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 미신의 아이러니
인간의 감각기관들 중 다른 모든 기관들보다 훨씬 더 정밀하고 가장 많은 뇌 영역을 차지하는 기관이 바로 시각이다.
청각기관은 시각에 비하면 훨씬 더 부정확한 기관이다.
그런데 오히려, 시각을 자극하는 제품인 디스플레이의 경우에는 기계를 이용해서 정밀하게 측정한 측정자료가 가장 정확하고 객관적이며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자료로 널리 인정되고 있고, 대충 눈대중으로 하는 캘리가 아닌 전용 장비를 이용하는 하드웨어 캘리브레이션이 훨씬 더 바람직한 행위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반면에,
청각을 자극하는 제품인 음향기기의 경우엔 아직까지도 "자기 귀로 들은 것"을 제외하면 아무런 객관적인 근거나 입증자료가 없는, 말 그대로 "미신"이 압도적인 영향력을 차지하고 있다.
오히려, 감각이 둔하기 때문에 더 더욱 맹목적인 것에 매달리게 되는 것일까?
난 오디오 미신쟁이들을 볼 때마다 개독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과 매우 흡사한 감정을 느끼는데, 그 행동양태 또한 개독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치 기독교에서 "간증" 따위를 하듯이 본인의 청음기를 늘어놓고, 무슨 성령의 임재하심이라도 목도하듯이 세밀한 음의 차이(라고 본인이 굳게 믿는 것)에 매달리고, 이를 주변에 전도하며, 본인의 신앙을 뒤흔드는 "과학"에 맞닥뜨리면 격렬한 반발을 보여준다.
한편으로 이는, 인간의 나약함을 보여주는 또 다른 단면이 아닐까?
인간의 눈은 잘 발달되어 있으므로, 측정기기가 보여주는 측정자료의 변화에 따른 차이를(물론 미세한 차이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분명한 경우) 단번에 분간해낼 수 있다. 또, 비록 측정기기가 인간의 감각기관보다 훨씬 더 정밀하긴 하지만, 그 차이가 다른 감각기관들처럼 크지는 않다.
즉 인간은 디스플레이 측정장비가 내놓은 결과물을 어느 정도 본인 스스로 교차 검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청각기관은 전혀 아니다. 아무리 측정장비에서 각종 측정치를 내놓아도 인간의 귀는 이들 대부분을 구별할 수도 없고 스스로 검증할 수도 없다.
자신의 얄팍하고 보잘것없는 청각능력과, 그에 대비해서 한없이 우월한 측정 장비들. 바로 이 간극에서 오는 충격과 불안 속에서 아집과 반지성주의가 싹을 틔우고, 여기서 미신이 꽂을 피우는 것이 아닐까.
물론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자라온, 평균적인 지능을 보유한 정상적인 인간 쯤이야 인간이 얼마나 부정확한 생물체이고 한계가 명확한지를 확실하게 인지하고 받아들이겠지만, 얼토당토않은 것을 곧이곧대로 신봉하는 열등한 사람들 및 자신의 보잘것없는 경험 따위를 신봉하는 꼰대들에게 그런 것을 바라는 것은 무리 아닐까.
자신의 귀보다 훨씬 정밀하고 정확한 고도의 측정 장비와, 그에 대비되는 볼품없고 전혀 믿을 수 없는 형편없는 자신의 감각기관. 이 둘 사이에서 후자를 선택하면서 미신의 길로 빠져드는 소위 오디오파일이라는 인간들의 이 모순적인 행태 속에서, 인간의 나약하고 불완전한 본질이 묻어 나오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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