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녹음된 음원에서의 기계적 음질에 대해 여태까지 생각하기를
그것 또한 (중요할 수도 있는) 음악의 내적 요인으로 생각해 왔다.
물론 음악의 본질적 요소에는 포함이 되지 않는 것이 확실하지만, 녹음되어진 매체로서의 청자의 수용(CD-DAP-리시버-고막)을 볼 때, 그 녹음의 품질(프로덕션)은 그 녹음되어진 것을 단위체로 파악했을 때 분명 내적 요인(즉 객관적 요인)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공연장에서는 스피커의 품질이라던가 여타 음향 효과, 혹은 아예 분야를 달리하여 책의 경우를 살펴보면 종이의 재질이라던가 부식 정도, 음식이라면 담겨진 그릇의 품질 혹은 담아놓은 모양이나 청결함 등등이 이에 해당된다.
그리고 이게 얼마만큼의 효과(영향력)를 발휘하느냐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개체를 수용할 때 그걸 본질 그 자체로서 수용하지 못하고 반드시 매개체가 필요하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그 매개체의 상태를 결정지을 수 있는 저러한 문제에 대해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주체가 그것을 수용함에 있어서 꽤나 큰 요인으로 작용하는 (객관적) 문제로 생각해 왔다.
그런데 오늘 게헨나를 들으면서 생각한 건데, 그딴 것은 하등 무가치하며 우리가 위대한 것을 감상할 때 어떠한 방해도 할 수 없다고 느껴졌다.
만약 존나 어떤 음식이 후줄근한 그릇에 모양도 개떡같이 해서 존나 때가 쩔어 있는 식탁 위에 올려져 있다고 생각해 보자. 너는 그걸 보면서 존나 내키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상황때문에, 혹은 배고파서, 남이 추천해서, 기타 등등) 그걸 먹어 봤다. 그런데 왠걸? 맛이 기가 막힌 것이다. 그러면 그 순간에, 저러한 것들이 너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치게 되는가? 사실 그것이 이미 너에게 수용되어진 이상, 저러한 "수용의 매개체에 작용하는 객관적 요소들"은 전혀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 어떠한 부차적 문제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약간 과장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숟가락 먹었으면 또 한 숟가락 더 떠야 하는데, 이걸 생각해 보면 분명 부차적인 요소에 해당될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다 먹었다고 생각해 보자. 그게 더 이상 의미가 있는가?)
따라서 내가 내린 결론은, 저러한 요소들은 우리가 어떤 대상을 파악하는 순간에는 분명 의미가 있을 수 있지만, 이미 그것을 파악하고 난 다음에는 그 파악된 요소를 받아들이는 데(예컨대 감상하는 데) 있어서 하등 무가치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결국 중요한 것은 본질이기 때문이다.
부차적으로 선입견의 문제가 있을 수 있겠는데, 이는 주관적인 문제로서 지금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부분에 맞지 않는다.
그러니까 뭔 말 하고 싶냐고? 음질이 안좋다 어쩐다 하는 건 다 핑계이고 전혀 가치가 없다. (그리고 만약 학생이라면, 책이 너무 오래되어서 노랗게 썩어서 못 읽겠다 따위의 말은 존나 병신이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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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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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ㄹㄴㄹ
니가 말하는 기계적 음질이 음악이 표현하고자 하는 음악의 본질 자체를 위협한다면 문제가 있지 않을까?
게헨나는 프로덕션에 노이즈가 껴 있긴 하지만 그것이 그 친구들 음악의 본질적 텍스쳐를 훼손하지는 않거든. 그런데 만약 크림슨 글로리라든지 쥬다스 프리스트처럼 보컬이 사운드 텍스쳐의 절대적인 부분을 차지하는 밴드에서 보컬이 클라이막스를 노래하고 있는데 심각한 노이즈로 니가 그 부분을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다고 생각해보셈. 이런 경우라면 단순히 노란 책을 읽는 정도가 아니라 책에서 중요한 페이지가 뜯겨나간 책을 읽는 거라고 보는게 옳지 않을까. 그 반쪽짜리 책을 읽고 니가 과연 그 음악의 본질을 파악했다고 자신 할 수 있을까
음 그 경우는 음질이 안좋다기 보다는 음악이 훼손되었다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음식 예를 들자면 존나 음식에 누가 담배꽁초를 버무려 놓았다면 이건 단순히 포장이 안 좋은 게 아니라 음식을 훼손시켰다고 말해야 하는 것처럼 ㅇㅇ 그 경우는 이것과는 좀 다르게 쳐야 할 것 같다.
나도 뭔 말인지는 알겠는데 내가 이야기하는 것은 충분히 알아들을 만한 상황에서 음질의 좋고 나쁨을 이야기하는거지,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음질이 나쁜 건 그건 더 이상 좋다 나쁘다의 범위를 넘어서서 훼손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그렇게 훼손된 부분에 있어서는 당연히 별 상관이 없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도서실에서 책을 폈는데 책이 누렇게 변색되고 습기때문에 울은 건 책을 못 읽을 정도가 아니고, 정작 책을 다 읽고 나면 별반 문제가 되지 않는데, 책을 꺼내자마자 페이지가 찢겨 있거나 완전히 글씨를 알아볼 수 없게 되어 있으면 그건 이미 훼손된 책이고 따라서 완전히 읽을 수가 없다는 말이다. 물론 그게 단계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닌데, 그 말은 마치 신체일부가 장애인이 되거나 병에 걸려도 인생을 즐길 수 있다는 말에 "상태가 진행되어 식물인간이 되거나 하면 더 이상 즐길 수 없다"라고 반박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본다. 글구 이건 게헨나 문제가 아니라 예전부터 생각하던 건데 마침내 결론을 얻어서 글을 쓴 거임 성급하게 일반화는 무슨
ㄴㄹㄴㄹ
논리의 비약이 있기도하고 상당히 극단적인 견해긴하지만 어쨋든 하고 싶었던 말은 전달하는 외면적 형식(레코딩퀄, 전달하는 리시버의 성능등)을 상쇄시킬만한 본질의 완성도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던 거니까. 예컨데 찢어진 책을 가지고도 올바른 독해를 할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건 아니지. 까라마조프네 형제들에서 대심문관이나 이반과 악마의 이야기, 마지막 재판과정이나 알료샤와 아이들의 일류사 장례식 부분이 죄다 찢어져서 읽지 못했다면 난 결코 그 책을 읽었다고 할수도, 그런 문학적 충격을 받지도 못했을테니. 한마디로 말해서 기븐은 텍스트가 외형적 전달매체 없이 순수하게 전달될수 있다는 극단적인 논리를 펴고 싶어서 이 글을 쓴건 아니라고봐.
물론 너 말대로 이런 종류의 글은 블로그나 개인홈페이지에 올리는게 맞아. 원래 이런 글은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 많은 커뮤니티에서 잘 환영받기 힘들거든. 그래도 고의적으로 어그로를 끌려는게 아니라 다만 좀 과격하게 글을 썻을뿐이라 문제될건 없다고 본다. 그래도 아주 비생산적인 담론이 생산되는건 아니잖어.
ㅁㄴㅇㄹ
전혀 영향을 못 끼치지는 않는다. 폭서가 아닌 다른 커뮤니티라 하더라도 외면받는 삼류 방구석 블랙메탈들을 보면 음질이 너무 구리다 못해 기타 소리가 기타 소리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개 같은 경우도 있는데(일단 이 경우는 음악 자체가 좆구린 경우긴 하지만 지금 내가 설명하고자 하는 포인트랑은 상관 없으니 일단 패스.) 이 정도면 본질적인 부분을 충분히 훼손할 수 있다고 본다.
p.s.그리고 폭서에서도 하는 얘기를 보면 높은 경지의 음악이 꼭 음질이 깨끗해야 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지 음질이 어떻든 음악감상이랑 전혀 상관없다는 얘기는 없는 걸로 보이는데 잘못 짚은 거 아님?
내 이야기는 폭서와는 별 관련이 없다.
ㅁㄴㅇㄹ
위 댓글들 다 읽어보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의견이 일치하는 사람한테 쓸데 없는 반론을 해버린 셈이군. 다만 글을 쓸 때 중점적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개념은 명료하게 정의부터 해놓고 글을 쓰는 게 좋다. 지금도 앞뒤 설명 없이 그냥 음질이라고만 언급하는 바람에 내용 이해에 혼선이 벌어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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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 까라마조프네 형제들을 내가 처음 읽었을땐 열린책들이나 민음사 새로나온 번역 쌔근한걸로 읽은게 아니라 듣보 삼성 문학 전집에다가 너무 오래되서 누렇게 뜬 읍니다체 번역서로 읽었지. 그래도 그때의 충격은 잊혀지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