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이야기지만, 드라마틱하다고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메탈 밴드 중에서 가장 유명한 밴드는 무엇일까?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메탈리카가 가장 유명하지 않을까 싶고, 최소한 한 손가락에 꼽을 정도 순위인 건 맞을 것이다.
메탈리카는 (다 그런건 아니지만) 드라마틱한 곡을 많이 쓰는 편이다. 특히 보통 명반이라고 취급받는 2~4집, 그리고 "부활" 했다고 평가받는 "Death Magnetic"의 많은 곡들이 상당히 드라마틱하다. 여기서 드라마틱하다는 건 말 그대로 "극적인", 즉 곡의 구성이나 진행이 단순하지 않고 극을 보는 것처럼 복잡하고 감정의 기복을 크게 느끼게 하는, 규모가 크다고 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보통 드라마틱하다고 평가받는 곡들은 많은 곡들이 대곡 지향적이고, 긴 재생시간 동안 곡을 진행시키면서 여러 완급조절 등을 통해 감정을 움직이고 극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리고 보통 이렇게 "드라마틱한 곡" 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면, 단순한 곡에 비해 뭔가 훨씬 내용도 많고 노력도 많이 기울인, 더 "좋은 곡" 이라고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꼭 그럴까? 당연히 아니기 때문에 이 글을 쓰는 것이고, 그에 대한 예로써 메탈리카의 대표적인 드라마틱한 명곡, Master Of Puppets를 들어 보기로 한다.
(솔직히 말해서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본 필자가 MOP가 그리 엄청난 명곡이 아니라고 평가하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음악을 들을 줄 몰라서 그렇다는 식의 말을 많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메탈 사상 가장 유명한 곡 중의 하나일 것이다. 이에는 그만큼 유명한 이유가 있기도 한데, 극적이고 인상적인, 메탈 사상 가장 유명한 인트로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인트로와, 곡 중반에 삽입된 (여타 대부분의 스래쉬 메탈 곡에서는 듣기 힘든) 조용한 부분으로의 진입과 이를 통한 분위기 전환, 심각하게 비극적이고 웅장한 결말과 곡 전체 멜로디와 분위기에 어울리는 심각한 가사내용, 거기다가 빠른 템포임에도 지속적인 다운피킹을 사용함으로써 극적으로 헤비함을 연출하는 연주기법까지, 여러모로 인기를 끌 만한 요소는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역사에 길이 남을 상당한 명곡으로 보인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 곡에는 상당한 단점이 존재한다. "지루하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드라마틱함"에 대한 집착이 역으로 지루함을 낳았다고 볼 수 있다. 당연히 필자 혼자만 지루함을 느꼈다면 필자의 집중력 따위의 문제겠지만, 이 곡에서 지루함을 느끼는 사람은 의외로 꽤 존재한다. 어느 부분에서 그러한 결과를 불러 일으키는지 살펴보자.
강하게 헤비한 연주로 시작되는 인트로는, 앞서 말했다시피 거의 흠 잡을 데가 없으며 매우 자연스럽게 청자를 곡의 전개부로 몰아넣는 매우 훌륭한 인트로이다. 그렇게 약 50초 정도 인트로가 진행된 다음 메인 리프가 등장하는데, 본 메인 리프 자체 역시 적절하고 괜찮은 편이다.
그런데 이 부분이 끝나고 나서 곧바로, 본 앨범의 최대 문제점이 드러난다. 이 메인 리프가, 단 한 차례의 변화도 없이, 절 부분의 전반부에서 그대로 계속 반복되면서 쓰이고, 약간의 음정 변화를 거쳐서 후반부에서 쓰인 다음 후렴구 리프로 넘어간다. 이 후렴구 리프 자체는 절 리프와 매우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좋은 편에 속하는 편이지만 동시에 크게 부각되지도 않으면서, 앞선 절 리프와 겹쳐서 큰 특징 없이 다가오는데, 역시 후렴구에서 계속 반복되다가 "Master, Master!" 하는 부분에서 역시 또 한 차례의 작은 변화를 겪는다.
사실 여기까지만 보면 크게 문제점을 못 느낄 수도 있다. 어차피 같은 리프를 절과 후렴구 내내 주구장창 써먹는 곡은 널리고 널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점이 뭐냐면, 우선 그 리프 자체가 별 특징이나 기복이 없이 진행된다는 점이고, 두번째는 바로 이것이 끝이 아니라 한번 더 반복된다는 점이다. 이 후렴이 끝나면, 앞서 등장했던 인트로 리프의 끝 부분이 재등장했다가 다시 절 리프로 넘어가면서 2절이 시작된다.
2절은 1절과 길이가 완전히 똑같고, 후렴 또한 똑같다. 이렇게 무려 3분 30초까지 진행된다. 절-후렴 한 사이클의 시간 자체도 결코 짧지 않은데, 똑같은 걸 똑같이 두번씩이나 반복한다. 그리고 또한, 이 절과 후렴 전반을 살펴봤을 때, 멜로디 자체도 큰 기복 없이 비슷비슷하게 진행되는데다가 후렴구 자체 또한 Master! Master! 부분에서 자꾸 끊어지는 듯한 인상을 줘서 리프 반복의 지루함을 좀 더 부각시키는 역효과를 가져오고, 괜히 두 부분으로 나뉘어진 바람에 길이가 더욱 길어져서 "반복"의 인상을 더욱 강하게 만들고 만다. (심지어 후렴의 경우 끝나는 부분에서 굳이 마지막 소절을 또 반복하는 행위를 저지르기도 한다.)
그러고 나서 분위기가 급변하며 조용한 부분으로 전환되는데, 이 부분 자체에 대한 말이 꽤 많은 편이고 특히 골수 메탈 팬들은 상당히 안좋게 평가하기도 한다. 본 필자 또한 예전에 쓴 글에서 이 부분이 뜬금없고 필연성이 부족하며 구조를 단절시킨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이는 사실이지만 한편으로 보자면 "멜로디" 자체는 딱히 나쁘지는 않고, 오히려 "드라마틱함"을 부각시킨다. 조용한 멜로디가 점차적으로 고조되다가 이윽고 급격한 헤비 리프를 만나면서 "Master! Master!" 를 외치는 부분으로 돌입하는데 상당히 자연스러워서 괜찮은 편이다.
이 부분이 사실 이 곡의 주제외 하이라이트를 담고 있는 핵심 부분인데, 여기서 또 문제점이 등장한다. 우선 저 "Master" 이라는 연호는 안 그래도 이미 무려 두 번이나 반복되는 긴 후렴구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들어 왔던 문구인데, 이를 또 한 차례 계속 들음으로 인해 곡의 핵심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또 지루함을 느끼게 한다. 이쯤 되면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필자 같은 성격이라면 "아이고, 또?!" 라고 외치며 한숨을 쉬게 된다. 물론 저 부분의 보컬 가사는 해당 리프와 분위기에 적절하게 어울리므로, 그 부분만 따로 떼어 놓고 보면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지루하다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이것이 끝나면(참고로 이때의 시간을 보면 이미 5분 40초가 지나 있다. 웬만한 곡이라면 이미 끝났을 시간이다. 이 곡이 얼마나 길이가 긴지 느낄 수 있다.) "Fix me!"라는 외침을 시작으로 급격한 기타솔로가 시작되는데, 이 솔로를 욕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지만 필자로서는 이상한 점을 느낄 수가 없었다. 오히려 이전까지 너무 지루했기 때문에, 빠른 속주 연주를 통해 분위기를 해소하는 역할을 하는 이 솔로 부분이 전체 곡에 있어서 인트로와 더불어 가장 나은 부분이라고까지 생각될 정도이다.
솔로가 끝나면 약간 다른 리프를 거쳐 이윽고 또 인트로 마지막 리프와 함께 또 절이 시작된다. 말할 것도 없이 1절이나 2절과 길이가 똑같고 당연히 아무런 변화도 없다. 보컬 멜로디라던지 리프라던지 드럼이라던지 전혀 아무런 변화도 없이, 또(그 길고 긴 절과 후렴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쯤 되면 진짜 메인 리프만 들어도 입에서 신물이 나올 정도이고 후렴구에서 "Master! Master!"를 외쳐대는 제임스 햇필드가 매우 짜증나게 느껴질 정도이다. 그런 식으로 지루하게 긴 사이클이 돌아간 다음에, 마침내 뒤틀린 웃음소리를 바탕으로 곡이 끝나게 된다.
곡이 다루고 있는 심각하고 비극적인 주제와 무거운 분위기, 이를 연출하기 위한 극적인 인트로와 급변하는 중반부, 마지막 부분의 뒤틀린 웃음소리가 가져다 주는 웅장하고 비극적인 결말은 상당히 비장하고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곡이 끝났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이 곡을 "드라마틱한 명곡" 이라고 평가하곤 한다. 그렇지만, 어떤가? 그 드라마틱함의 이면에는 저러한 상당한 "지루함"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본 곡이 드라마틱하다는 데에는 필자도 이견이 없다. 그러나 결국 이를 보면, 드라마틱하다는 평가가 꼭 그 곡이 좋다는 평가인 건 아니다. 다시 말해서, 모든 드라마틱한 곡이 좋은 곡은 아니다. 드라마틱한 것은 드라마틱한 것이지만, 이를 덮을 정도로 지루함 또한 강하기 때문에, 이 곡은 엄청난 명곡이라기보다는 꽤나 지루한 곡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드라마틱함을 피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드라마틱하면서 좋은 곡은, 길이가 긴 경우에는 그 길이에 걸맞는 여러 드라마틱한 내용이 있어서 지루함이 없게 만들고, 길이가 짧은 경우에는 짧은 길이에서도 내용을 압축하고 핵심을 전달함으로써 드라마틱함을 전달한다. MOP는 긴 길이에도 불구하고 그에 걸맞는 많은 내용을 담지 못하고 그저 반복하기만 함으로써 길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지루함을 연출하기 때문에 뛰어난 명곡이 될 수 없는 것이다.
MOP를 굳이 이렇게 길게 만든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면, 아무래도 드라마틱함을 위한 곡이니만큼 길이를 길게 늘여서 분위기를 잡아보려는 의도였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메탈리카의 3~4집이나 Death Magnetic 같은 앨범들의 곡들을 보면 길이가 상당한 곡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드라마틱함을 연출하기 위해서 반드시 곡 길이가 길어야 할 필요는 없다. 이에 대한 사례로는 다음 곡을 들고 싶다.
슬레이어의 드라마틱한 명반인 2집 Hell Awaits의 드라마틱한 명곡인 Necrophiliac이다. 곡 길이는 MOP의 절반도 안 되지만 내용물은 오히려 훨씬 많을 정도이고, 짧은 시간 내에 압축해서 들려주고 있다. 절 구간의 길이 자체가 MOP에 비해 훨씬 짧고 적절해서 지루함을 느낄 틈을 주지 않을 뿐더러, 다운피킹에 대한 집착 없이도 리프 자체만으로 충분히 헤비하고, 중간에 조용한 부분의 삽입 같은 것 없이도 절 부분의 다변화와 적절하게 계속 변화하면서 진행되어 나가는 리프들, 그리고 후반부 브레이크 부분과 기타 솔로들을 통해 효과적으로 극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당연히 쓸데없는 반복 따위는 하나도 존재하지 않고 길이가 짧다고 해서 내용물이 부실하지도, 분위기가 허술하지도 않다. 깔끔하고 간결하면서도 거대하고 극적인 명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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