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녀 사건의 의의와 집단 행위에 관한 고찰

신해철에 대해 인터넷을 검색하던 중에, 예전에 신해철이 개똥녀 사건과 관련해서 이런 말을 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사건을 나중에 떠올렸을때 어느 개념없는 여자가 지하철에서 개가 싼 변을 치우지 않은것으로 기억할까요, 아니면 사람들이 한 사람을, 일반인을 사회적으로 완젼히 매장시켜버린 사건으로 기억할까요?"

이제 그 사건이 있은지 많은 시간이 지났고, 저 물음에 대해 답을 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내 답변은 이렇다.
"지금 나는 해당 사건에 대해 전자(前者)로 기억하고 있다"



인터넷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에 대해서 그 이전부터 사례들이 있어왔지만, 일반인들에게 직접 그리고 확실하게 각인된 시기는 아마도 개똥녀 사건 이후가 아닌가 싶다. 당시에 나는 인터넷을 안 했었고, 따라서 인터넷 여론의 힘을 몸소 느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것은, 어느 한 좁은 공간에서 일어난 사건이 이제 더 이상 그 공간 내에서의 사건이 아닐 수도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나아가서, 현대인들이 인터넷을 통해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가를 보여준 사건이기도 하다.

그 여자에겐 그리 아무렇지 않았던, 그저 약간 짜증나고 그저 약간 쪽팔렸던 일이, 인터넷을 타고 순식간에, 그리고 광범위하게 확산되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분노를 일으키고, 그 여자에게 온갖 비방과 배설을 하도록 만들었다. 나아가 얼굴까지 공개되면서, 적어도 사건 이후 당분간은 얼굴조차 제대로 들고 다니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저 자그마한 사건에 불과할지 모르는 잘못에 대해서 너무 심하고 잔인한 처벌이었다고 생각하는가? 그러나, 그 여자가 그러한 일을 당하고, 또 네티즌이 그렇게 행동한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고도 당연하다. 그것은, 여자의 행동이 단순이 "예의없고 재수없는" 사건이 아닌, 현대 사회의 병리적 상태에 대한 너무나도 적나라한 증거이자 거울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그 수많은 사람들을 폭발적인 분노 속에 몰아넣은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그 여자의 행동을 보면서 또한 자신을 보았을 것이다. 너무나도 명백한, 그러나 아무도 인정하기 싫은 그것을, 여자는 너무나도 확실하게 보여줬다. 그리하여 마침내, 수많은 사람들을 일종의 광기 어린 심판자로 작용하게 한 것이다.

여자의 입장으로서는 너무나도 분하면서도 억울하고 재수 없어할 것이다. 개똥을 치우지 않고 버려대는 사람들은 매우 많고, 또 그 사람이 자신을 찍어서 인터넷에 올리지 않았다면 그러한 일은 없었을 테니까. 그래서, 이 심판은 꼭 필요했고 반드시 일어났어야 하는 사건이었다.

앞에서 말했듯이 사람들은 그 여자를 단체로 매도하면서, 또한 그 사건에서 자신들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인터넷의 힘에 대해 새삼 다시 깨달았을 것이다. 이제, 그 여자가 또다시 개똥을 함부로 버릴 수 있을까? 아마 그럴 것이다. 그러나, 남 보는 앞에서는 아닐 것이다. 개똥을 버리는 것 외에 다른 남부끄러운 짓 또한 마찬가지이다. 집단 매도에 참가했던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애써 외면하려 하겠지만, 그 거울에 비친 자신들의 모습을 완전히 보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자신이 그 매도의 대상이 되는 것 또한 싫을 것이다.

말하자면, 개똥녀 사건은 언젠가 반드시 일어났어야 할 사건이었다.그 여자는 그것에 대해 어떠한 억울함을 호소할 수 없다. 초상권 침해 등의 법적 문제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네티즌들이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 또한 없다. 그들은 그저 당연한 반응을 했을 뿐이다. 전쟁터에서 적을 총으로 쏴 죽이는 행동이 지극히 당연하며 단죄받을 수 없듯이, 개똥녀에 대한 네티즌의 행동 또한 마찬가지이다.



신해철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신해철이 그런 질문을 한 것은, 다시 말하자면 네티즌에 대해 그러한 일종의 경종을 울리려고 한 것은 정상적인 행동이다. 무언가 큰 집단을 형성하고, 그 집단의 일원이 되어 행동할 때는, 개개인 자신의 판단보다는 집단의 판단에 따라 움직이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 집단에서 한발짝 물러나서 보면, 그 집단이 행하는 비이성적 행동이 눈에 들어오게 되어 있다.

하지만, 신해철이 한가지 착각한 부분이 있다. 모든 국민이 네티즌이 되어 개똥녀에게 린치를 가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신해철의 물음, 즉 주장은, 해당 사항에 참여했거나 최소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을 때에만 해당되는 말이다. 그러한 해당 네티즌은 소수이다. 나머지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문제가 심각하게 이슈화 되었을 때에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 사람들이 과연 개똥녀 사건에 대해 마녀사냥의 관점에서 바라볼까? 전혀 아니다. 그저, 사건 자체에 대해 바라보고 이해하고 기억할 뿐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개똥녀를 상기할 때 떠오르는 것은 네티즌의 비이성적인 매도와 한 사람의 프라이버시 침해가 아닌, 개똥녀 그 자체일 뿐이다.

결국, 어두(語頭)에서 말했듯이, 내가 기억하는 개똥녀 사건은 한 재수없고 양심없는 여자의 오물 무단 방치 사건일 뿐이다. 그리고 내 친구들도 마찬가지이고, 가족들도 마찬가지이고, 나아가 국민 대다수가 마찬가지이다. 신해철의 예상은 틀린 것이다.



어느 거대한 집단, 즉 불길이 있을 때, 그 불길 안에 있는 존재들이 보기에는 그 불길이 마치 세상의 전부인 양, 그 불길 속의 일들이 모든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양 여겨진다. 그러나, 그 불길과는 관련 없는 존재가 바라볼 때, 그것은 그저 큰 덩어리에 불과하다. 그들은 그 덩어리를 보고 그것만을 생각할 뿐이다.

불길 내부의 존재들은, 거대한 불덩이가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그 바깥 세상에서의 그러한 생각들을 자세히 알 턱이 없다. 그런 그들의 인식은 결국 착각일 뿐이다. 요즘, 그러한 착각 속에서 왜곡된 인식을 가지고, 커다란 불덩이의 움직임에 따라 나아가면서 외부의 것들마저 자신들 속으로 빨아드리려는, 그리고 당연히 빨려들어가 있을 거라는 허황된 기대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 다소 안타깝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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