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소테릭의 ""가치판단은 어차피 주관적이니 남보고 뭐라하지 말아라"는 모순적 주장이다." 라는 글에 대한 첨언

http://m.cafe.daum.net/extrememetal/BBq6/152?listURI=%2Fextrememetal%2FBBq6%3FboardType%3D

물론 "주관적이다"란 말이 요즘에 너무 대충 쓰이긴 하지만, 여기서 '가치판단은 어차피 주관적이다'라는 말은 주관적이니 가치판단에 옳고 그름이 없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겠다 ("개인의 주관에 의해 판단하긴 하지만 진실과 부합하거나 부합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면 그 뒤에 남보고 뭐라하지 말라고 하겠는가?).

남보고 뭐라하지 말아야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가치판단이다. 정말 가치판단에 옳고 그름이 없다면 남보고 뭐라하는 행위도 전혀 그르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물론 이건 "그러니 남보고 뭐라하지 말아라"란 주장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고, "그러니 꼴리는 대로 살아라," "그러니 아무거나 들어라" 등 "그러니 XX해라" 형태의 주장 모두에 적용된다. 물론 가치판단에 옳고 그름이 없다면 진실을 말해야한다는 법도 없고 남의 말이 진실이라 해서 들어야한다는 법도 없다.



----------

이 글은 일견 옳은 면이 있으나 서두에서 한가지 문제점을 발견하여 첨언한다.

"가치판단은 주관적이다"라는 문장은 "'참'인 명제"이다. "가치판단"이라는 정의에 부합하는 문장으로, 아무 문제도 존재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가치판단은 어차피 주관적이다"라고 하여, "어차피"라는 불필요한 단어를 추가한다고 해서 틀린 말이 되지는 않는다. 그 뒤에 붙는 문장이 중요한 것이다.

이 글에서는 문장에서 문장 외의 요소를 도출함으로써 논리적 비약을 하고 있으므로 다소 문제가 있다. 애초에 제목에서 "남보고 뭐라하지 마라"는 것이 잘못이라는 걸 언급하고 있으므로 저런 문장 자체가 사실 필요가 없다.

근데 내가 왜 이런 사소한 오류에 집착하는가 하는 점은, 그것 때문이 아니라 그 뒤의 문장과 그로 인해 해당 문단에서 은연중 표현되고 있는 뉘앙스를 언급하기 위해서이다.

"개인의 주관에 의해 판단하긴 하지만 진실과 부합하거나 부합하지 않을 수도 있다" 라는 언급은(저 글에서는 저렇게 주장할 경우 옳은 주장이라는 견지에서 쓰여지고 있다), 가치판단에 있어서 "진실"이 존재한다는 매우 심각한 주장이 내포되어 있다.

여기서 혼동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러한 문장에서 쓰일 때 "진실"이라는 것은 "참인 명제"라던지 "논리적으로 올바르고 근거가 합당한 주장"이라는 뜻으로 쓰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만약 그렇게 쓰고자 "진실"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면 단어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에소테릭의 기존 글에서 유추해 보면, 여기서 "진실"이라는 단어는 위의 의미가 아니라 말 그대로의 진실을 의미하는 것임을 예상해 볼 수 있다. 즉, 저 문장은 가치판단에 진실이라는 게 존재한다는 주장이 포함되어 있고, 그러므로 저 문단은 "가치판단은 객관적이다" 라는 생각이 전제되어 있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다.(무엇이 "진실"이라고 말하려면 그것이 객관적 판단의 대상이어야 하므로)


(이러한 점은 마지막 문장인 "물론 가치판단에 옳고 그름이 없다면 진실을 말해야한다는 법도 없고 남의 말이 진실이라 해서 들어야한다는 법도 없다" 에서도 드러난다.)

이는 매우 심각한 일이다. 물론 가치판단이 객관적이라고 하는 독자적인 주장을 펼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이는 근본적으로 그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독자적인 사상에서 가치판단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다른 식으로 할 수 있지만, 그럴 경우 타인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기존의 정의와 상호 호환이 안된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저 문장이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보편적인 "가치판단"이라는 단어의 정의에 부합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이 바꿔야 한다. "개인의 주관에 의해 판단하긴 하지만 논리적으로 바르고 합당한 판단이 있는 반면 타당하지 못하여 설득력이 없는 판단도 존재한다"

이후에 이어지는 내용은 일응 타당한 지적으로 생각한다.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은, 댓글에서 언급하고 있는 "남에게 강요하지 마라"라는 문장인데, 이 문장 또한 "강요"를 하고 있으므로 모순된 주장이라는 점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강요가 아닌 충고나 제안, 또는 설득은 어떠한가?

예전에 메킹 등에서 논란이 되었을 때, 충고나 제안도 근본적으로 강요와 같다는 황당무계한 주장이 있었는데 어불성설이다. "강요"와 "충고/제안"의 말뜻을 생각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런 견지에서, "가치판단을 남에게 강요하지 말자"라는 주장은 문제가 없을 뿐더러 오히려 권장할 만한 주장이다. 가치판단이 주관의 영역이라는 뜻은, 해가 동쪽에서 뜬다는 사실을 남에게 인식시키기 위해 주입하는 것과 다른 문제라는 점을 드러낸다. 가치판단은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설득"하는 것이 타인에게 자기 주장을 관철시키는 데 있어서 더 효과적이다.

예를 하나 들어 보자.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라는 주장은 효도하는 것이 옳다는 전통적 가치판단을 내포하고 있는데, 그것이 비록 전통적이라 할지라도 남에게 강요하는 것은 역효과를 일으키기 십상이다. 왜 효도하는 것이 좋은지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며 바람직하다.

그리고 이 점을 생각해 보면, 폭서가 왜 욕을 먹는지 알 수 있다. 폭서는 그간 도장깨기와 배타적 비난을 통해 자신들의 가치판단을 남에게 강요해 왔다. 그들의 그러한 행동은, 가치판단이라는 것이 마치 해가 동쪽에서 뜨는 것처럼 객관적 진실이라는 게 존재한다는 판단이 내포되어 있기에 가능한 행동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만약 그들이 남에게 강요하지 않고 충고나 제안의 방식을 사용했더라도 지금처럼 욕을 먹었을까?

(폭서의 주장들에 논리적인 설득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내가 폭서의 많은 주장들에 상당 부분 동조하는 것은 그러한 논리에 설득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폭서는 이러한 논리적 주장을 전달함에 있어, 배척과 비아냥과 도장깨기를 통한 강요의 방식을 많이 사용해 온 것이 사실이다. 물론 멍청한 인간들에겐 논리가 통하지 않겠지만, 말이 통하지 않으면 그냥 안 하면 된다.)

TAGS.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