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성과 자유의지에 대해

본래 이 주제를 바탕으로 무슨 칸트까지 들먹이며 긴 글을 쓰다가, 존나 쓸데없는 짓 같아서 그냥 간단하게 내 생각만 쓰겠다.

 

나는 자유의지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그 이유는, 인간을 포함하여 모든 사물은 인과성의 법칙 하에 존재하고 움직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상 만물을 관통하는 공통된 법칙이라면 가장 단순하면서도 보편적인 개념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생각 하에, 나는 인과성(원인과 결과)의 법칙이 그러한 조건에 부합하는 법칙이라고 판단했다.

 

모든 생성과 소멸, 그 사이에 일어나는 사건들 간에는 원인과 결과가 존재한다. 일단 우리가 관찰 가능한 거시적 우주 세계에서는 그러하다. 미시적으로 따져 본다면 본인이 관련 지식이 있는게 아니라서 잘 모르겠지만, 여기에서 한 가지 본인의 믿음을 이야기하자면, 경험 세계에서 그러한 결과가 나타났다면(즉 원인과 결과로써 설명되는 현상들이 존재하는 "결과"가 발생하였다면) 그것의 "원인"이 그러한 결과를 나타내도록 했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여기에서 그 "원인"이란 당연히 미시 세계이고, 따라서 미시세계 또한 이러한 인과적 관계 하에 놓여 있을 것이라는 게 본인의 생각이다.

 

암튼 이렇게 만물이 원인과 결과에 따라 존재한다면, 인간의 사고 또한 그렇지 않을 리가 없다. 이 말은 즉, 인간이 갖고 있는 이성이니 도덕이니 하는 것도 결국 이러한 인과관계 하에 놓여 있는 물리적 현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의 이성은 당연히 물리적 현상이다. 과거에는 이것이 마치 신성하다거나 인간을 존엄한 존재로 만들어주는 것과 같이 여겨지고, 인간의 이성이 무슨 절대적 가치인 양 판단되기도 했던 걸로 알고 있다. 그러나 현대 과학적으로 살펴보자면, 이성이란 결국 뇌의 복잡하고 방대한 판단작용의 결과이고, 이는 뉴런과 뉴런 간의 전기/화학적 신호전달을 통한 상호작용의 산물이며, 이는 DNA라는 유전인자를 통해 발현된 단백질이라는 화학 물질이다.)

 

(여기서 한 가지 첨언하자면, 나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해내려오는 인간 중심주의 사상이 매우 마음에 안 든다. 인간 또한 다른 동물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단백질 덩어리이고, 단지 대뇌피질이 좀 더 발달하여 고도의 사고능력을 갖춘 덕분에 지구를 지배하게 된 것에 불과하다. 인간의 존엄성 또한 인간이 인간 스스로 그런 개념을 만들어서 내린 것이지, 결코 외부에서 부여된 것이 아니다. 또한 모든 동식물을 포함한 생물들은 근본적으로 무생물과 결코 다를 바가 없다.)

 

인간의 사고 또는 이성이나 의지 등이, 우리가 관찰 가능한 외부세계의 물리적 실체와 마찬가지로 인과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개념이라면, 우리들의 모든 의지는 이러한 인과적 관계 하에 놓여 있을 것이다. 이 말은 다시 말하자면, 우리가 어떠한 생각을 한다는 "결과"에는 그에 합당한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원인이 없다면 결과 또한 없을 것이다.

 

자유 의지란, 어떠한 외부세계에서의 간섭이나 강제 따위가 없는, 순수하게 자발적인 원인에 기한 의지여야 할 것이다. (칸트의 자유/자율 등의 개념을 생각해보면 된다.) 그러나 이는 결국 불가능한 말이다. 외부 자극이 없다면(=원인이 없다면) 생각(=결과) 또한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왜 "생각"("의지"의 바탕이 되는 인간의 사고)의 원인이 반드시 외부에서 올 수밖에 없느냐면, 다음과 같은 상황을 생각해 보면 된다.

 

인간 뇌는(=모든 사고활동이 일어나는 기관) 기본적으로 인간의 생명유지를 위해 존재한다. "뇌" 자체가 어떤 가치를 갖고 그 자체로써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체의 생존이라는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라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기관을 잘 유지하고 작동시키기 위해서 신체에서는 이러한 뇌에 각종 신호를 전달하는 신경다발들이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신경들을 통해 뇌에 외부 자극들이 유입되고, 그러한 자극에 의해 전기적(뉴런 내부)/화학적(시냅스 간 연결) 작용을 통해 대뇌 피질이 그 기능을 발휘하게 되면서 우리가 말하는 "의지"니 "사고"니 하는 것들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컴퓨터와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 컴퓨터를 만들어놓고 어떠한 외부 자극도 가하지 않는다면 컴퓨터 자체로서는 어떠한 기능(=인간 뇌가 사고를 하는 것과 같은)을 할 수 없다. 전원을 연결하고 프로그램을 입력해야 비로소 그 기능을 다 하는 것이다. 생각해 보자. 순수한 뇌 덩어리를 만들어 놓고, 어떠한 외부 자극에서 단절시켜 놓는다면(물론 그 이전에 뇌가 썩겠지만 그런 문제는 일단 제외하고) 그 뇌 속에서 과연 일말의 사고 활동이 일어날 수 있을까? 전혀 아닐 것이다. 인간의 사고 활동이란 철저하게 생물학적인 개념이다.

 

여튼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하는 "생각"이라는 것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외부로부터의 원인에 기한 것일 수밖에 없다. 즉 우리의 사고 또한 외부의 인과관계 하에 놓인 것이라는 말이다. 이를 좀 더 생각해 보자면,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고, 나아가서 어떤 행동을 함에 있어서는 반드시 원인이 따른다는 점을 알 수 있는데, 이를 역으로 생각한다면 어떠한 원인으로써 어떠한 행동 등의 결과가 수반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말은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우리가 어떠한 생각을 하고 어떠한 행동을 하며 그 결과로 어떠한 현상을 발생시키던 간에, 그것은 그것의 원인이 된 어떤 현상으로 인해 발생하도록 예정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1에 1을 더하면 2가 될 것이 예정되어 있다. (앞선 문단을 통해 원인으로써 결과가 수반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원인으로써 결과가 이미 예정되어 있다는 말이다.)

 

이를 이 사회 전체, 나아가서 이 세계 전체로 넓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한 인간의 생성-성장-소멸, 그러한 인간 집단의 생성-소멸, 그 집단들의 사회 현상들의 생성 소멸과 나아가서 생태계의 각종 변화들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은 원인과 결과로써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은 각종 외부적 자극들이 원인이 되어 내 대뇌 피질에서 이러한 사고를 하게 만들었고, 그러한 대뇌 피질이 신체에 명령을 내려 글을 작성하는 결과를 도출하고 있다. 나아가서 그 원인들은 앞선 현상들에 의해 발생한 결과들이고, 그 원인의 원인의 원인의... 수많은 관계들 간의 인과성에 의한 상호작용에 의해 내가 오늘 일어나서 어디를 가고 무엇을 먹고 이 글을 쓰고 심지어 qwerty 키를 누르고 백스페이스를 누르는 등의 일체의 모든 결과들을 이끌어내고 있다는 말이다.

 

결국 이 말은, 이대로 해석하자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은(개별 인간들의 뇌에서 매 순간순간 번쩍이는 사소한 생각들부터 각종 행동들과 그 행동들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무수한 결과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정해져 있다는 말이 된다. 원인에 의해 결과가 예정되어 있고, 그 원인들은 각각 따로따로 떨어져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이리저리 얽혀서 원인이 원인을 낳는 식으로 상호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결국 모든 사건(=결과)들은 필연적으로 그렇게 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이러한 생각에 따르면, 근본적으로 결국 이 우주의 모든 것은 이미 빅뱅의 순간부터 예정되어 있는 것이라는 말이 된다. 그 최초의 "원인"으로써 결국 모든 "결과"들이 발생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나는 근데 이 점에서 약간 회의감이 든다. 과연 모든 사건들은 일말의 "우연성"과 "확률"의 여지가 없이 완벽하게 정해져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고 대답하는 사람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점에 대해 확답을 내리지 못하고 다소 다른 식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나중에 시간이 되면 써 보기로 한다.

 

여하튼 이러한 사실을 통해 알 수 있는 점은, 자유 의지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인간의 의지 또한 생물학적으로 볼 때 대뇌피질의 연산작용이고, 이는 물리적 현상의 일부로서 다른 물리적 객체들과 마찬가지로 이 세계의 인과성 안에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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