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도 전격소설대상 수상작 "너는 달밤에 빛나고" 스포없는 감상후기




요번에 디앤씨미디어를 통해 국내에 정발된 바로 그 책이다. 난 원래 이런 쪽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에 잘 모르고 있다가, 우연히 코믹존에 들어갔다가 전시되어 있던 책에 끌려서 사게 되었다.


잠시 쓸데없어 보이는 말을 하자면, 작품과 작가는 별개일까? 난 음악감상에 있어서 강한 객관주의를 표방하는 커뮤니티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작가와 작품은 철저하게 별개의 존재라고 여기곤 했다. 작가가 없으면 작품이 나올 수 없는 일이지만, 일단 세상에 나와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작품이라면 작가와 무관하게 그 자체로 해석되고 평가받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심지어, 작가와 작품을 분리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한심스럽다고 여기기까지 했다. 서정주가 친일파라고 해서 그의 모든 작품을 깔보는 사람들 같은..


그러나 최소한, 다들 알다시피 작품 해석의 영역에 있어서 작가는 무시 못할 존재임이 분명하다. 난 이 점을 애써 무시해 왔지만, 이번 작품을 읽으면서 다시금 그 사실을 절감했다. 소설은, 특히 단순히 즐기려고 읽고 쓰는 가벼운 작품이 아니라, 이처럼 삶과 죽음 및 그 사이에 존재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깊은 고뇌와 통찰이 담긴 작품의 경우에는, 반드시 작가의 삶과 인생 및 철학이 녹아들게 되어 있다.


이 이야기를 왜 하냐면, 여기서 작가 개인에 대해 논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이 책을 읽다 보니 이러한 이야기는 작가 본인의 경험에서 우러나지 않고는 나오기 힘든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 정도로 등장인물에, 그 생각과 행동에 생동감과 현실감을 불어넣고 타인으로 하여금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게 하려면, 단순히 어디서 주워듣거나 소설책에서 몇 번 본 이야기로는 매우 쓰기 힘들지 않을까 생각된다.


아니나다를까, 작가 후기를 보니 역시 이 책은 작가 본인의 경험에 기초하고 있다. 데뷔작으로는 믿기 힘들 정도의 수준높은 완성도를 지닌 작품이면서, 그 언어가 굉장히 진솔하고 담백하게 느껴졌던, 작가가 자신의 인생을 오롯이 담아서 만들어낸, 정말 데뷔작에 어울리는 열정과 진심을 느낄 수 있던 그런 책이었다. 


따라서 한편으로, 이 작품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도 들었다. 앞으로 이 작가는 어떤 책을 쓰게 될까? 이 작품이 훌륭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작가 본인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었기 때문이라면, 필연적으로 다른 내용을 담아내야 할 차기작은 어떻게 쓸까? 과연 이 정도의 진솔한 문장과 현실감 있는 내용을 다시 구현할 수 있을까? 궁금한 일이다. 현실적으로도 보자면 예술세계에 있어서 첫 작품에 모든 것을 담아내고 차기작에선 부진한 사례들이 꽤나 많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작품만을 놓고 보자면, "진열되어 있는 장소가 (이 책에게 있어서) 아깝다" 라는 게 솔직한 감상이었다. 장담컨대 그 곳에 진열되어 있는 90% 이상의 나무가 아까운 그 물건들을 모두 합해 봐도 이 작품 하나에 미치지 못한다. 이 작품이 특별히 뭔가 대단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현재 씹덕계에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작품들이 문학적으로 정말 수준미달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일단 라노벨이라는 형식으로 출판된 작품이다. 일본 라노벨 공모전인 전격소설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이고 국내에서는 디앤씨미디어에서 번역 출판된 작품이다. 가격도 요즘 책들 가격이 꽤 비싼데도 불구하고 라노벨 출판사에서 나와서 그런지 만원 초반대로 저렴하다. (대신 종이의 질이 그닥 좋지 못하다. 이 점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그러나 이 사실을 두고, 이 책을 요즘 씹덕들에게 유행하는 대다수의 라노벨 및 만화/애니 등과 같은 선상에서 바라보면 굉장히 곤란하다. 작품의 특성이 요즘 유행하는 씹덕물과는 너무나도 다르고, 오히려 기존 순문학과 훨씬 일치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 작품을 논함에 있어서 비교대상으로 적절한 작가를 고르라고 한다면, 타니가와 나가루가 아니라 무라카미 하루키를 고르는게 좀 더 적절하다는 말이다.


(이는 단순 예시일 뿐, 하루키도 전혀 적절하지 못하다. 그냥 일본 문학계를 대표하는 인지도 높은 사람이기 때문에 한 말일 뿐이다. 노르웨이의 숲이 아주 약간 유사성이 있을 수는 있지만 역시 거의 다르다.)


그 이유가 무엇이냐면, 결정적으로, 이 책은 캐릭터 중심으로 쓰여진 책이 아니다. 이견이 다소 있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뭐니뭐니해도 요즘 씹덕계의 트렌드이자 주류 문화와 대비되는 가장 큰 특징을 고르라고 한다면 바로 "캐릭터 중심주의"이다. 거의 모든 이야기가 캐릭터를 중심으로 쓰여지며, 캐릭터의 특징이야말로 작품의 특징이고 캐릭터야말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캐릭터의 인기가 작품의 인기이며 프렌차이즈의 인기이다. 당연하지만 주류 문화에 속하는 작품들이라고 해도 엄연히 캐릭터가 존재하고 크고 작은 캐릭터성이야 당연히 존재하지만, 그것들과의 차이는 작품을 위한 캐릭터인가 캐릭터를 위한 작품인가를 따져 보면 된다.


그런데 이 작품은 캐릭터성이 희박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상품으로서의 캐릭터"라는 측면이 희박하고, 단지 작중 등장인물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순문학과 씹덕문학을 비교해서 읽다 보면 가장 크게 느낄 수 있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인데, 씹덕문학에서의 등장인물들은 실존하는 인물이라기보다, 기호에 따라 정형화된, "전시해놓고 감상하며 즐기는", 대상화된 어떤 상품으로서의 존재임에 비해, 순문학에서의 등장인물은 작품 내에서 살아 숨쉬는 실제 인간처럼 느껴진다.


주류 씹덕문학들은 대상화된 캐릭터를 위해 존재하며, 작품 내에서 전하고자 하는 주제나 철학이 있다 하더라도 이 또한 결국 그 캐릭터를 위해서 쓰여지게 된다. 그리고 그 캐릭터는 실제 인간과는 다르기 때문에, 그 캐릭터들이 아무리 깊은 고뇌를 겪고, 또 작중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아무리 진중하고 깊은 고찰을 요한다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타자화된 대상을 바라보고 "소비"하는 시점에 있는 독자로서는 그것들을 100% 온전히 체현하기 힘들다.


따라서 그 점에서 이 작품은 타 씹덕문학들에 비해 강점을 가지며, 소위 "만화책방"에 꽂혀 있는 다른 작품들과 차별화된다. 사실 이는 대단하거나 특별할 것도 없다. 제대로 된 순문학이라면 그냥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작품이 진열되어 있는 장소와, 출판한 출판사로 인해 이 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단지 그것만으로 그친다면 굳이 이 작품 자체를 언급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캐릭터의 묘사와 소비에 열중하는 행위에서 벗어난 이 작품은, 남은 지면을 치밀한 생동감으로 채운다.


이 작품에 대한 평가를 찾아보다가, "구성이 난잡하다"라는 혹평을 봤다. 이야기의 전개가 왜 저러한지 이해하지 못하고, 주제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자꾸 이것저것 뻗어나감으로써 플롯의 진행이 미흡하다는 평이었다. 난 그걸 보고, "아 이 사람은 정말 라노벨만 보던 사람인가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왜냐? 단순한 하나의 특정한 이야기의 전달에만 집중하는 것은, 그만큼 작품의 깊이가 얕고 빠른 소비를 중점으로 내세우는 라노벨(및 기타 저급한 소설들)에서나 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문학작품은, (당연히 단편작을 제외하면)거의 절대 그런 식으로 단편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이야기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최대한 현실적으로 주변을 묘사하며 여러 사건을 그려 나간다. 여기서 소설가의 실력이란, 그렇게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면서, 그 재료가 낭비되지 않도록 적절히 배치하고 쓰일 수 있게 조율하는 능력에서 나온다. 그 점에서 이 작가는 탁월하고, "실력이 있다"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 작품은 사실 그리 독창적인 건 아니고, 얼핏 보면 간단하기까지 하다. 소년이 소녀를 만난다. 건강한 소년과 불치병이 걸린 소녀. 그리고 그 소년의 친구. 가족들. 어디선가 흔하게 보던 소재들이다. 주제 또한 간단하게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상실과 아픔을 딛고 함께 살아가는 삶" 정도 되는데, 전혀 특별하거나 새로운 메세지가 아니다. 충분히 식상하다고 할 수 있는 요소들이다. 그러나 같은 재료라고 하더라도 요리사에 따라 결과물이 천차만별이듯, 중요한 것은 얼마나 완성도 있는 작품을 쓰고 이를 바탕으로 독자들의 공감을 끌어내는지에 있다.


작가는 지면을 거의 낭비하지 않고, 그 공간을 최대한 "오카다 타쿠야"라고 하는 소년의 삶을 옮겨담기 위해 노력한다. 다양한 인물, 다양한 사건들이 등장하는데, 놀랄 정도로 치밀하게 역할을 분담시키고 조율하고 있다. 이야기의 전개를 위한 부분, 분위기의 전달을 위한 부분, 주제의 은유적 전달을 위한 장치 등. 뻔히 보이는 복선보다는 주인공이라는 인물과 삶 및 주변인물을 표현하기 위한 암시적 장치로 쓰이는 부분이 많은데, 예를 들자면 스노우볼이나 거북이(카메노스케), 오셀로 게임 등등이 있다. 작품을 다 읽고 나면 작가가 여기서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것인지, 어떤 의미에서 이 장면들을 삽입했던 것인지 이해가 되면서 상당히 감탄하게 되는 부분이 많다. 무수한 퇴고를 통한 노력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웬만하면 두 번 감상할 것을 추천한다.


문학적인 감각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나카하라 츄야의 "춘일광상"은 아예 작품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바와 밀접하게 연결되는 소재로, 이 시의 내용 전문을 찾아본다면 작가가 작품을 어떻게 마무리지을지 예상되기도 한다. 또 작가는 작중 가상의 작가와 작품을 창작해내기도 하는데, 이 또한 작품의 심상을 나타내고 내적 주제를 함축적으로 묘사하는 중요한 문학적 장치로서 기능한다. 작품 전체적으로 마치 시와 같은 독특한 향취가 풍겨오는데, 문장의 맛을 사랑하는 이러한 독특한 특성은 문학을 사랑하는 작가들에게서 종종 느낄 수 있는 특징이다. 누구나 다 아는 고전 작품인 "로미오와 줄리엣"을 활용한 연출도 뛰어난데, 한 번 쓰이고 말 줄 알았던 이 장치는 최후반부까지 은유적 암시로써 작용하며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작품의 문체는 굉장히 담담한데, 이 또한 특징이라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 씹덕 및 대중소설이라고 하면 작중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격정적인 문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이 작품은 1인칭 주인공 시점임에도 고전소설처럼 상당히 담담한 문체를 유지하며, 이러한 분위기가 마치 수필을 읽는 듯한 묘한 느낌에 빠져들게 만든다. 마치 실제로 있었던 일, 실제 경험한 일을 사실대로 담담하게 써 내려간 듯한 느낌으로, 상당히 사실적인 인상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이 책은 원문이 아니라 번역본이므로, 이는 번역가의 문체가 반영된 것일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여담으로 번역의 질은 이 정도면 꽤 잘 된 축에 속한다고 보는데, 단적으로 국산 라노벨 "작가"들의 문장력보다 훨씬 좋은 문장을 사용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설명이 가능할 듯 하다.


(다만.. 최후반부 클라이막스에 가면 반말과 존댓말이 섞여 나오는 부분이 있다. 원문도 아마 이렇게 되어 있겠지만, 이걸 굳이 그대로 옮겨야 했는지는 의문이다. 한국어 독자에게 있어서 다소 어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작품이 단점이 없는 소설인가 하면, 안타깝게도 그렇지는 못하다.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핵심소재인 발광병(發光病)이라고 하는 가상의 불치병, 밤에 달빛을 쐬면 몸에서 옅은 빛이 나는 게 특징인 이 병은, 작품명의 의미이기도 하고, 작중 아름다운 분위기를 조성하는 장치이기도 하며, 삶과 죽음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작품 고유의 독특한 시적 장치이기도 하다. 하지만 문제는, 이것으로 끝이라는 점이다. 이 이상의 어떠한 설득력도 갖고 있지 못한 소재이며, 냉정하게 말해서 현존하는 불치병을 소재로 삼는 데 어려움과 한계를 느낀 작가가 그로 인해 만들어낸 작가 편의주의적 산물이라는 느낌을 배제하기 힘들다.


꽤 길게 글을 썼지만, 개인적인 감상 결론은 결국 이것이다. 사실 꽤 오랜만에 제대로 된 문학작품을 감상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 요새는 책을 잘 안 읽기도 하고, 읽더라도 필독도서 위주로 읽을 뿐 현대소설은 상당히 오랜만에 읽었다. 그도 그럴 것이, 라노벨이 아니라 순문학이라고 하더라도 사실 그저 그런 작품이 너무 많아서 읽고 싶은 마음 자체가 크게 들지 않았다. 라노벨은 평소 읽는 시리즈가 있기 때문에 관성적으로 한두 권씩 구입하며 읽곤 했는데, 객관적으로 너무나도 떨어지는 필력과 문학적 수준으로 인해 읽을 때마다 이런 걸 돈 주고 사는게 옳은 행동인가 하는 회의감이 짙게 들곤 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책은 다르다. 확실히 돈 주고 사서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할 만 하다. 내 개인적인 경험으로 인해 주관적 판단기준이 너무 낮아져 있어서 그럴 지 모르겠지만, 한가지 확실한 건 "그런 장소"에 진열되긴 아까운 책임은 분명해 보인다. 미운 오리 새끼라고 할까.


그렇다고 이 책이 억지 무게 잡는 순문학처럼 딱딱하고 접근성이 떨어지는 책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어디까지나 접근성이 높고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대중소설이면서, 작품성도 잃지 않은 책으로 봐야 할 듯 하다. (물론 소위 캐릭터성으로 대표되는 씹덕계에서의 상품성은 사실상 없는 책이다.) 앞에도 언급했지만 당장 누구나 한번쯤 읽어 봤을 노르웨이의 숲 같은 책보다도 훨씬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말하자면 누구나 가볍게(부담 없이) 고르고 읽을 수 있으면서, 내용(작품성)까지 가벼운 책은 아니라고 할까. 어찌 보면 "(문학적으로) 좋은 라이트노벨"이라는 의미에 가장 부합하는 게 이런 책일지 모르겠다. 물론 현실은 문학성이 아니라 상품성으로 평가받는 것이 라이트노벨 시장이고, 이 책이 진열되어 있는 서점은 절대다수가 그런 책으로 채워져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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