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교리(혹은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의 한 가지 치명적 오류


난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교회에 다녔다. 물론 나중에는 다니지 않았지만, 지금 군대에서 종교행사라는 명목으로 억지로 끌려가는 것까지 다 포함하면 약 10년 이상 교회를 다녔었다.

매주 빠지지 않고 교회에 가지는 않았지만, 대략 한달에 4번은 간 것 같다. 그것은 1년에 교회를 48번 갔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난 여태껏 살면서 교회를 약 480번 이상 다닌 것이다.

교회(혹은 기독교)에 대해 별 의심이 없었던 어린 시절에는 잘 몰랐지만, 그것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갖게 되니까, 그들이 가르치는 것에 대해 한 가지 상당한 치명적 문제점을 자연스레 파악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 글을 써본다.

기독교 교리의 핵심적인 사항은 바로 성경이다. 성경에는 기독교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고 일반적으로 생각되지만, 앞으로 글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기독교인들이 믿는 신과 그 세계관과 역사가 바로 성경에 기술되고 설명되어 있다. 기독교인들은 뭘 하든지 성경을 들먹이고, 매주 예배시간마다 성경의 한 구절을 봉독하고 그것에 대해 설교를 하고, 구역예배를 해도 성경을 보고, 전도할때도 성경을 보고, 기도할 때도 성경구절을 따오기도 하고, 심지어 성경 통독을 한다면서 매일매일 성경을 읽기도 한다. 여튼 성경은 기독교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아주 중요한 책인 것이다. (사실 그들이 성경통독을 과연 제대로 하는지 의문이긴 하지만 어쨋든)

따라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생각할 것이다. 기독교는 성경에 씌여 있는 하나님을 믿는 종교이고, 기독교 교리가 성경에 담겨 있고, 기독교인들은 성경에 나와 있는 것을 믿으며 성경에 나와 있는 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일 것이라고 말이다. 오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건 완전히 잘못 생각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기독교인들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이 쓴 것이라고 한다. 사실 성경은 인간이 쓴 것이지만, 여튼 그들의 주장을 볼 때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성경이지, 교회나 목사님이 아니다. 헌데, 사실 기독교라는 종교는 사실 성경보다는 교회나 목사님의 말을 훨씬 중요하게 여기는 종교이다. 그 증거가 여기 있다.

(일단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짚고 넘어갈 것이, 나는 성경이 무슨 역사적인 사실을 쓴 책이라던가 성경에 나와 있는 것이 100% 진실이라고 가정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는 성경이 기독교의 근거가 되는, 교리상 핵심적인 책이라는 의미로 쓰는 것이다.)

성경이라는 책은, 일단 읽기 좀 어렵게 쓰여져 있다. 그것은 새번역된 천주교의 성경도 사실 마찬가지이다. 말이 안 되는 것들도 있고, 맥락이 안 맞는 말도 있고, 이게 당최 무슨 말이고 왜 쓰인 것인지 모르는 것도 있다. 아예 단락 자체가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는 것도 있다. 이것은 순전히 성경이 일반 사람들에 의해(사실은 그 당시 제사장 같은 사람들에 의해) 쓰였기 때문에 나타나는 오류지만, 기독교인들은 이것이 성경이 비유적 언어로 쓰였기 때문이 그렇다고 주장한다.

비유적 언어라는 것은, 그것을 해석해야 그 뜻을 알 수 있다는 말이다. 극단적인 사람은 성경이 전부 비유로 쓰여졌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사실 그렇게 되면 성경 자체적으로 믿을 것은 하나도 없지만, 여튼 이렇게 성경을 비유로써 받아들이게 되면, 문제가 발생한다. 여기서부터 그들의 치명적 모순이 태어나는 것이다. 바로, 성경의 자의적 해석이다.

일반인들이 주로 성경을 접하게 되는 때는 교회 예배 시간에서 목사님의 말씀을 통해서다. 목사는 성경을 이용하여 설교를 하고, 신자들과 성경 학습을 할 때도 목사가 하나하나 읽고 해석해 준다. 문제는, 목사가 하는 말은 결국 성경 맥락을 이용하여 그것을 풀어해쳐 자기가 말하고 싶은 의도에 맞도록 짜집기해서 보여 준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결과이다.

이게 그들이 성경을 읽고 이해하는 방식이다. 성경이 온통 비유로 이루어진 암호 같은 것이라면, 분명 그것을 풀 방법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비밀번호 혹은 열쇠가 있는 보통 자물쇠와는 달리, "비유로써 이해하는 성경"에는 그러한 것이 외부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해답으로 가져오는 것은, 목사의(혹은 여러 신학자들의) 생각이다. 어떠한 텍스트를 이해함에 있어서, 자의적인 생각이 들어간다는 것은, 그것이 어떠한 객관적인 모습도 갖추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100% 주관적이다.

나는 480번 교회에 나가면서, 그들이 성경의 텍스트를 어떻게 주관적으로 변화시키는지에 대한 사례를 매주 예배시간마다 목격할 수 있었다. 일단, 목사는 설교하기 전에 자기가 들먹일 성경구절을 준비한다. 이 성경 구절은, 사실 앞뒤 맥락을 파악해야지만 완전한 의미를 가지는 것도 많고, 그 자체로서 아무런 뜻도 없는 공허한 구절인 경우도 있다. 물론 그 자체적으로 하나의 완전한 이야기가 되는 것도 있다. 이 경우는 일단 "성경구절의 준비"라는 항목에서는 문제가 안 되겠지만, 문제는 앞의 두 경우이다. 저러한 경우에, 그 성경 구절만을 따 와서 예배시간에 읽는 것이 과연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 아주 공허하다. 그것은 마치, 야비한 논쟁가들이 상대방의 말을 앞뒤 맥락을 잘라서 악의적으로 인용하거나 별 의미가 없는 문장을 인용해서 임의로 확대 해석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는 행동이다.

여튼 그렇게 해서 성경 구절을 준비하면, 목사는 예배시간에 그것을 읽는다. 그리고서 설교를 시작하는데, 미안한 말이지만 "아주 가관이다." 그가 하는 말은, 성경구절 자체적인 뜻에 대한 것일 때도 많지만, 반대로 성경구절 자체와는 별 상관 없는 것일 때도 많다. 여튼, 그렇게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나서, 그 근거로 성경구절을 인용한다. 물론 성경은 "비유적 언어" 이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해석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쪽이다. 그것이 자기가 따온 성경구절과 100%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자기가 그 방향으로 "해석"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교회나 목사님이 성경을 읽는 방식이다. 성경 자체적인 내용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비유적인 책이니까, 비유를 적절히 해석하기만 하면 그만이다. 이제 남은 것은 자신의 말을 하는 것이다. 물론 그 말에는, 강력한 환각적인 증거가 실려 있게 된다.

여기까지 글을 읽고 나면, 아마 기독교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은 교회 혹은 목사들이 설교를 하거나 어떠한 항목에 대해 주장하는 데 있어 항상 성경을 이용하고 성경을 들먹인다고 생각할 지 모른다. 실상은, 성경 자체는 사실 아주 부차적인 항목일 뿐이다. 그것은 수업 시간에 쓰이는 교과서만도 못한 입지를 갖고 있다. 적어도 선생님들은 수업 시간에 교과서를 이용하고 교과서를 설명하고 그러면서 자신의 방식을 섞어서 수업을 진행한다. 하지만 성경은, 예컨대 대학 수업에 있어서 교수들이 언급하는 참고도서 정도의 성격밖에 지니지 못한다. 이에 대한 근거는 역시 예배시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성경구절 이야기가 다 끝나면, 목사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쭉 하기 시작한다. 물론 이야기 중간중간에 성경이 들어가긴 하지만, 그것은 마치 양념 같은 것이고, 중요한 것은 자신의 설교 내용이다. 그 설교에는 보통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가끔 여러 선지자 혹은 예수의 제자가 나타나기도 하고,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일반적인 세상 이야기가 나오고, 이걸 적절히 접목시켜서 특정한 주제가 설명되게 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사실 거기서 나오는 하나님이나 예수님이나 각종 제자의 이야기는 사실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이야기는 성경에서 나온 것일수도 있고, 어떠한 신학자(혹은 "위대한 믿음의 사람")가 이야기한 것일 수도 있고, 아예 완전히 꾸며낸 이야기일 수도 있다. 이들 세 가지 경우는 각각의 이유 때문에, 목사가 하는 이야기의 객관적(여기서 객관적이라는 건 "기독교 교리로서의 객관성"이지 "절대적 사실로서의 객관성"이 아니다) 증거가 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성경의 경우는, 있는 그대로 차용하는 경우도 많지만, 자의적 해석의 결과물일 때도 많다. 있는 그대로 쓴 것이라면 교리상 객관성을 가질 수 있겠지만, 불행히도 목사가 하는 이야기들이 다 그런 것이 아니다. 자의적 해석의 결과물일 때가 상당히 많고, 그러할 경우에는 위에서 설명한 대로 별로 객관적이지 못하다. 어떠한 신학자(혹은 사역자)가 한 말이라면, 과연 그들이 어떠한 교리적 증거를 가지고 그러한 말을 했는지가 중요한데, 사실 그건 그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고 싶어서 말하는 것 뿐이지, 그게 과연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작용한다는 어떠한 교리적 증거가 없다(물론 그들이 "성령의 감화"를 받아서 말한 것이라고 주장하겠지만, 정작 그에 대한 증거가 없는 경우가 많다). 아예 완전히 꾸며낸 이야기의 경우는, 그저 사람들에게 좀 더 "단순하고 유치한 감동"을 주기 위해서, 각종 "소설"을 쓴 것들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보자. 이건 내가 교회에 다니면서 수십 번 들은 대표적인 아주 감동적인(물론 그 감동에는 별반 깊이도 없고 사실 아주 유치하기까지 하다) 이야기이자, 예수님의 사랑을 아주 단적으로 표현한 엄청난 이야기이다.

어느날 누군가가 죽어서 천국에 갔다. 그는 그 곳에서 예수님과 함께 자신의 지난 인생을 돌이켜보았다. 그는 살면서 꽃밭, 자갈길 등등 여러 길을 걸었다. 그 길에 난 발자국에는, 자신의 발자국들과, 그 발자국 옆에 찍혀 있는 또 하나의 발자국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발자국이었다. 그가 인생의 어느 길을 걷든, 예수님이 항상 옆에서 같이 걸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자신이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인 사막길이 나타났다. 그런데 그 길에는 놀랍게도 발자국이 하나밖에 찍혀 있지 않았다. 그는 자기가 가장 힘든 순간에 예수님이 자기와 함께 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예수님에게 물었다. "왜 여기에는 발자국이 하나밖에 찍혀 있지 않나요? 왜 예수님은 그 순간에 저와 함께 하시지 않았나요?" 그러자 예수님이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그건 내가 너를 등에 업고 걸어갔기 때문이란다."

이 이야기는 하도 인상적이라서 기억하고 있지만, 사실 이것 말고도 설교시간에 목사님들이 하는 이야기들은 대부분 이런 식이다. 사실 이건 그냥 소설이다. 성경 어느 구절에도 무슨 힘든 시기에 예수님이 자신을 업고 간다느니 하는 이야기 따위는 없다. 예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결코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좀 더 감동적인 사례를 만들고자 이런 이야기를 꾸며낸 것이다. 그러나 순진한 신자들은 이 이야기가 진짜 "예수님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무한한 예수님의 사랑에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

"어느 신학자"는, 예수가 십자가 처형을 당할 때 "아마도 이런 상황이 있었으리라고" 말한다. 하늘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린다. 그 음성은 십자가의 예수님에게 탄식과 질책을 한다. "너는 왜 그리 많은 죄를 저질렀니, 도둑질하고, 살인하고, 강간하고, 거짓말하고, 남을 미워하고, ......." 이것은 우리 인간들이 지은 죄악들이다. 예수는 이 모든 죄를 속죄하기 위해서 그걸 고스란히 안고 십자가에 매달린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걸 보면서 그렇게 말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예수님이 그 죄를 짊어지고 속죄제의 희생양이 되었으므로, 우리 인간들은 죄의 사함을 받았다는 것이다.

저런 이야기는 사실 성경에는 전혀 있지도 않고, 그저 "어느 신학자가" "자기 생각에" 쓴 이야기에 불과하다. 그러나 목사님은 그게 마치 "성경의 이야기"와 아주 동급인 양 취급하고, 설교시간에 들먹인다. 물론, 그 신학자의 말은 그렇다는 어떠한 교리적 증거가 없고, 또 다른 성경의 자의적 해석의 결과물에 불과하다.

이게 교회가(목사님이) 설교를 해 나가는 방식이고, 이게 기독교 교리의 핵심이다. 기독교 교리의 핵심은 성경이 아니라, 그걸 읽고, 또한 설교를 하는 목사와 교회의 "말씀"들이다. 실제로 기독교인들은 매주 예배시간에 기도를 할 때 "교회"를 위해서 기도를 하고 "목사님의 말씀"을 위해서 기도를 한다. 기독교인들은 목사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해서 우리에게 들려주는 말씀이라고 주장한다. 실상은, 목사든 뭐든 똑같은 인간이고, 목사의 말이나 일반 신자의 말이나 사실 "객관적인 교리로서의 정당성"에 있어서 "논리적, 상식적으로" 판단을 해 보면 별반 차이가 없는데도 그렇다.

이게 기독교가 자체 모순에 빠지는 방식이다. 그들이 믿는 기독교, 사실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 만약 성경이 "하나님이 쓴 책"이라면, 그 기독교는 그 성경을 믿는 게 아니라, 목사의 말을 믿는 종교라는 거다. 이게 기독교 교리의 치명적 오류이다. 그들은 뭘 "믿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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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글에서 주장한 내용 중에 "성경의 자의적 해석" 에 대하여 비판하는 글을, 예전에 아인슈타인이 편지에 쓴 적이 있다. http://blog.naver.com/free_three/401293480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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