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음악을 듣는가

예전에 메킹에다가 글을 쓸 때 "사랑보다 메탈 감상이 우월하다"라는 요지의 글을 썼다가 깨진 적이 있는데, 그때 누군가가 "사랑이 호르몬의 작용으로 뇌가 반응하는 현상인 것처럼, 음악감상도 감각기관을 통해 뇌에서 형상화되는 것에 불과하다"라는 요지의 말을 하면서 음악의 형이상학성을 비판한 적이 있다. 이것에 대해 생각한 끝에 내린 결론이다.

나는, 인간 존재가 정말로 위대하고 가치가 있는 이유는, 바로 "위대한 것"을 인식하고 바라보고 추구할 수 있는 그 능력에 있다고 본다. 인간 존재는 실로 나약하고, 결코 위대하지도 않다. 대 자연 속에서 인간은 한갖 먼지보다도 못한 존재이고, 위대한 존재 앞에서 한없이 작은 존재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작은 존재인 인간은, 자신이 결코 다다를 수 없고 창조할 수 없는 바로 그 "위대한 것"을 바라볼 수 있고 인식할 수 있고 그것을 추구할 수 있다. 바로 여기에 인간 존재의 의의가 있다. 인간은 나무와 같은 존재이다. 뿌리는 땅에 박혀 있지만, 줄기는 하늘을 향하고 있는 것이 인간이기에, 삶의 가치가 존재한다.

음악은, 모든 예술과 마찬가지로 엔트로피의 감소를 추구하는 표현행위이다. 우리는 결코 엔트로피를 영원히 감소시키는 방향의 행위를 만들어낼 수 없지만, 일시적으로 그러한 현상을 만들어 냄으로서 우리가 추구하고자 하는 이상향을 표현해 내는 것이 예술이다. 그 중에서 나는 다소 개인적인 취향으로 음악을 선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술로서의)음악의 진정한 가치와 목적은 그것의 형이상학적 방향성에 있다.

그렇다면, 섹스를 하는 것과 음악감상을 하는 것 사이의 본질적 차이는 무엇인가? 물론 두 현상 모두 우리 인식(뇌)에서의 표상으로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 감각기관의 작용 방식일 뿐, 그것을 통해 두 현상이 본질적으로 동일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왜냐하면, 표상의 이면에는 그 근거가 되는 본질이 필연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관적으로 대상을 받아들일 때, 우리 뇌에서 구현되는 표상은 우리 주체의 주관적 해석에 기인한다. 그러나, 그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물 자체로서 존재하는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물질이 없으면 표상이 존재할 수 없다. 즉 객관적인 객체가 있어야 주관적 해석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우리 눈 앞에 아무것도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것이다.

감동이라는 건 사실 똑같다. 뉴런 사이에서 발생하는 전기신호에 의한 자극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감동에도 깊이가 있다. 우리가 이 감동의 깊이의 차이를 인식하고 그것을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은, 앞서 말한 "위대한 것"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것을 통해 진정 위대한 것을 알 수 있다. 섹스로 인한 감동과, 위대한 음악작품의 감상을 통한 감동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그 깊이의 차이는 결코 쉽게 매울 수 없다.

여기에서 의문점이 존재할 수 있다. 주체의 관념 속에 표상으로 존재하는 어떤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그 근거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것이 없다면, 그 모든 "위대한 것"에 대한 인식 자체가 다 허구이다. 결국 음악감상 자체가 다 허구라는 말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그것은 인과율에 대한 인식을 전혀 하지 않은 생각으로서 결코 옳지 못하다. 주체와 물질을 분리시켜서 생각하는 것은 커다란 모순이며, 표상과 실체는 결코 뗄 수 없는 존재이다.

어떠한 결과가 있기 위해서는 반드시 원인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눈 앞의 컴퓨터를 받아들일 때, 그 최종 결과물은 뇌에서 신경조직의 작용으로 발생한 현상으로 존재한다. 하지만 그 현상이 있기 위해서는 반드시 원인이 있어야 한다. 그 원인이, 물질 자체로서의 컴퓨터이다. 위대한 것에 대한 인식도 마찬가지이다. 인과율에 의해 우리는 우리 표상의 원인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상상에 의한 결과물을 생각할 수도 있는데, 상상으로서 일어나는 표상과 현실로서 작용하는 표상은 분명히 다르며, 그 상상의 구현물 또한 현실의 물질로부터 기인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관념의 표상을 통해 물질을 분명히 인식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음악 감상 행위를 통해 그 실체로서 존재하는 음악 자체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고, 그 존재의 위대한 것에 대한 방향성을 통해 우리는 그것이 본질적으로 의미가 있는 행동이라고, 단순히 먹고 사는 것과는 다른, 존재의 본질에 대한 추구 양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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