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귀의 MDR-EX500 사용기

막귀인주제에 그래도 좀 좋은 이어폰을 써보고 싶어서 ex500을 구입했다.

가격이 무려 12만원에 달하는 이어폰이다.

물론, 30만원 40만원씩 하는 이어폰 쓰는 사람들에게는 코웃음거리겠지만, 난 이걸 사기 위해서 피같이 모은 돈을 모조리 달달 털어야만 했다.

내가 전에 쓰던 이어폰은 es303이고, 기기는 YP-T1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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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를 받고 나서 포장을 뜯었을 때 엄청 감동했다
"오오 역시 비싼 이어폰은 상자부터 다르구나!"

개봉을 마치고 이어폰을 딱 드는데, 이거이거 줄이 엄청 가는거다.
행여나 무리한 힘이 가해지지 않을까 조심조심 보석 다루듯이 살펴봤다.

마침내 T10을 꺼내고, 전원을 키고, 음장을 노멀로 한 다음 볼륨을 낮추고 이어폰을 끼워 봤다.
근데 뭔가 이상한거다.
노래를 틀지 않았는데도 뭔가 "쓰으-" 하는 소리가 나는거다.
이게 알고보니, 사람들이 화이트노이즈 라고 부르는 거였다.

여하튼 드디어 노래를 재생해 보았다.

(소리에 대해 말하기 전에, 번인에 대해 말해야겠다. 사실 막귀라서 잘 모르겠지만 어쨋든 써 본다. 내가 이제 이걸 쓴지 일주일 쯤 되어 가는데, 처음의 느낌과 비교해 보면 음이 좀 단단해지고 좀 먹먹한 느낌이 없어지는 것 같다. 근데 사실 막귀라서 확실하지는 않다. 게다가 실은 제대로 번인 하지도 않았다. 그냥 낮은 볼륨에서 몇시간 정도 재생한 것밖에 없다 ㅇㅇ)

처음에 틀어본 노래는 발라드였다. 그런데, 재생을 하는 순간 경악을 금치 못했다.
소리의 퀄리티가, es303과는 차원이 다른 거였다.

그야말로 피아노 소리가, 건반을 누르는 손가락의 힘이 느껴질 정도로 섬세하고, 보컬은 마치 숨소리조차 느껴지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선명했다. 또한 어쿠스틱기타 줄이 튕겨지는 소리가 그야말로 미세한 떨림까지 감지하는 듯한 느낌이 날 정도다. 그리고 한 음 한 음이 끝날 때마다 미세하게 지속되는 잔향이 그야말로 현실감이 넘친다. 마치 내 눈앞에서 누군가가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는 듯한 착각이 일어날 정도였다.

근데 사실, 난 좀 걱정되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은 발라드보다는 메탈 쪽인데, 이러한 발라드와의 궁합을 보니까 락/메탈에는 좀 어울리지 않는 이어폰이 아닌가 해서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소나타 아티카의 음악을 틀어 봤다.

그리고 나는 엄청난 충격을 받고야 말았다. 그 이유는,
"쿠쾅쾅쾅쾅쾅"
마치 보디빌더의 근육과도 같은 엄청난 저음 타격감이 밀물과도 같이 밀려오면서 뇌를 강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느낀게
"채챙챙챙챙챙"
엄청나게 실감나고 선명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쭉쭉 뻗어 올라가는 고음의 심벌즈, 하이햇 등의 소리였다.

거기에 또
"우다다다다다"
마치 내 귀 바로 옆에서 스네어드럼을 치는 듯한 환상이 느껴지는 거다.

이거 완전히 메탈을 위해서 태어난 이어폰이라는 느낌이 드는거다.
es303도 나름 타격감이 좋은 편인데, ex500에 비하니까 완전 애들 장난하는 수준인거다.
게다가 고음의 그 엄청난 청량감이란 es303과는 완전히 비교 불가였다.

일렉기타 소리는 말할 것도 없다. 워낙에 중음 퀄리티가 es303과 비교가 안되는지라, 완전 선명하고 사실적으로 기타 소리를 재현해 내 주었다.

게다가 또, 기타리프랑 보컬 소리가 서로 뭉쳐짐이 없이 각각 독립적이면서도 조화로운 소리를 내주는거다.
또한 es303에서 가끔 느꼈던 음의 뭉개짐 현상 따위도 존재하지 않았다.

다 들은 후에 연달아서 메탈리카, 주다스프리스트 등의 음악을 들어봤는데, 여전히 충격과 공포의 도가니탕이다.
특히 롭 헬포드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이 이어폰의 보컬 재현력에 또 한번 감탄을 금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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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완전 엄청난 이어폰인거다.

발라드를 들을 때는 발라드를 위해 만들어진 이어폰 같고, 메탈을 들을 때는 메탈을 위해 태어난 이어폰 같다.

내가 es303을 쓰면서, 각종 음장과 EQ를 열심히 조절해 가면서 내 귀에 맞는 음색을 만드려고 무진장 애를 썼었는데, ex500은 그냥 귀에 꼽자마자 완벽한 음색을 내 주었다.

솔직히, 이것보다 더 좋은 음은 어떤 것인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이 세상에는 이것보다 비싸고 좋은 이어폰이 널리고 널렸는데, 그러한 이어폰의 소리는 대체 어떨지..

암튼, 내 전재산을 달달 털어서 구매한 이어폰인데, 돈이 별로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솔직히 말해서 같은 가격대의 오픈형 이어폰인 CM7, EC700 등과 비교해봐도 별로 꿇리지 않는거 같다.
난 오히려, CM7보다 이게 더 나은 것 같다.

막귀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감동을 느낄 수 있었던 MDR-EX500의 사용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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