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원래 싸울 수밖에 없다.

싸우지 않는 인간관계를 찾는건 드문 일이다. 특히, 그 관계가 깊을수록 더욱 싸우는 빈도가 높다.


난 어느 면에서는, 싸우지 않는 인간관계는 오히려 별로 건전하지 못한 관계라고 생각된다.


인간이 싸우지 않을 수 있는건, 서로 상대에게 깊이 접근하지 않을 때만이 가능하다. 소위 "상호 존중"을 하는 상태인 것이다. 나도 너의 영역에 침투하지 않고, 너도 내 영역에 침투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하는 관계 말이다. 즉, 소위 "지인" 정도의 관계가 그것이다.


인간이란 고등생물이고, 누구나 저마다의 가치관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서로 상대에게 깊이 접근할수록 미묘하게 어긋나는 면들로 인해 싸울 수밖에 없다. 이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다.


보통의 평범한 인간관계라면 싸우면서 친해지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 않다면, 애초에 별로 친하지도 않고 그럴 생각도 없으며, 따라서 굳이 다투고 싶지도 않아서 피하는 관계던가.


그런데, 이게 약간 다른 경우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인터넷 상의 인간관계이다.


사실 인터넷 상의 관계라는 것은 상당히 피상적이다. 상대를 닉네임 또는 아이피 정도로밖에 접하지 못하고, 실제로 그 사람이 단일객체로 존재를 하긴 하는건지 아님 다중 분탕인지도 알 수 없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인터넷 상에서는 현실의 웬만한 사람과도 하지 못할 막역한 관계를 형성하기도 한다. 나 자신의 현실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이, 오히려 나 자신의 내면을 더욱 더 드러내도록 만드는 장치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터넷 상에서의 싸움은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인다. 서로 정체를 알지도 못하고, 사실상 "실질적으로" 친한 관계도 아니면서, 현실의 웬만한 인간들과도 하지 못할 내면의 깊은 생각들을 마구 쏟아내다 보니, 충돌이 일어나는 순간 현실에서는 웬만해서는 입에 안 담을 말까지 써 가면서 격렬하게 싸운다.


인터넷 상에서 가만히 살펴보면, 무슨 싸움이 일어났거나 혹은 예전에 싸웠던 사람들끼리는 서로 무슨 철천지 원수처럼 대하는 것처럼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웃긴 점은, 그들이 싸운 이유를 보면 굉장히 사소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정치 이야기나 종교 이야기같은 건 당연한 것이므로 제외하더라도, 무슨 어떤 가수가 좋니 나쁘니 어떤 게임이 재밌니 구리니 하는 것 때문에 철천지 원수처럼 다투곤 한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두 가지를 들 수 있는데, 하나는 남들이 보기엔 별로 대단치 않은 사안들 같지만 당사자들에게 있어서는 가치관과 정체성을 건드리는 사안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예컨대 누가 나에게 둠이란 퇴물이며 도태될 수밖에 없는 게임이라고 한다면, 결국 내가 좋아하는 둠이라는 게임을 비롯하여 하이퍼FPS 전체, 그리고 그걸 즐기는 나의 가치관까지 싸잡아서 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는 인터넷 상에서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의 가치관을 여과 없이 드러내곤 한다. 남들이 객관적으로 보기엔 단순한 사안이라 하더라도, 이를 말하는 인터넷 상의 우리들은 우리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담아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이 부정당하고 충돌이 일어나게 되면 화가 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현실에서 대면하지 않는 추상적인 관계에서는 타자화가 일어나기 쉽다는 점이다. 이는 마치, 우리가 학창시절 왕따를 대할 때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인간들이 왕따를 괴롭힐 수 있는 이유는 그를 자기와 같은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인터넷 상에서 대하는 사람들을 자기와 같은 인간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상대는 닉네임으로만 존재하는 추상적인 객체이고, 그 실체가 모호한 존재로써 인간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대상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이유로, 위에서 말한 왕따와 같은 현상도 마찬가지로 인터넷 상에서 광장히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어떠한 커뮤니티 내에서 비주류적인 의견을 제시하거나 가치관을 말하는 사람의 경우 매우 쉽게 배척당하고 왕따가 된다. 사실 건전한 커뮤니티라면 관리자가 나서서 이러한 일을 막아야 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커뮤니티가 매우 많기 때문에 종종 발생하는 일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결국 딱 한 가지다. 과몰입하지 말 것. 계속 말했듯이 인터넷 상의 인간관계라는 것은 굉장히 추상적이고 근본적으로 무의미한 것들이다. 여기에 너무 큰 가치를 부여해서는 안 된다. 인터넷 상에서 아무리 깊은 가치관을 나누더라도, 이는 당신이 그 사람들과 실질적으로 깊은 관계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추상적인 관계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누군가 당신을 공격하더라도, 또는 당신이 누군가를 공격한다고 해도 이는 사실상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그것이 실제 현실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한에서 그러하다. 만약 현실에 영향을 미친다면, 명예훼손이나 모욕죄가 성립하게 된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무의미한 행위이므로, 절대 필요 이상의 가치를 부여하고 과몰입하면 안 된다.


인터넷 상에서 논쟁이 일어나면, 그냥 상대하지 마라. 인터넷에서 당신이 쓴 글 몇 글자를 갖고 자신의 가치관을 바꿀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정말 아무 의미가 없는 일이다. 그냥 싹 무시하고, 뜻이 맞는 사람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게 훨씬 나은 일이다. 물론, 건전하고 논리적인 토론이라면 해도 무방하지만, 이 글은 그렇지 않은 경우를 말하는 것이고, 사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절대다수이다.


(물론 시간이 남아돌고 존나 심심하다면 어그로 끌고 싸워도 아무 상관없지만, 그 시간에 그냥 게임 한판이라도 더 하는게 정상인 기준으로 봤을 때 훨씬 낫다.)


즉, 인터넷 상에서는 필요한 것만을 골라 취사선택하고, 나머지 열정은 현실의 자신을 위해 투자하는 것이 좋다. 예컨대 당신이 씹덕이라면, 인터넷에서 씹덕을 혐오하는 사람들에게 씹덕문물을 츄라이시키고 싸우기보단, 그냥 같은 씹덕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좋은 작품 정보를 얻어가는 것이 낫다는 말이다.


이런건 너무 당연한 일이지만, 이걸 못 하는 사람들을 수없이 많이 봐 왔다. 사실 나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좀 아니지만 한때는 나도 과몰입을 해 가면서 미친듯이 싸우고 어그로를 끌곤 했다.


과몰입을 하게 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사실 대부분 인터넷 중독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 이러한 경우가 절대다수일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본인이 꼰대라서 그러한 경우가 있다. 우선 전자의 경우는 굳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고, 후자를 보면 특히 나이 많은 사람들의 경우 인터넷에서 자신의 글에 대한 비판을 발견하게 되면 이를 수용하지 못하고 과몰입하여 싸우는 경우를 볼 수 있다.


뭐가 됐든 간에 해결책은 한 가지다. 인터넷을 하는 시간을 줄이고, 현실의 자신에게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다. 나는 인터넷에 중독되는 이유도, 그리고 꼰대가 되는 이유도 사실상 모두 자존감이 낮아서 초래되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의 자신에게 투자하고, 직장을 갖고 동호회 활동도 하면서 허상의 인간관계 대신 현실의 사람들을 많이 만나야 한다. 한 마디로, 웹상에서 좆목하지 말고 현실에서 친목을 하라는 말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건전한 자존감을 형성하고 나면, 인터넷에서 뭐라고 떠들든간에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 있게 된다.


현실의 인간관계에서는 친해질수록 싸울 일이 많아지고, 싸우고 화해하면서 더욱 친해지게 된다. 그렇게 사람과 사람이 맞부딪치는 과정 속에서 자아와 가치관이 더욱 성숙하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인터넷은 아니다. 인터넷에서의 싸움은 정말 남는 것이 단 하나도 없다. 추상적인 관계 속에서, 추상적인 존재들과 함께 싸우고 나면 그저 감정만 상할 뿐이다.


인터넷에서 여러분이 마주하고 있는 대상은, 사람이 아니다. 물론 그들도 모니터 뒤에는 사람이 존재하겠지만, 그와 별개로 인터넷 상에 존재하는 것은 그저 닉네임일 뿐이다. 인터넷에서의 상대방은 현실의 사람이 아니고, 그들과 맺는 관계는 실제 사람과의 관계와는 전혀 다르다. 이 점을 알아야 한다.


허상과 싸우려고 하지 말고, 현실에서의 삶을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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