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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들은 게이들에 의한 심각한 성범죄에 노출되어 있다

(http://metalgall.net/561281) ----- 남자 변태가 성적인 목적을 갖고 여자화장실에 침입하면 성적목적공공장소침입죄로 처벌받는다 여자화장실은 남자가 없다는 것이 당연한 장소고, 또라이가 아닌 이상 똥오줌마렵다고 여자화장실 들어가는 놈은 없다. 화장실에 들어간 여자들은 그 누구라도 남자들의 시선에서 벗어날 권리을 얻는 것이다 반면에 남자들은 어떠한가? 남자화장실에 들락거리는 수많은 인간들 중에 누가 게이인지도 모르고 수많은 게이들의 시선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그 중에 남자 변태들처럼 성적 목적을 갖고 남자화장실에 들어가는 게이가 없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모르긴 몰라도 옆에서 오줌싸면서 니들 자지크기를 품평해본 게이놈들이 몇 명씩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절대 성적목..

(남들이 추천하는) 어떤 음악을 들었을때 별로일 경우 어떤 행동을 취하는 것이 좋은가

(혹시 이 글을 읽게 될 사람이 있다면, 졸필에 대한 용서를 구한다. 이 글은 지하철 이동 중에 스마트폰으로, 검토과정 없이 작성된 글이다. 가볍게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 일반적으로, 어떤 음악이 지루하거나 구리다고 느껴진다면, 무엇이 되었든 간에 어떤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실제로 그 음악이 별 볼일 없는 경우, 다른 하나는 그 음악을 듣는 자기 자신의 안목이 형편없는 경우(즉 이해를 못하는 경우)이다. 보통은 후자일 확률이 훨씬 크기 마련이다. 음악의 세계는 방대하고, 대다수의 음악 스타일을 마스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특정 세부장르로 제한할 경우에는 어느 정도 가능할 수는 있으나, 정말 웬만한 고수가 아닌 이상 후자의 가능성을 좀 ..

음악 리뷰를 쓰려고 하는 사람은 음악적인 전문성을 구비해야 하는가?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리뷰"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종종 보이곤 한다. 영어로 Review 라고 써 놓으니까 잘 모르는 것일 수도 있는데, Review라는 단어의 뜻은 "평론"이다. 그리고 평론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을 "평론가"라고 한다. 즉, 원래 리뷰라는 것은 평론가들이 쓰는 평론을 말하는 것이다. 물론, 일반적으로는 전문 평론가들이 평론을 쓰지만, 전문적인 평론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전문성을 갖춘 아마추어 평론가들도 평론을 쓰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요즘 같은 인터넷 시대에는 개개인이 손쉽게 자신의 평론을 인터넷 공간에 투고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한 아마추어 평론가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아마추어이든 전문가이든 간에, "평론"..

인과성과 자유의지에 대해

본래 이 주제를 바탕으로 무슨 칸트까지 들먹이며 긴 글을 쓰다가, 존나 쓸데없는 짓 같아서 그냥 간단하게 내 생각만 쓰겠다. 나는 자유의지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그 이유는, 인간을 포함하여 모든 사물은 인과성의 법칙 하에 존재하고 움직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상 만물을 관통하는 공통된 법칙이라면 가장 단순하면서도 보편적인 개념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생각 하에, 나는 인과성(원인과 결과)의 법칙이 그러한 조건에 부합하는 법칙이라고 판단했다. 모든 생성과 소멸, 그 사이에 일어나는 사건들 간에는 원인과 결과가 존재한다. 일단 우리가 관찰 가능한 거시적 우주 세계에서는 그러하다. 미시적으로 따져 본다면 본인이 관련 지식이 있는게 아니라서 잘 모르겠지만, 여기에서 한 가지 본인의 믿음을 이야기하자면..

무신론에 대한 "도덕성" 공격으로 살펴보는 종교의 허황됨

무신론자들에 대한 가장 빈번하고 멍청한 공격이 바로 "도덕성"에 대한 공격일 것이다. 그들의 논지는 이러하다. 모름지기 도덕이라는 것은 예로부터 절대적인 기준이 있었고, 그 기준이 바로 종교이다. 그런데 무신론자들은 그러한 종교를 부정함으로써, 도덕성의 근본마저 부정하고 있다. 그런데 도덕이라는 것은 본래 강제성을 띄고 있는 것으로, 어떠한 기준이 없다면 누구도 그것을 지키려 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무신론은 도덕을 약화시키고 무질서를 옹호한다는 것이다. 종교인들의 이러한 멍청한 열등의식과 인간성에 대한 패배의식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지만, 뜻밖에도 우리 사회의 보편된 통념에는 "하늘" 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있어서, "천벌"을 운운하는 광경을 너무나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비록 개독교따위 신자가 아니더..

믿음이 부족한 자들

우리 사회에는 믿음이 부족한 자가 너무나도 많다. 지금의 상태를 보라. 동성애자들이 판치고, 불신자들이 신자들을 조롱하여 오히려 신실한 신자일수록 억업당하며 살아야 한다. 적그리스도들은 사탄교회를 대놓고 홍보하며, 심지어 기독교의 국가 미국에서조차 당당히 사탄의 교리를 설파한다. 소돔과 고모라가 따로 없다. 지금 이 사회에 의인이 얼마나 있던가? 남색행위로 인해 멸망하여 영어단어 "Sodomy"의 어원이 된 그 소돔과 고모라와 우리 사회가 다른 점이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교회의 상태는 어떤가?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고 외치는 주님의 양들을 "이단" 이니 "민폐" 니 "우리는 저런 또라이들과 다르다" 느니 이딴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고 있다. 정말이지 통탄할 노릇이다. 무릇 주님께서는 ..

매춘(성매매) 행위는 인간성 목적 대우의 원칙에 위배되는가? (인권 침해적인가?)

우선 사족으로 하나 언급할 게 있는데, 본인이 자꾸 무슨 성매매가 어떻니 창녀를 사먹느니 이딴 글 쓴다고 해서 본인이 성매매를 즐겨 한다거나 남창이라거나 여타 비슷한 종류의 인간일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오히려 본인은 성매매는커녕 여자랑은 손잡고 걸어본 적도 없는 쌩 아다새끼에 불과하고, 본인 개인적으로 성매매라는 행위는 상당히 더럽게(도덕적으로 더럽다는게 아니라 비위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할 생각이 없다. 차라리 그 돈 쓸 바에 그냥 집에서 몇십분 딸이나 치는게 100배는 더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칸트는 성매매가 인간성 목적 대우의 원칙을 위반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 양반의 사고방식에 의하면 결혼하지 않은, 혹은 결혼이 전제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성행위 자체가 이미 부도덕한 행위이기 때문..

양성평등 - 결과적 평등이 아닌 절차적 평등의 필요성에 대해

(14. 12. 29. 제목이 다소 부적절한 듯 하여 수정함.) 우선, 본인은 결과적 평등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공산주의자도 아닐 뿐더라, 지극히 상식적으로만 생각해 보더라도 결과적 평등이란 오히려 능력 있는, 노력한 사람들에 대한 역차별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평등이란 절차적 평등이 되어야 하며, 절차적 평등이 제대로 지켜진다면 그 결과는 어찌 되었든 간에 그것은 공평하며 정의로운 것이다. 이러한 절차적 평등에는 당연한 전제 조건이 있는데, 기회 균등의 원칙이 그것이다. 모두에게 있어서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졌을 때, 비로소 절차적 공정함은 그 의의를 갖는다. 그렇다면 이러한 관점에서 현재 몇몇 여성운동가들의 행태를 생각해 보자. 상당히 많은 인간들이, 결과적 평등주의를 외치고 ..

동성혼과 근친혼에 대한 아주 간단한 생각

(참고로 본인이 쓰는 글이 쓸데없이 긴 이유는, 머릿속에 들어 있는 생각을 그대로 적어 옮기기 때문이다. 길이에 상관 없이, "간단한 생각" 카테고리에 올리는 글들은 그 글에 담겨있는 생각 자체가 간단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그리 심각한 고찰이 담겨있는 글이 아니라는 뜻이다.) 우선 들어가기 전에,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호모포비아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도 그러한 성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특히 최근에 있었던 신촌 게이 축제에서 수많은 동성애자들이 혐오스럽고 선정적인 복장과 퍼포먼스를 벌이며 사람들의 혐오감을 증폭시키고 풍기문란행위를 저지르며 민폐를 끼치는 것을 보고 이러한 감정은 더 심해졌다. 그러나 내가 게이를 싫어하는 것은 다분히 감정적인 부분이고, 이러한 제도적인 면을 고찰함에 있어..

예술이란 무엇일까? (결코 심각하고 깊은 글 아님)

본인이 엊그제 베비메탈 리뷰를 쓰면서, 베비메탈이 분명 예술이라고 했다. 일단 본인의 음악 감상행위에 대한 관점의 변화를 보면, 메킹 활동 시절에는 분명 예술은 전부 주관적이고 취존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폭서의 주장에 깊은 감명을 받고 폭서식 논리에 빠졌을 때는 음악은 객관적이며 "객관적으로 좋은" 음악과 "객관적으로 구린" 음악이 존재하며 객관적으로 구린 음악을 듣는 행위는 구린 행위이고 예술 여부는 반드시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하며 취향존중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은, 예술의 감상 행위를 놓고 살펴보면, 주관적인 부분과 객관적인 부분은 분리시켜서 생각할 수 없다고 본다. 예술 작품의 객체 하나하나는 분명 객관적 대상임이 맞기 때문에 이를 무시할 수 없고(소녀시대를 들으면서 베토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