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고양이를 보고 문득 든 생각

학교에서 오며가며 가끔 마주치는 고양이 한 마리가 있다.


누군가가 먹이를 주는 거 같은데, 나는 먹이를 안 줘서 그런지 경계하는지라 가까이 간 적은 없다.


그래도 앉아있는 걸 구경하는 정도로는 도망을 가지 않기 때문에 몇 번 구경을 했는데,


그 고양이는 할 일이 없으면 자동차 밑이나 나무 밑, 혹은 바위 위에 앉아서 식빵자세를 하고 몇시간이고 계속 앉아서 졸고 있다.


내가 가면 눈을 떠서 쳐다보고, 멀리 이동하면 다시 눈을 감고 조는 것을 반복한다.


아마 그 자리에 없을 때는 어디 먹이를 구하러 가던가 다른 고양이를 만나거나(다른 장소에서 다른 고양이랑 놀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하는 경우일 것이다.


어떤 때는, 고양이가 앉아 있는 것을 목격하고 나서 세 시간 정도 후에 그쪽 길을 다시 지나가는데 여전히 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본 적도 있다.


결국, 그 고양이는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앉아서 졸면서 보내는 것이다.


하기야 고양이가 할 일이 얼마나 많이 있겠는가? 심지어 주변에 아줌마들이 먹이까지 갖다 주니까 힘들게 쓰레기통을 뒤질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문득 그 고양이가 나랑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그저 아무 것도 안 하고 자리에 앉아서 졸면서 보내는 고양이, 남이 갖다 주는 음식이나 먹고 가끔 놀러 다니고, 그러지 않을 때는 그저 자리에 앉아서 사람들이 오면 구경이나 하면서 생을 살아가는 고양이.


과연 그 삶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물론, 삶에 목적이나 이유 따위는 없다. 모든 존재는 궁극적으로 우연히 발생해서 "그저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라면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비록 형이상학적 허상 따위는 없을지라도 그 "삶" 내에서 어떤 이루고 싶은 목적이나 꿈 같은 것이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를 위해 살아가며 인생에 스스로 의미를 부여한다.


이것이, 정상적이고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건설적인" 삶의 자세이다. 그렇지 않고, 아무 목적이나 꿈이나 희망 따위가 없이 그냥 살아가는 삶을 "무의미한 삶"이라고 한다.


밤중에 집으로 돌아갈 때, 가끔 생각한다. 오늘 나는 무엇을 하면서 24시간을 보냈는가? 그에 대한 대답은,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다" 이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이러한 삶을 살아왔다.


최소한 표면적으로는, 내실 따위 없더라도 그저 표면적으로 본다면 무언가를 하며 살아온 적도 있다. 물론 그것들은 지금에 와서는 아무 쓸모도 없긴 하지만, 최소한 나는 그 순간에는 가만히 앉아서 졸면서 지낸 것이 아니라 분명 무언가라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아무것도 하기 싫다.


하루하루 고양이처럼, 용돈이나 받고 무의미하게 하루하루를 아무 것도 안 하는 채로 보내면서, 무언가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냥 평생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살면 좋지 않을까 싶을 정도이다.


그 고양이는, 지금껏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남은 생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그 고양이와 내가 다른 점은, 나는 언젠가는 무언가를 하도록 "강제지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언제까지고 부모님께 손 벌려가며 살아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중에 내가 무언가를, 그것에 무엇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무언가"를 "하면서" 살게 된다면, 과연 그것이 실제로 그 무언가를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고양이가 평생 앉아 있지 못하고 언젠가는 밥을 먹고 똥을 싸기 위해 일어나야 하는 것처럼, 강제로 일어나서 무언가를 하는 행위를 "한다"라고 볼 수 있을까?


그것은 궁극적으로는 아무 것도 안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나는 그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금 이 순간도 그저 앉아 있고 싶을 뿐이다. 아무 의미 없이 그저 살아간다는 것이 내 내면을 고통스럽게 할 지라도, 그 내면에서는 여전히 무언가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 고양이가 내 모습과 참 닮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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