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가지 생각
1. 무엇이든지 통상적으로 말하는 "정상"이라는 것에서 벗어나면 벗어날수록 까이게 된다
이건 원래 메탈 리스너들이 일반인들(비 청취자)에게 까이는("왜 그런 음악 듣냐" 등등)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다가, 비단 메탈 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마찬가지라는 걸 알게 되었다.
사람들이 말로만 뭐 다원화 시대니 어쩌고 하면서(진화론의 다윈도 아니고;) 다양성의 존중이니
어쩌고 하지만, 사실 자기와 다른 개체에 대해 배타적 성향을 가지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본능과도
같은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것 때문에 각종 파벌도 생기고 극단적으로는 전쟁도 일어나게 되는
거겠지만.. 여하튼, 통상적으로 "정상"이라 말해지는 것은, 그러한 성향의 사람이 많다는 말이다.
그런고로, 그것에서 벗어날수록 그 사람에 대해 배타적 성향을 지니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예를들어 일반인(특히 기성세대, 할아버지 등)들은 FPS 게임을 보면 폭력적이고 비건설적이고
인간성을 망치는 게임으로 본다. FPS게임에서 더 나아가면, 캐주얼 게임(서든 등)을 하는 사람들은
퀘이크에서 시체 터지는 것들을 보고 매우 잔인한 게임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한발 더 나아가서,
솔포, 포스탈, 맨헌트 정도가 되면 이제 FPS게임 유저들에게도 까이게 된다.
(*수정: 맨헌트는 FPS가 아니라 TPS다. 잠시 착각했다;;)
근데 지금 한 이야기들은 일반적 집단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만약 FPS게임 유저가 많은 곳에서
FPS게임을 배척하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오히려 그 사람이 까이게 될 것이다. 왜냐 하면,
"정상"이라는 것은 다수에 의해 결정되는 척도이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오타쿠가 있다면, 현실에서는
그는 그저 "오타쿠"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들이 모여 있는 애니 팬카페 같은 곳으로 가면, 거기서는
그들이 정상이고 일반인들이 병신이 되는 거다.
2. 지속적인 자극에 대해
익스트림 메탈에 입문한 사람은, 듣다 보면 점점 더 강한 사운드를 원하게 되고 따라서 점점 더
익스트림한 밴드의 음악을 즐기게 된다. 그 이유는, 누구나 알겠지만 사람이 어떤 자극에 노출되면
처음에는 그 자극이 매우 크게 느껴진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것은 아무렇지도 않게 되는데,
그 자극으로 인해 쾌락을 느꼈던 사람은 그 감정을 더 느끼기 위해 점점 더 강한 것을 찾게 되는
것이다.
그럼 이게 안 좋은 것인가? 절제나 만족을 모르고 점점 더 심한 것으로 나아가게 되니까, 이것은
안 좋은 습성인가? 그건 아닐 것이다. 내 생각엔 아마 생존수단이 아니었나 싶다. 만약 생존에
해악을 주는 어떠한 자극이 있다면, 그리고 그 자극의 강도를 시간이 지남에 상관없이 계속 같은
세기로 느끼게 된다면 아마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예를 들어 하루아침에 가난해진 사람이 있다면,
처음에는 괴롭겠지만 나중에는 그저 살아가게 될 것이다. 왜냐면 괴로움이라는 것도 지내다 보면
강도가 약해지기 때문이다. 만약 계속 같은 강도로 느낀다면 아마 자살하게 될 것이다.
그럼 다시 극한의 자극을 원하는 사람들의 경우를 보자. 그 자극은 어찌 생각해 보면 정상적인
환경과는 다른, 즉 생존에 위협을 주는 자극일 것이다. 예를들어 공포영화를 봐서 두려운 감정에
휩싸인다고 생각해 보자. 그게 생존에 이득이 되는 자극이라고 생각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금새 무감각해지고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원한다. 공포영화도 점점 더 끔찍하고
엽기적인 걸 원하게 되는 것이다. 달리 생각해 보면, 자기에게 오는 피해가 무감각해지자 더 강한
피해를 원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볼 때, 마조히즘은 인간 누구에게나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성향이
아닌가 싶다. 물론 많고 적음의 차이는 있겠지만..
3. 나는 노래 가사 안듣고 멜로디만 듣는다?
어떤 사람은 외국 노래를 들으면서 저렇게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이건 마치 "난 좀 바보다"라고
외치는 꼴 밖에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냥 차라리, 누군가 팝송을 듣고 있는 당신에게 와서
"너 그거 다 알아듣기는 하냐?"라고 말한다면, 당신의 영어 실력이 딸려서 못 알아듣는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편이 낫다.
애초에 가사가 없는 음악이면 모를까, 노래를 만들기 위해서 뮤지션은 거기에 자신만의 노력을
투자한다. 그럼으로서 노래 하나를 만들고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것이다. 그런데 가사를 모르고
멜로디만 듣는다면, 그건 뮤지션의 노력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뮤지션에 대한 일종의
모욕이라고도 할 수 있다. 마치 조각상을 보는데, 절반을 딱 잘라서 윗면만 보고 아랫면은 무시하고
넘어가는 것과도 같다.
좀 다르게 말한다면, 마치 만화책 보는데 글자는 안보고 그림만 보고 넘어가는 꼴이다.
글자를 잘 모르는 어린 아이면 모를까.. 윗 문장에서 "영어실력이 딸리다"라고 말하라고 한 이유는
이것 때문이다. 뭐, 때에 따라서는 글자가 별 의미가 없는 만화책도 있다. 예를 들어 뽕빨 위주의
성인망가 따위라면 말이다. 노래로 치자면, 뭐 뮤지션이 스스로 "우리 가사는 쓰레기다" 라고
하거나, "보컬이 할 짓 없으면 불쌍하니까 대충 넣은거다" 뭐 이런 상황이라면, 혹은 가사가 죄다
"우끼끼끼 이히히히 으헝으헝" 뭐 이딴 것들 뿐이라면 모르겠다. 그런 상황이 아니라면, 가사를
안 본다고 주장하는 것은 바보 같은 소리밖에 되지 않는다.
4. 음악 청취와 공감대에 대해
음악이라는 건 감성적인 활동이다. 음악을 들으면서 우리는 음악에 따라 슬퍼지기도 하고,
즐거워지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하고, 공포감에 휩싸이기도 하고, 희망에 벅차오르기도 한다.
근데 내 생각에는, 이러한 감정을 진실되게 느끼기 위해서는, 먼저 그 음악에 자신을 일치시켜야
한다. 다시 말하면 음악과 나와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 음악을 자기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근데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음악과 내가 코드가 맞아야 한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예를
들어 내가 염세주의자, 혹은 인간 혐오주의자라고 하자.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내가 Gamma Ray의
Heaven can wait라던지, Heavenly의 The wrld will be better같은 노래를 듣는다면, 과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까? 십중팔구 아니다. 아마 노래보고 거지같다고 하면서 때려치울지도 모른다.
다른 예를 들어본다면, 내가 만약 기독교를 엄청 싫어하고 예수 사진만 보면 찢어버리고 싶다고
하자. 그런데 나에게 CCM을 들려준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명약관화다.
결국 음악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자신과 코드가 맞는 음악을 듣고 그에 따른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음악은 음악일 뿐 더 깊게 생각하지 마라" 라는 말에 대한
반론의 이유다. 물론 음악이 음악이지 뭐 다른 건 아니지만, 저 말의 뜻은 그저 즐기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음악을 그렇게 즐길 수 없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 동물 보호단체 회원이
"모피를 입자"라는 노래를 들으면서 흥겨워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면 이 상황에서,
"음악은 음악일 뿐 깊게 생각하면 안됨"이라는 말이 과연 적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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