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만 잡고 잤을 텐데?!" 7권 및 시리즈 전체 간단한 감상소감



손잡잤이 7권으로 완결이 났다. 작가가 이번달에 군대를 가는데다 후기에도 더 이상 후속작은 없다고 한 이상 이제 확실하게 완결난 것으로 봐도 될 것 같다. 손잡잤을 좋아했던 독자로써 간단하게라도 소감문을 쓰고 싶어서 이 글을 남겨 본다.


"손만 잡고 잤을 텐데?!" 라는 제목만을 보면, 정말 그야말로 전형적인 3류 뽕빨물이 떠오를 것이다. 가볍고, 내용없고, 문학적 깊이나 작품성 따위는 논하는게 부끄러울 정도에 대충 읽고 치우는 수많은 불쏘시개들 말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내가 볼 땐 원래 이 시리즈는 그런 식으로 기획되었던 것 같다.


내가 작가가 아닌 이상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하지만... 이 시리즈는 처음 노블엔진 공모전에서 당선된 이후로 (참고로 해당 공모전은 "1챕터의 승부"라고 해서, 책 1권 전체를 제출하는 것이 아니라 1챕터만을 제출하고 이를 바탕으로 평가하는 공모전이다. 보면 알겠지만, 초반부터 눈길을 확 사로잡는 것이 아니면 절대 당선될 수 없다. 깊이 있고 내용 있는 작품보다는 자극적이고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류의 작품이 뽑힐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1권이 실제로 발매되기까지 1년도 넘는 시간이 걸렸다. 아마 초기의 별 내용 없거나 허접스러운 내용에서 지금의 여러 복선과 스토리라인을 구성하기까지 걸린 시간으로 보인다.


또한, 이 책의 첫권 첫 수십 페이지를 넘겨 보면, 위의 예상-즉 전형적인 3류 불쏘시개라는-이 맞아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온갖 개드립으로 점철된 페이지들과 난잡하고 어설픈 전개는, 이 책을 대충 읽은 사람들이 "지뢰작이다" 라고 평가하기에 무리가 없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책의 진면목은 1권의 후반부에서 그 모습을 살짝 드러낸다. 거의 전반부와 후반부가 다른 소설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180도 달라진 분위기로 전개되는 후반부는, 감정 대 감정의 충돌과 비틀린 인간의 비틀린 내면세계를 말 그대로 폭풍같이 질주하며 쏟아내는데, 전반부를 대충 읽으며 피식거리던 많은 독자들이 아마 이 부분에서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느꼈을 것이다. 한국 라노벨 중에서는 손에 꼽을 정도로 심각하고 진지한 내용과 표현방식을 보여주는데, 본인 또한 이 부분에서 "아, 이 소설은 뭔가 있구나" 라는 걸 느꼈다.


1권을 E북으로 읽은 이후로, 워낙 감명깊었던 나머지 2권부터는 바로 서점에서 구매해서 읽었다. 더욱 인상깊은 점은, 시리즈가 거듭될 수록 발전해나가는 작가의 역량이다. 많은 독자들이 동의하는 바와 같이, 3권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그야말로 미칠 듯한 흡인력을 느끼면서 눈을 뗄 틈을 못 찾을 정도였는데, 그 시점에서 이 작가가 지닌 작가로서의 잠재성을 느낄 수 있었다.


손잡잤 7권은 여러모로 상당히 인상 깊을 수밖에 없는 책이다. 시리즈 전체의 완결권이라는 점에서 일단 그렇고, 6권에서 더할 나위 없이 완전하게 시리즈가 끝난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이토록 긴 내용의 "후일담"이 등장했다는 점에서 그렇고, 심지어 새로운 캐릭터마저 등장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고, 또한 책에서 전달하고 싶은-그리고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서 작가가 전하고 싶은-주제가 갈무리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 책에서 등장하는 신규 캐릭터를 보고 굉장히 의아스러웠다. 이건 말하자면 에필로그같은 책일 텐데, 지금까지 기존 캐릭터만으로 잘 진행했으면서 마지막에 갑자기 전혀 다른 캐릭터가 등장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심지어 (6권에서 나봄이 결혼하는 내용을 바탕으로) "혹시 미래에서 온 나봄이 딸은 아닌가?" 하는 추측까지 들었다. 결과적으로는 전혀 다른 캐릭터가 맞았다.


처음에는 작가가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몰랐는데(심지어, 이 캐릭터는 사실 독특하거나 개성있거나 하는 핵심 캐릭터라고 보기도 힘들다. 인터넷을 보니까 누군가가 이미 지적해 놨는데, 금발 트윈테일 츤데레 부잣집아가씨 동아리후배 기타 등등등 각종 설정이란 설정은 죄다 집약해 놓은 것 같은 작가 편의주의적인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이번 권을 쓰기 위해서 긴급 투입시킨 캐릭터와도 같다), 책을 다 읽고 나니까 왜 그랬는지, 그리고 이 선택이 옳은 선택이었다는 걸 알고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시리즈를 통틀어서 작가가 전하고 싶은 것은, 간단하게 말하면 바꿀 수 없는 (지나가버린) 과거에 얽매여서 현재의 소중함을 놓치는 우를 범하지 말자는 것이다.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현재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고 이를 통해 미래 또한 (지금보다 더 행복하게) 바꿀 수 있다는 것이 이 시리즈의 주제이다. 그리고 이 7권의 주제는 이를 바탕으로, 인생은 어느 한 지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새로운 관계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며 현재에서 미래로 흘러간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작가는, 기존의 사람들-자임, 나봄, 지혜 등-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즉 현재(소설에 따르면 6권 이후의 자로와 세연이 만들어가는 새로운 현재와 미래)를 살아가면서 새로 만나게 되는-사람들과 맺게 되는 인간관계를 보여주고자 저러한 새로운 인물을 삽입한 것이다.


그리고 이 선택은, 본인이 보기에는 굉장히 탁월하고 세련된 선택이었던 것 같다. 이를 보여줌으로 인해, 이야기가 단지 책 속에 고정되어 있는 이야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뭔가 실질적인 생동감을 갖고 앞으로 뻗어 나가는 이야기로서 와닿는 결말이 될 수 있었다. 6권으로 끝나는 것보다 지금 이렇게 7권을 보여주는 것이 시리즈를 완결내는 데 있어 더욱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라이트노벨에 걸맞지 않을 정도로 세련된 기법을 보여주는 부분에 다소 감탄한 것은 물론이다. 솔직히 이 정도 역량은 라노벨 뿐만 아니라 한국 장르소설계의(양판소 제외) 기성 작가들 대부분보다도 더 높다고 생각된다.


(솔직히 말하자면, 본인은 이러한 라노벨들이 웬만한 국내 장르소설-양판소는 당연히 제외-보다는 훨씬 완성도나 작품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장르소설 대부분이 안습 그 자체이기 때문이지만...)


이처럼 탁월하고 인상 깊은 시리즈와 작가이지만, 한편으로 이 손잡잤이라는 시리즈는 개인적으로 느낀 아쉬운 부분 또한 만만치 않을 정도로 크기도 한 작품이었다. 우선 시리즈 초기의 그 허접스러운 부분들은 따로 언급할 필요조차 없을 지경인데, 아마 1권만 읽고 때려친 사람들 또한 많을 것이다. 애초에 제목부터가 3류 불쏘시개 뽕빨물스럽기도 하고... 작가가 디시 판갤 갤러라서 읽은 사람들도 많을 것 같은데, 본인은 판갤을 안 해서 모르겠고 인터넷에서 재밌다고 하는 후기 몇 개를 읽고 마침 딱히 읽을 만한 것도 없기에 읽기 시작했었다. 아마 이러한 많은 사람들이 초반의 불쾌함을 참지 못하고 구독을 그만뒀을 것이다.


(시리즈가 거듭되면서 책이 점점 좋아진다는 것은 작가의 역량이 갈수록 발전한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그만큼 초기의 수준이 지금에 비해 뒤떨어진다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이해하기 힘들고 복잡한 설정도 다소 아쉬운 부분인데, 분명 전체 줄거리를 기획하고 그에 맞게 여러가지 세부 설정들도 고심해서 설정한 흔적을 상당하게 느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주 매끄럽거나 자연스럽지만은 않은 설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시간여행 부분을 보면 처음부터 평행우주(작중 개념에 따르면 분산세계)를 염두에 두고 쓴건지 아님 동일 시간축 내의 과거였다가 타임 패러독스를 매끄럽게 풀어가기 힘들어서 바꾼 건지는 모르겠는데, 작품을 전체적으로 놓고 생각해 보면 후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왜냐면 그렇지 않을 경우(즉 처음부터 분산세계 설정이었을 경우) 진자로가 루프를 완성하려고 하는 부분이 굉장히 어색해지기 때문이다. 6권에 와서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을 하긴 하지만 상당히 애매하고 납득하기 힘들었다.


사실 SF물은 굉장히 쓰기 힘든 축에 속한다. 비현실성을 축으로 하는 점에서 동일한 판타지 같은 경우 현실을 완전히 무시하고 설정을 부여해도 상관없는데다 적당히 기존 작품들의 여러 설정들을 따 와서 써도 무방하지만, SF의 경우 현실과의 개연성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훨씬 더 치밀한 사전조사와 배경지식과 설정구성을 필요로 한다. 이 작품은 작가의 첫번째 시리즈라는 점을 감안해보면 굉장히 잘 쓰인 편에 속하지만, 복잡한 SF 시간여행물을 완벽하게 써 내는 것은 다소 무리였던 것 같다.


그리고 글(문장)이 전체적으로 좀 읽기가 힘들다. 문체가 너무 무겁고 깔끔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주는데, 아마 내면세계를 너무 세밀하게 묘사하려다가 이렇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분명 그 부분은 이 시리즈의 강점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글을 읽는 것을 다소 어렵게 한다. 특히 무엇보다도, 이상하리만치 지나칠 정도로 쉼표를 너무 자주 사용한다. 아마 시리즈 전체를 쭉 놓고 보았을 때, 전체적으로 쓰인 쉼표의 갯수를 한 절반에서 3분의 1 정도로 줄여도 충분히 말이 통할 뿐더러 오히려 더 간결하고 읽기 쉬워질 것으로 보인다. 너무 자주 쓰인 쉼표 때문에, 글을 읽다 보면 호흡이 뚝뚝 막히고 덜커덕거리는 느낌을 자주 느낄 수 있다. 이러한 부분은 꽤 아쉬운 부분이었다.


분명 이 시리즈는 장점 뿐만 아니라 단점 또한 어느 정도 존재한다. 그러나 희망적인 사실은, 이러한 단점들이 대부분 작가의 초기 역량이 지금에 비하면 다소 부족했다는 점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놓고 볼 때, 작가가 다음 시리즈를 쓰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아마 이 소설에서 보여줬던 단점들이 상당 부분 존재하지 않는, 더욱 더 완성도 높은 작품이 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지금까지보다 앞날이 더 기대되는 작가라는 것은, 발전 가능성이 넘치는 작가라는 것은 무엇보다도 긍정적인 사실일 것이다. (과거보다 현재, 미래가 더 기대된다는 사실이 묘하게 이 시리즈의 주제와 일치한다는 점이 재밌다.) 사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작가가 군대를 간다는 사실이 상당히 아쉽고 안타까운 부분이다. 군대를 갖다 온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군대라는 곳이 개인의 역량을 보존하고 발달시키기에 별로 좋은 곳이 아니라서... 다만 작가 후기를 보면 뭔가 또 새로운 시리즈를 기획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뭔지는 모르겠지만 부디 잘 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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