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기억력에 대한 간단한 생각

난 상당히 기억력이 떨어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분명히 며칠 전에 다 깬 게임인데도 스토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말하라고 하면 다 생각이 안 나는 경우도 많고

 

특히 깬지 한 달에서 1년, 2년 이상 지나고 나면 ㄹㅇ 뭔 내용이었는지 기억이 거의 안 날 때도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을지는 모르겠다.

 

창작물이 범람하는 현대사회에는 정말 수많은 이야기들이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존재한다.

 

영화가 되었든 게임이 되었든 웹툰이나 소설이나 애니가 되었든간에 정말 많은 이야기들이 존재하고

 

그 이야기들 중 대다수는 솔직히 딱히 읽을 만한 가치가 없는 것들도 많지만, 나름 재미있고 감명 깊은 이야기들도 많이 존재한다.

 

물론 여기서 "가치가 있다"라는 것은 주관적이기에, 누군가에겐 나보다도 훨씬 더 많은 이야기들이 가치가 있을 수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반대일지라도 여전히 엄청나게 많은 이야기들이 존재하고, 앞으로 남은 수명을 모두 할애하여 그 이야기들을 읽는다고 쳐도

 

해가 거듭될 수록 이야기들은 점점 더 많이 쌓여가기에, 마치 우주의 끝에 도달할 수 없듯이 이야기의 끝에는 절대 도달할 수 없다.

 

그런데, 한번 읽은 이야기라고 해서 머릿속에 영원히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완전기억능력이 있는 게 아니라면 누구나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은 흐릿해지기 마련이다.

 

수많은 이야기들을 읽어나가다 보면 처음 읽었던 이야기들은 머릿속에서 사라진다는 것이다.

 

웹툰을 보다 보면 장기연재하는 웹툰들이 있는데, 이런 웹툰들은 나중엔 내용이 도무지 이해가 안 돼서 결국 "정주행"을 다시 하곤 한다.

 

웹툰을 정주행해보면 분명 예전에 읽었던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페이지는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접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남들보다 기억력이 떨어지는 나 같은 사람들은, 남들과 똑같은 주기로 웹툰을 정주행하거나 영화를 다시 본다고 했을 때

 

다른 사람들은 "아 다 아는 내용이구만" 이라고 할 때 난 마치 새로운 작품을 읽는 것처럼 새로운 느낌을 받곤 한다.

 

이것이 좋은 일일까?

 

그럴 수도 있다. 특히 만약, 이야기의 갯수가 유한하고 내가 살아가는 동안 모두 읽을 수 있다면 더더욱.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앞으로 읽어야 할 이야기들이 엄청나게 쌓여 있다면, 조금이라도 기억력이 좋은 게 훨씬 낫다.

 

그러나, 아무리 기억력이 좋다 한들 모든 이야기를 읽을 수 있을까?

 

어차피 불가능한 일이라면, 왜 그것을 추구해야 하는가?

 

어쩌면, 나에게 감명 깊었던 이야기를 다시 읽으면서, 그 때 그 순간의 감명을 다시 온전히 느끼는게 더 나은 일이 아닐까?

 

내가 만약, 그 모든 이야기를 전부 기억하고 있다면, 이를 다시 읽는 의미가 없을 것이다. 이를 다시 읽는다고 해서 똑같은 감명을 얻지도 못할 것이다.

 

어쩌면 이야기를 온전히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오히려 더 나은 일일 수도 있지 않을까?

 

나이가 들다 보면 종종 두려운 순간들이 있다. 그 중에 하나는, 내가 어느 과거에 느꼈던 그 감정들, 그 감명들, 그 인상들이 시간 속에 흩어져서, 더 이상 찾을 수 없게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러나 어쩌면, 그로 인해 나는 또 다시 그 감정과 감명과 인상을 다시금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것들이 내 안에 온전히 또렷히 존재한다면, 그것들을 온전히 다시 느끼기란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어쨌든 인간은 현재를 살아간다. 과거 속에 존재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모든 감정과 감명 또한 전부 현재에 존재한다.

 

과거의 순간을 잊었더라도, 지금 다시 느낄 수 있다면 괜찮은 게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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