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무의미한 삶을 연명하는가?

그것은 내가 열등하기 때문이다.

 

열등한 인간과 우월한 인간의 구별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개인적인 판단에 의하면 이는 "본능적 욕구"와 "이성적 판단" 사이의 저울질에 따른 결과로써 구분된다.

 

즉, 우월한 인간일수록 이성적 판단이 본능적 욕구를 능가하고, 열등한 인간일수록 본능적 욕구가 이성적 판단을 넘어선다.

 

그리고 나는 열등한 인간에 속한다.

 

본능적 욕구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욕구로써 "생"에 대한 욕구가 빠질 수 없다. 사실, 모든 본능적 욕구는 생을 지속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생명 객체는 DNA의 운반자로써, DNA가 널리 복제되어 존속하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생에 대한 열망을 강하게 갖는다.

 

나 또한 당연하게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이렇게 무의미하고 열등한 인간이라 할지라도 그 본능적 욕구의 가장 큰 곳에는 생에 대한 욕구가 가득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철저히 이성적으로 판단하자면 이러한 나의 삶의 존속은 무의미하며 해가 될 뿐이다.

 

만약 내가 우월한 인간이었다면, 지금 당장 창문 밖으로 뛰어내린다는 판단을 내리고 행동으로 옮길 것이며, 그것이 옳은 것임을 열등한 나 또한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열등하기 때문에 이러한 판단을 행동으로 옮길 수 없다. 본능이 이성을 훨씬 넘어서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살고 싶고, 죽는 것이 두렵다. 그렇기 때문에, 무의미한 쓰레기같은 삶이라도 연명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나 자신을 바라보는 내 이성은 괴롭지만, 열등한 나의 본성은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본능에 충실할 뿐이다.

 

스스로 생을 끊는 사람들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을 것이다. 하나는 깨우친 자들이며, 다른 하나는 어리석은 자들이다. 깨우친 자들이란, 자신의 삶의 존속이 더 이상 의미가 없으며 때에 따라서는 오히려 해만 끼친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실천에 옮긴 사람이며, 어리석은 자들이란 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자들이다.

 

전자의 경우는 철저하게 이성적인 판단에 의존한 결과로써, 지극히도 우월한 인간이다. 설령 그들의 객관적인 삶의 모습이나 살아온 인생이 나 자신보다 열등하거나 쓰레기같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위와 같은 점에서 나보다 우월할 수밖에 없다. 후자의 경우는 언급할 필요 없이 열등한 인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행위는 순간적인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오로지 우월한 자들만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다.

 

바로 이것이, 내가 이러한 무의미한 삶을 연명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열등하고, 생에 대한 욕망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계속 쓰레기를 생산해내고 말 것이다.

 

열등한 인간은 존재 자체가 비극이다. 나는 나 자신을 보면서 비극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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