듯 하다. 모든 존재는 기본적이고 객관적으로 아무 의미가 없다. 사람이라고 해서 결코 다르지 않다. 우리는 마치 전자와 양전자가 순간적으로 생성되었다가 소멸되듯이, 그저 지금 이 순간에 발현되었다가 다음 순간에 사라질 현상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지금 이렇게 살아가고 있고 또한 살아갈 가치가 있는 것은, 그 가치를 스스로 창조해 내기 때문이다. 

이게 핵심이다. 나의 가치, 우리의 가치는 결코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 스스로 존재하거나 어떤 근육질의 수염기른 할아버지가 툭 던져주는 것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무가치하며 무의미한 인간의 삶 속에서, 스스로 구축하며 만들어가는 건 바로 인간이다. 인간의 아름다움은 바로 인간이 창조한다. 이것이 바로 개독교인들은 결코 알지도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한, 그러나 너무나도 명확하고 단순하며 객관적인 진실이다.

그렇기에 저 노래는 아름다울 수 있다. 저 영상은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삶을 살아가며 또한 서로에게 힘이 되고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人間이라는 단어 그대로이다. 그럼으로서 서로 삶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인본주의의 가치를 함축적이고 명확하게 표현해내고 있다. 역겨운 개독사상 따위와는 비견될 수 없는 숭고함을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노래는 인간이 어떻게 가치가 있는지, 그리고 개독교가 그 가치를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그래서 기독교가 왜 역겨운지를 아주 극명하게 나타내어 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중요한 진실을 담고 있다. 나에게 힘이 되어 주는 "당신"은 결코 하늘 저 멀리에 있는 수염난 아저씨가 아니다. 바로 곁에 있는 인간이다. 인간의 소중함을 깨닫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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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문장은 전제 자체가 잘못되었다. 종교의 기본 성질중에 하나가 배타성이고, 특히 기독교는 내집단 도덕에서 출발한 히브리 민족의 전통 신앙이다.(사실 이걸 그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우리 한반도에서 믿는다는 거 자체가 아주 웃긴일이다. 실제로 신약성경에도 보면 예수가 자기 스스로 "나는 히브리 민족만을 구원하기 위해 왔다"라고 말한다) "기독교가 타락했다" 라는 말 자체가 우리가 종교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신뢰감을 표출하고 있고 그것을 좋게 생각하면서 동시에 종교에 특별한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많은 사람들이 개독교 개독교 하면서 비난하는 것들은(여기서 혼동하지 말아야 할 것이, 어느 특정 개인의 범죄와 관련된 것이다. 사실 그것은 종교와는 무관하게 그 개인 자체로서 존재한다. 목사들이 신도들 성추행을 많이 한다고 해서 기독교 교리에 성추행이 연관되어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또한 그것이 "종교와 도덕" 사이에 어떠한 추론 요소를 제공한다고 보기도 힘들다.) 사실 그 종교 그 자체로서의 속성일 뿐이다. 스스로를 "올바른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이, "일부 잘못된 기독교인" 때문에 교회가 욕을 먹는다고 주장하지만, 만약 실제로 그 사람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는 자기가 믿는 종교에 대해서 충분히 잘 알고 있지 않는 것이 틀림없다.(http://weirdsoup.tistory.com/236 참조)

여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가 만약에 그 자체적인 속성마저 무너뜨리면서 인간의 기본 도덕 원칙과 사회적 기준과 기대에 부합하는 올바른 행동을 하고 목사들은 다 착한 사람들이고 인본주의적인 사랑과 정의를 위해 힘쓴다면 어떨까? 물론 이것은 이미 앞선 문장에 나타난 대로 모순적이지만, 겉모습만 보고 모든 것을 판단하는 많은 "대중"들은 기독교가 좋다고 생각하고 믿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생각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기독교가 별로 믿을 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다.

종교는 무지를 먹고 자란다. 지금 종교의 힘이 상당히 약화된 것은 인간 지성의 보편적 정도의 발달과 무관하지 않다. 여기서 내 개인적인 이야기를 예시로 들어 보고자 한다. 나는 5살 때부터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런데 사실 내 꿈은 어릴 적부터 과학자였고, 아버지와 함께 수많은 이야기들을 하면서 상식과 합리성과 의문 제기를 통한 비판적 수용에 대해 익히며 자라왔다. 초등학생밖에 안 된 내 수준으로 생각하기에도, 성경책에 나온 거의 모든 이야기들은 모순투성이며 비과학적이고 전혀 말도 안 되고 앞뒤가 맞지 않는, 그야말로 그리스 로마 신화의 아류가 아니라 3류에도 못미치는 허접스러운 소설이었다.

난 그래서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했다. 나중에는 심지어 기도도 하지 않았다. 나 자신이 그것을 알지 못하겠는데, 알지도 못하는 대상에게 기도를 해서 뭣하겠는가? 초등부 중등부 선생님들과 심지어 전도사들이 내가 던지는 질문들에 대답을 하지 못하고 쩔쩔매며 우물쭈물하는 모습을 보고 난 비웃음을 던지며 교회 다니는 것을 그만두게 되었다.

누구는 믿고, 누구는 믿지 않는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지극히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생각할 줄 아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방법이며, 실제로 이러한 방법을 우리 주위의 수많은 교회 안다니는 사람들이 구사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신은 없고, 상식적으로 교회 다니는 것은 별반 의미없고, 상식적으로 기도는 아무 쓸모없고, 상식적으로 성경은 모순투성이이고, 상식적으로 기독교 교리는 쓰레기다. 그러나 한가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모든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은 무신론자이다"라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저 말은 반만 맞다. "종교를 가지지 않는다"와 "무신론자이다" 라는 것은 다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것의 한계는 바로 이런 점에 있다. 이 방식은 별로 깊게 생각할 필요가 없이 그냥 반사적으로 반응하면 되는 것이다. 이 말은 다르게 말하면, "신은 없다"라는 사실에 대해서도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앞서 말한 그런 부류의 사람들에게 "신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라고 물어보자. 대부분 "없다"라고 하겠지만, 또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그건 모른다" 라고 말한다. 더 캐물으면, "생각한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라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특정 상황, 예를 들어 감당할 수준을 벗어나는 불안과 고통 같은 요소가 찾아오면, 지극히 종교인스러운 행동을 한다. 이는 내가 직접 군생활하면서 목격한 일들이고, 이것 때문에 나는 "자기가 무신론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진짜 무신론자가 아니다" 라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두 번째는,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앞서 말한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서, 그것에 대해 논리적으로 분석해보고, 앞뒤 관계를 따지며, 옳은지 그른지 스스로 사고 능력을 동원하여 판단하는 것이다. 이 방식으로 믿지 않는 사람들의 진짜 힘은 "세뇌에 대한 면역력"에 있다. 종교인들은 비 종교인들을 끊임없이 세뇌시키려고 하고, 많은 "생각할 줄 알지만 상식적으로만 생각한 사람들"이 그것에 넘어간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문장을 고치면, "모든 깊게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은" 혹은 "모든 이성적으로(합리적으로) 생각할 줄 아는 사람들" 이라고 말해야 한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뇌 속에 들어오는 정보에 대해 스스로 그것을 비판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저러한 세뇌에 대한 면역력을 얻을 수 있다.

그리하여 이제 제목에 대한 답변을 해보자. 답은 "아니오"다. 내가 일전에 쓴 글도 사실 이러한 점 때문에 쓴 것이다. "종교"와 "지성"은 인간의 본성으로부터 도출된 상호 양립할 수 없는 속성이다. 종교인들이 뭘 하든 간에, 지성이 충분히 발달하면 종교는 자연스레 없어진다. 그렇다면 다른 쪽으로 생각해 보자. 어떤 상황이 주어졌을 때 내가 개독교를 믿을까? 답은 아주 간단하다. 지성이 배척당하고 종교가 그 힘을 얻었을 때 태어났다면 아마 기독교(여기서 기독교는 그냥 하나의 예시일 뿐이고 다른 종교를 대입해도 무방하다)를 믿었을 것이다.

나의 지성이 내가 스스로 만들어낸 나 자신의 고유하며 온전한 속성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모든 개인은 다른 모든 물질과 마찬가지로 다른 것들과 상호 작용하게 되어 있다. 고대로부터 권력자가 자신의 권력을 위해 만들어냈으며 자연스레 정치 속으로 혼합시킨 종교의 힘을 휘두르며 피 지배자들을 억압할 때, 그 당시 지배를 받았던, 온갖 미신적 두려움과 경외심에 사로잡힌 그들과 같은 상황 속에 내가 놓여 있었다면, 과연 나의 지성이 지금과 같은 정도로 발현될 수 있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아무 의심도 없이 삼위일체와 처녀잉태와 부활과 재림을 믿으며 신부와 주교와 교황에게 주어진 권위에 대해 어떤 의심도 품지 못하고 마녀를 두려워하며 살아갔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편으로 나는 지금 이 시기, 인간 이성이 해방의 싹을 틔우고 있는 이 시기에 내 존재가 발현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한편으로 종교에 대한 더욱 강한 증오심을 표하는 바이다. 지금 (정상인 중) 가장 지성이 낮은 사람도 교회가 지배하던 시절에 평균적인 사람들 수준의 지성을 보유하고 있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종교가 진정으로 완전히 사라지는 것만이 인간 이성이 찬란한 꽃을 피우는 역사를 도래하게 할 것임을 알 수 있다. "온건한 무신론"? 실로 웃기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종교와 이성은 결코 양립할 수 없는 존재이다. 종교에게 죽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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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WeirdSoup 2014.07.27 20:28 신고

    원래 이 글에 대해서는 합당한 지적이 있었는데, 어디에서 그걸 읽었는지 찾을 수가 없다. 암튼 그 지적은 마지막 문단에서, "지금 (정상인 중) 가장 지성이 낮은 사람도 교회가 지배하던 시절에 평균적인 사람들 수준의 지성을 보유하고 있는 것을 생각해 볼 때" 라는 문장에 대한 것이었는데, 일응 합당하다고 생각해서 뒤늦게나마 코멘트한다. 저 문장은 다소 오류가 있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가장 치명적인 것 하나만 올리면, 그러하다는 실증적 증거가 전혀 없다.

개독교를 싫어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거나 혹은 인터넷 사이트 등을 돌아다니다 보면, 개독교의 몰지각하고 몰상식한 행동 때문에 사람들이 개독교에 대해 가지는 반감이 점차 늘어난다는 주장들을 볼 수 있다. 특히 최근 10년간 우리나라의 3대 종교(기독교, 천주교, 불교)들 중에 신자 수가 감소한 것은 유일하게 기독교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개독교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진다고 좋아한다.

그런데 저게 과연 좋아할 일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간단하게 글을 써 본다.

우선, 우리가 비난의 초점으로 삼아야 할 대상에 대해 생각해 보자. "개념 없는 개독교인"인가? "돈밖에 모르는 목사들"인가? "구역질나는 개독교 그 자체"인가? 다 틀렸다. 생각할 줄 아는 무신론자라면, 당연히 종교 그 자체에 대해 비난의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종교 중의 하나로서 기독교를 들먹일 때는, 다른 부차적인 문제는 우선 제쳐 놓고, 기독교 그 자체의 모순투성이 교리와 원론적 허구성에 대해 말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어떠한가? 우선, 일부 제대로된 비판의 경우는 저러한 면에 대한 비판이 다수 존재하고, 또한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을 보면 그러한 비난이 우선이 되고 있지만, 상당수의 다른 많은 개독교 불신자들은 그런 점은 전혀 생각치 않고 있다. 이 경우에, 어떤 사람은 "어쨋든 사람들이 개독교를 싫어하게 되었으니 잘된 일이지 않냐"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아주 잘못된 말이다. 저런 식으로 개독교를 비난하는 것은, 사실상 그들이 비난하는 개독교인과 방향만 다를 뿐 본질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만일 그렇다면, "개념없는 개독교인"이나 "돈만 밝히는 부도덕한 목사" 따위가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일단 가정으로 삼아 보자. 그것이 내키지 않는다면, 반대로 타의 귀감이 되는 모범적 종교인들이 많아진다면 어떻게 될지 생각해 보자. 이러한 경우들이 일어났을 때에도, 과연 저 사람들이 개독교를 비난할 것인가?

이는 앞서 말했던 3대 종교 신자 이야기를 봤을 때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당장 내 주위를 봐도, 많은 사람들이 단순히 개신교가 싫어서 천주교로 개종하고 있거나 최소한 천주교에 대해 강한 호감을 표하고 있다. 사실상 천주교도 개신교와 별반 다를 바가 없는데도 그렇다. 단순히 개독교와 비교를 해서, 조금이라도 더 좋다고 생각되는 천주교를 선택하는 것이다. 불교도 마찬가지다. 바로 이래서 내가 저 결과가 전혀 좋은 일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요셉병원이라는 곳을 만들고 수십년간 소외계층에게 무료로 진료를 해 오다 2008년에 별세한 선우경식이라는 의사가 있다. 이 사람은 천주교인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이야기를 듣고 감동을 받았고, TV 프로그램으로도 만들어져 많은 시청자들을 울렸다. 모두가 참된 의사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생각해 보자. 저러한 훌륭한 사람이 존재함으로 인해, 천주교의 가치가 올라가는가? 혹은 무신론자들의 도덕성이 의심받고, 종교의 입지가 넓어지는가? 표면상으로는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실재적으로는 아무 것도 달라지는 것이 없다. 저 사람은 저 사람이고, 종교는 그 자체로서 존재한다. 그의 선행과 종교 그 자체와의 실재적 상관관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런데 일반 사람들은 대부분 이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그렇다면, 우선 개독교의 원론적인 부분에 대한 비판을 통해 일단 박살내 놓고, 그 후에 병신같은 개독교인들에 대해 비난을 하는 것은 옳은가? 그것이 개인 취미라면 말리지 않겠다. 하지만, 그것을 통해 무신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거나 개독교 자체에 대해 비난을 하려는 생각은 접었으면 한다. 왜냐 하면, 앞서 말했듯이 이러한 모든 것은 그냥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이런 거나 물고 늘어지는 건 전혀 생산적인 일이라고 말할 수 없다.

혹자는 개독교인의 행동을 통해 개독교 교리가 얼마나 지랄같은지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 또한 아니다. 개독교인의 행동이 개독교를 믿어서 생긴 결과라고 해도, 그것은 이미 개독교 교리 자체에 대한 논파를 하면 끝난다. 개독교의 상호 배타적이고 무관용적이고 몰상식하며 비합리적인 속성 자체에 대한 비판과 논증을 하기만 하면, 그 문제는 그것으로 일단락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으로 인해 부차적으로 튀어나온 위와 같은 문제들을 물고 늘어지는 것은, 똥이 어떻게 생기는지에 대해 소화기관의 메커니즘에 대한 연구를 끝마친 상태에서, 배출된 똥을 부여잡고 왈가왈부하는 것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이렇게 개독교에 대한 비판을 마무리지었으면, 그걸로 끝이 아니라 다른 종교도 마찬가지로 논파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무신론자들의 적은 단순히 예수나 혹은 성모 마리아 따위가 아니라, 종교라는 이름 그 자체와 그로 인해 빚어진 모든 인간 지성의 적들, 비합리적이고 이성을 망가뜨리며 인본주의를 방해하는 그 모든 것들이다. 기독교는 단순히 그 종교 중 하나의 예시에 불과하다.

그래서 생각해 보자. 기독교 신자가 줄어드는 게 좋은 것인가? 개독교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이 좋은 일인가? 전혀 아니다. 그렇게 단순히 표면적인 이유만으로 기독교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종교의 부산물로서의 모든 비합리성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기독교가 없어도 다른 종교(천주교, 불교 등)에 빠지게 되어 있고, 혹은 아무런 종교를 믿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개인의 이성적 판단에 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면적으로는 종교인들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따라서 우리는 저러한 표면적이고 부차적인 문제는 놓아 두고, 실재적인 비판에 모든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표면적인 문제에 시간을 투자하고, 표면적인 결과에 일희일비하는 것은 시간 낭비이자 지능 낭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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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사실 예전에 내가 썼던 포스트에 있는 것인데(http://weirdsoup.tistory.com/136) 아래 올린 글과 다소 연관성이 있어서 다시 포스팅해 본다.

저 글의 예시에 나오는 사람들은 물론 극단적인 경우이다. 특히 종교에 빠져 스스로 고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실로 놀랍기까지 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하나의 특수한 경우로 여기고 그냥 무시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것은 개독교의 놀라운 파괴력을 보여주는 한 가지 예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개독교가 왜 개독교라고 불리는 지 아는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자기 잘못이 뭔지 모른다는 것"에 있다. (훈련이 안된) 개는 자기가 함부로 오줌을 싸놓고 인분을 먹어도 뭘 잘못했는지 모른다. 마찬가지다. 개독교인들도 자신들의 잘못이 뭔지 모른 채, 저러한 사례들을 보면 "저건 일부 극단주의적인 종교인들의 사례에 불과하다" 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사실 그렇게 말하는 자기 자신들도 근본적으로는 다 똑같다.

내가 다니는 동국대학교에는 커다란 불상이 있다. 예전에 기독교 관련 단체에서 이 불상에 훼손을 가한 적이 있다. 내가 알기로는 그 사건으로 인해 한동안 학교에서 기독교 관련 동아리를 없앴던 것으로 안다. 여튼, 이러한 일이 일어나면 앞서 말했듯이 많은 개독교인들은 "그건 그렇게 행동한 그들 잘못이지 기독교 잘못이 아니다!" 라고 주장할 것이다. 전혀 틀렸다! 그것은 명백히 개독교로 인해 일어난 일이다. 개독교가 그것을 분명히 조장했다. 그것이 내가 오늘 이 포스팅을 통해 말하고 싶은 중요한 부분이다.

개독교는 인간을 마비시키고, 사고능력을 7살 정도로 퇴화시키고, 인간 정신에 깊게 침투해서 인간을 정신적 고자로 만든다. 그러한 사람들은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사고능력이 결여되어, 편협되고 맹목적인 시각으로 만물을 바라보게 된다. 불상을 파괴한 것도 이것과 매우 다르지 않다. 우선 성경에 보면 우상을 숭배하지 마라는 구체적인 말이 나와 있고, 그들은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따라 충실히 일을 수행한 것에 불과하다. 개독교는 원래 배타적인 이론이고, 그들이 뭘 파괴할 때 써먹는 문구인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말은 사실 기독교 신앙의 "알파와 오메가"와 같다.

내가 예전에 학교 앞에서 어떤 개독인에게 붙잡혀서(당신은 지옥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한두시간 정도 토론을 벌인 적이 있다. 그 때 나는 매우 흥미로운 경험을 했다. 그 사람의 표정과 태도 때문이었는데, 리처드 도킨스가 말한 "머리에 기름을 바른 전도사" 의 모습이 아니라, 매우 진솔한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사람은 진짜로 믿고 있었다! 그 말도 안되는 헛소리를 말이다!(심지어 그 사람의 말은 상당 부분 성경에서 "결코" 기인하지 않은 것들이다) 그것도 매우 공포심에 휩싸여서, "내가 이 사람을 전도하지 못한다면 이 사람은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라는 확신으로 나를 설득하는 것이 표정에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일부 개독교인" 이라는 건 없다. 그냥 "개독교인" 만 있을 뿐이다. 과격한 사람들, 그들의 거룩하고 신실한 믿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자들은 그저 다른 사람들보다 더 확신에 차 있고 더 용기가 있을 뿐이지, 그들이 (개독교의 기준으로 봤을 때) 이상하거나 미쳐서 그런 게 아니다. 개독교가 없었다면 그들이 그러한 행동을 했을까? 개독교가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다면 그들이 과연 그렇게 했을까? 개독교의 기본 교리인 배타성이 없었다면 그들이 과연 그렇게 했을까?

그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개독교의 영향을 받은 것에 불과하다. 이를 생각해 보면 사실 궁극적으로 개독교가 지향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행동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사람들은, 개독교를 더 잘 믿어서 다른 사람들에 비해 더 지성이 파괴된 것에 불과하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결국 개독교가 행하는 일은 바로 이런 것이다. 이것이 심해지면 스스로 생물학적 고자도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고 해도, 그들은 이미 마음 속의 고자들이다.

지성인들은 결코 개독교를 믿을 수 없다. 만약 믿는다고 해도 그것은 리처드 도킨스가 표현한 대로 "믿음을 믿을" 뿐이다. 개독교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찾아서 그들의 지성을 파괴시키고, 고자로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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