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 새로운 장난감



AKG K712


음감생활 15년동안 내게 있어 음향기기=휴대용 기기였기 때문에, 스피커나 헤드폰은 한 번도 써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요새는 밖에서 이어폰을 쓰는 시간이 하루 평균 30분도 안 되게 되었고, 집에서 의자에 앉아서 컴퓨터를 하고 있는 시간이 길어져서


본래 컴퓨터를 할 때는 커널형을 쓰기 귀찮아서 이어팟을 쓰고 있었는데, 음질적으로 좀 아쉬운 부분도 많고 영화보거나 게임할때 박진감도 덜하고 해서 헤드폰을 사기로 마음먹었다.


수시간의 청음 끝에 고른 모델인데, 이 모델은 명백하게 고음쪽으로 치우친 고음형 모델이다. 특히 그래프를 찍어 보면 AKG 모델들 거의 전부 100Hz 이하로 푹 꺾이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는 즉 극저음이 거의 없다시피하다고 볼 수 있다.


(이어폰으로 따지면 절대다수의 오픈형 이어폰들이 다 이런 식이다. 커널형은 아무리 개싸구려라고 해도 극저역 대역폭을 잘 보존하지만, 오픈형은 음누수 때문에 극저역을 보존하기가 매우 힘들다.)


근데 음감 뿐만 아니라 영화나 게임 목적이라면 당연히 저음이 잘 나오는 모델을 사야 한다. 근데 왜 이걸 샀냐 하면, 이번에 청음하면서 내가 고음성향이라는걸 확실하게 알았다.


장시간 ER4S나 포낙을 써서 그런지, 요즘 하만타겟 기준으로 저음이 잘 나오는 모델은 꽤나 부담스러웠다. 특히 문제가 있는데, 저음이 쿵쿵거리면서 머리를 울린다는 것이다. 이 쿵쿵거림은 내가 예전에 디락을 리뷰하면서도 했었던 말인데, 헤드폰은 이어폰보다 훨씬 심하다. 이어폰은 귓구멍 속을 쿵쿵 울린다면 헤드폰은 귓구멍뿐만 아니라 옆 관자놀이와 광대뼈 턱뼈까지 울린다. 그래서 부담이 더 심하다.


지금 K712를 사서 이틀 넘게 쭉 쓰고 있는데, 이 정도만 되어도 이미 장시간 사용시에는 약간 부담스럽게 느껴질 정도이다. 즉 한마디로 말하자면, 저음역이 피로도를 증가시키는 작용을 한다.


뭐 그런 문제도 있고, 내가 실제로 들어보니 그래프랑은 달리 저음이 크게 부족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저음량만으로 따지면 HD600이 더 좋은데(근데 이상하게도 innerfidelity 같은 사이트 자료를 보면 저역대 그래프가 비슷하다), HD600은 몇년 사이에 가격이 너무 오른데다, 고음역은 AKG시리즈가 더 좋고, 이미 이 정도만 되어도 포낙이나 알포 같은 이어폰들보다는 저음이 훨씬 크고 많은 것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그래프를 찍어 보면 20Hz까지 쭉 대역폭을 유지하는건 오히려 알포인데, 청감상 K712가 좀더 다이나믹하고 저역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어쨌든, 그동안 이어폰만 써왔기 때문에 헤드폰 쪽은 뉴비나 다름없지만, 대충 감상을 말하자면 일단 저역대 타격감이 약간 부족하고 고역이 약간 강조되어 있는 것 빼고는 상당히 균형잡힌 축에 속한다고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이 정도 고역강조는 하이헷 소리를 굉장히 청량감 있게 증폭시켜 줘서 기분이 좋은 강조라고 생각된다.


특히 인상깊었던 점이, 스테이징이 굉장히 넓게 형성된다. 이는 알포같은 이어폰들과 비교하면 극명하게 체험되는데, 아예 음상이 맺히는 범위부터가 완전히 차이난다. 눈을 감고 들어보면 스테이징의 차이가 여실히 느껴진다.


예전부터 이어폰이나 헤드폰에 있어서 공간감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개념이라는 주장에 동의를 해 왔었는데, 이 헤드폰에서 느껴지는 스테이징은 비록 스피커의 공간을 울리는 소리와는 개념이 약간 다르긴 하지만 분명히 뭔가 이어폰과는 다른 차이점이 존재하고, 이는 허상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사람에 따라 이를 "공간감"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위 주장에 따라 공간감이라는 표현이 어폐가 있다고 생각해서 "정위감"등의 다른 명칭으로 부르는 사람도 많은데, 암튼 그 점에서 이어폰들보다 훨씬 만족스러운 무언가가 있다. 아주 예전에 UE700을 비롯한 몇몇 이어폰들 비교리뷰 쓰면서 음이 둥글게 맺히니 납작하게 맺히니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그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암튼 그러면서도, 해상력이 "알포 못지 않게" 뛰어나다. 위에서 말한 넓은 개방감과 맞물려 종종 소름이 끼칠 정도로 청량한 사운드를 들려주는데, 알포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색다른 재미를 종종 선사해준다.


굉장히 만족스러운 제품이다.


글구 요번에 청음매장에서 청음을 하면서 워너비 모델도 생겼는데, 바로 포칼 클리어이다. 처음 듣는 순간부터 정말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많은 모델을 들어보다 보니 보통 1분 듣고 빼고 이랬는데 이건 도저히 음악재생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냥 청음매장에 죽치고 앉아서 해당 모델로 여러 음악을 쭉 들어보고 싶은 충동까지 생길 정도였다.


포칼 클리어는 단시간의 청음으로 단점을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 소리는 내 기준으로 거의 완벽에 가까운데다, 착용감마저 뛰어나다. 참고로 저음의 양이 K712에 비해 확실하게 많고 타격감이 뛰어난데, 그러면서도 결코 부담스러운 저음이 아니고 다른 대역에 거의 지장을 주지 않는 굉장히 밸런스잡힌 저음이었다.


두번째로 좋게 느껴진건 베이어다이나믹 T1 2세대였다. 사실 이 제품도 처음 들었을 때 K712보다 확실히 모든 면에서 더 뛰어나다고 느꼈는데, 이거 듣고 나서 포칼 클리어 듣는 순간 너무 놀란 나머지 한동안 존재를 잊어버리기까지 했었다. 만약 포칼 클리어가 아니었다면 이 제품을 제일 좋다고 생각했을 지 모른다. HD800을 비롯한 타사 플래그쉽들보다 더 좋게 들었다. 역시 굉장히 균형잡힌 소리이다.


암튼 언젠가 포칼 클리어를 사고 싶다. 다만 너무 비싸서 덜컥 낭비하기 쉽지 않은 금액인지라.. 그 때가 언제가 될지는 도저히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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