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완전히 소거된다면 그것은 "없는 것"과 같은가?
며칠 전에 이러한 글을 썼는데 (http://weirdsoup.tistory.com/342), 도중에 깜박하고 한 가지 빼먹은 점이 있어서 약간 보충하기 위해 쓴다.
예전에 "5억년 버튼" 이라는 만화를 본 적이 있다. (링크: http://www.inven.co.kr/board/powerbbs.php?come_idx=2097&l=149552)
필자 개인적으로는 어리석은 인간의 모습을 비웃는 악마의 도구를 보는 듯한 섬뜩함을 느낄 수 있었던 수작인데, 저걸 본 많은 사람들이 과연 나라면 저걸 누를까 안 누를까 하는 문제를 놓고 여러가지 의견들을 내놓곤 했었다.
그 중에서도 "누른다" 라는 쪽을 선택한 사람들은, 아무리 5억년의 지옥 같은 시간이 있더라도 결국 기억에서 완전히 제거된다면(완전히 기억을 못한다면) 이는 "없는 일"과 같은 것이 아닌가 하는 뜻에서였다. 즉, 이에 따르면 결과적으로 자신에게 남는 것은 100만엔 밖에 없게 되는 것이므로, 오히려 누르지 않는 것이 바보라는 뜻에서였다.
그러나 이에 대해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갖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물론 필자도 그 중 하나이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무리 나중에 기억을 못한다고 해도(사실 여기서는 차라리 기억하는 것이 훨씬 나아 보이지만 일단 그 점은 넘어가고) 그 순간의 고통을 어떻게 감내하겠느냐는 점이다.
만약, 물질과 반물질이 서로 생성-소멸되는 것과 같이, 어느 특정한 기억이 그렇게 "완벽하게 없던 일로" 되는 것처럼 소거된다면 어떻게 될까? 이는 사실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이러한 일은 고려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고, 필자가 위에 쓴 글에서 한 가지 간과한 부분도 바로 이 부분이다.
저 글의 후반부를 보면 주인공이 트라우마를 극복한 부분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사실 이건 소설이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어떻게 되든 간에 작가 마음이다. 방인아 세계관에서 인어가 사라질 때 그 기억이 어떤 식으로 소멸되는건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만약 그 소멸 방식이 말 그대로 "무로 되돌리는 것"처럼(필자가 윗문단에 언급한 대로) 소멸되는 것이라면 어떤 식으로 될까?
우선 방인아 소설을 놓고 생각해 보자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는 남기 때문에(즉 일련의 행동들이 시간축 상의 연장선상에 존재하고, 그 중간의 일부분을 자른다고 해도 나머지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또한, 이 경우에는 그 시간대의 모든 기억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딱 "인어"라는 특정인에 대한 기억만 사라질 뿐이다.)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그리고 여기까지가 저 윗글에서 고찰한 내용이자, 현실로써 존재할 수 있는 부분이다. 즉 치매노인이라든가 어린시절 기억이라든가 기타등등 우리가 현실에서 접할 수 있는 사례는 여기까지의 언급으로 충분하다.
그런데 만약, 시간축 상의 연장선상에서 벗어난 형태로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즉, 위의 "5억년 버튼"과 같은 경우라면 어떠할 것인가? 사실 이 부분은 필자가 애초에 고민하고 있던 부분이 아니고 윗 글의 주제에서 약간 벗어나는,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윗 글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인 "기억=자아 or 존재의미?" 에 대한 부분을 다루려면 이 부분까지도 고려하는 것이 맞는 듯 하다.
그리고 이 부분은 우리가 경험적으로 알 수 있는 부분이 아닌데다, 필자가 무슨 철학적으로 조예가 깊은 사람도 아니기 때문에 답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명학한 답을 내릴 수 없으므로 이 부분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하도록 하겠다. 다만 이 점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싶은데, 우리가 이러한 부분을 접할 때 생각해야 하는 부분이, "관찰자"로서의 입장과 "당사자"로서의 입장을 구분해서 생각해봐야 한다는 점이다.
관찰자의 입장에서 현상을 관찰할 경우, 이는 마치 "없는 것" 과 같으므로 그 기억에서 쌓아올린 모든 것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던 것과 같다. 그러나 당사자의 경우는 어떠한가? 비록 그 당사자 자체도 그 기억이 마치 완전히 태초부터 존재하지 않던 것과 같게 된 건 마찬가지지만, 그 기억을 겪는 순간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문제이다. 필자가 위의 글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인간은 현재를 살아가므로 모든 의의는 현재에 있기 때문에, 그 기억(즉 경험)을 실제로 겪는 그 순간을 고려해야만 한다.
때문에 당사자의 입장에서 이를 볼 때, 그것을 완전히 없던 일과 같다고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실제로 위의 "5억년 버튼"의 경우, 필자라면 절대 누르지 않을 것이다. 만약 저런 일이 실제로 닥칠 경우를 가정해 보자면, 당연히 먼저 의심을 해 봐야 하는 일이 상책인데, 관찰자의 입장에서(즉 누르기 전의 제3자의 입장에서) 살펴볼 경우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다가 없던 일로 된 것인지 아니면 애초부터 그냥 아무 일도 없던 것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만약 실제로 아무 일도 없이 그저 돈만 줄 뿐이라는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왜 공짜로 돈을 주는 것인지, 뭔가 함정이 있는 것이 아닌지 우선 고민해봐야 할 것이고, 실제로는 "무슨 일이 일어났(었)을 가능성"에 대해 의심해봐야 할 것이다.
때문에 버튼을 누르기 전에 두 가지 가능성에 대해 염두해 두어야 하는데, 우선 5억년 운운은 뻥이지만 뭔가 다른 함정이 있을 가능성, 그리고 실제로 5억년이 사실일 가능성이 그것이다. 두 가지 모두 당연히 피해야 하는 일이고, 만약 후자의 일이 일어날 경우 그 과정을 거친 나 자신은 기억을 잃고 완전히 없던 일과 마찬가지가 된다고 해도, 당사자의 입장에서 그 일을 겪을 그 순간의 고통을 생각하면 도저히 누를 수 없을 것이다.
필자가 예전에 혼자 공상을 할 때,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소립자의 세계에서는, 어느 한 찰나의 순간에 입자와 반입자가 동시에 생성되었다가 소멸되는 일이 있다고 하는데, 결과적으로 보자면 그 전후의 질량차이는 없으므로 결국 이는 없던 일과 같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게 실제로 "없던 일"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은 것이다. 아무리 찰나의 순간이라 할 지라도 실제로는 존재했었던 일이다.
이를 필자가 예전에 정신적으로 피폐한 생할을 보낼 때 한창 몰두했던 허무주의와 연관지어 생각해 보자면, 인간의 삶이란 우주 전체로 보자면 지극히 찰나의 순간에 지나지 않고, 모든 인간은 억겁의 시간 동안 존재하지 않다가 찰나의 시간 동안 잠시 존재하고는 다시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과 같은데, 그렇다면 모든 존재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으므로 결국 모든 것은 "무"와 같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이 필자가 심취했던 허무주의의 요지인데, 이는 마치 입자와 반입자의 생성-소멸과 흡사한 점이 있다. 즉 필자는 모든 인간의 삶이란 입자와 반입자가 순간적으로 생성되었다가 소멸되는 것과 같으므로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인데, 윗 문단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아무리 "없던 것에 가깝다" 라고 해도 그것이 완전히 "없던 것"은 아니고, 따라서 실제로 존재했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할 수 없다.
여기에서 "없는 것과 같다" 라고 보는 것은 관찰자의 입장에서 현상을 살펴봤을 때의 이야기이고, 실제로 이를 겪는 "당사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 모든 것은 "현재"에 존재했었던 것이 맞으므로 없던 일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이 점은 위의 "5억년 버튼" 사례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로서 생겨나는 그 "기억"의 경우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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