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장히 괜찮은 곡을 발굴해서 소개함: SpringHead - My Heart Story 3부작



한 줄 요약: 이런 높은 퀄리티의 훌륭한 곡들이 인기를 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본 필자는 보컬로이드 노래들을 별로 안 좋아한다. 음악 자체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보컬로이드 음색 자체가 굉장히 맘에 안 들기 때문이다. 보컬로이드 특유의 느낌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아무리 들어도 매우 어색하고 인공적인 느낌이 드는 그 목소리는 도저히 적응이 되지 않는다. 특히 노래라는게 감정의 완급조절 같은게 필요한데, 보컬로이드는 음의 고저나 세기의 강약 정도만 존재하고 감정표현이 매우 힘들어서 노래를 듣는 맛이 나지를 않는다.


따라서 우타이테가 부른 버전이 아니면 애초에 보컬로이드 노래 자체를 별로 듣지를 않는데다, 관련 앨범도 아직 산 적이 없다. 그런데, 정말로 아주 우연한 계기로 인해 본 앨범, 즉 SpringHead (스프링헤드, 현재는 Envy 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의 첫번째 시유 앨범인 "My Heart" 라는 앨범의 미리듣기를 듣게 되었는데, 거기서 이 3부작을 듣고 정말 깜짝 놀랐다. 다시 강조한다. 정말 깜짝 놀랐다. 얼마나 놀랐는지, 즉시 관련 음원을 검색해 봤더니 위와 같이 유튜브에 올라온 버전이 있어서 들어 봤고(사실 지금은 유튜브에 앨범 전곡이 올라와 있다), 다 청취하고 나서는 진짜 상상 이상의 퀄리티에 감탄 또 감탄했다.


감히 말한다. 필자가 현재까지 들어본 국내 동인음악 중에 가히 최고 수준의 퀄리티를 가진 곡들 중의 하나이다. 동인음악 뿐만이 아니라, 웬만한 인디밴드 통틀어서 고려해 봐도 굉장히 수준급이다. 보컬로이드 곡이라는 걸 감안해도 충분히 상당하다.


노래는 3부작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각의 곡은 약 4~5분 정도의 평균적인 길이로 되어 있고, 1-2-3번 트랙이 각각 발단-전개-절정 정도의 자연스러운 구성으로 되어 있어서 딱 3곡 단위로 감상하기 적절하도록 되어 있다. 보통 이러한 곡들이 대곡 지향적인 컨셉으로 나가는 경우를 많이 봤는데, 본 3부작은 복잡한 구조를 바탕으로 대곡으로 작곡하는 대신에 비교적 평범한 절후렴 구조를 바탕으로 5분 정도의 평범한 길이로 구성되어 있다.


대곡 지향적인 경우 복잡하고 정교한 구조를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분위기와 주제를 표현하는 게 핵심이겠지만, 이렇게 기본적인 곡의 경우에는 단지 멜로디와 연주만을 바탕으로 그것을 해내야만 한다. 대곡 지향적인 경우에 비해 좀 더 듣기는 쉽겠지만 "에픽성"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다는 단점이 존재하는데, 이 곡(들)은 정말 진중하고 탁월한 멜로디와 심포닉하고 강렬한, 그리고 잘 짜여진 연주를 바탕으로 이를 매우 훌륭하게 해내고 있다. 필자가 이 곡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데, 바로 "진중하고 비장하고 장엄한 분위기"를, 일반적인 구조의 3개의 곡을 통해 매우 효과적으로 구성하고 전달한다.


본 곡들의 장르는 고딕 메탈이라고 되어 있는데, 솔직히 필자는 고딕 메탈이 뭔지 잘 모른다. 따라서 자세히 이야기할 것은 없지만, 최소한 필자의 부족한 식견을 바탕으로 살펴보자면, 여태껏 필자가 들어봤던 고딕 메탈들은 대부분 긴 길이를 바탕으로 복잡한 구성을 하고 있었다. 가장 최근에 들어봤던 음악은 다크 미러 오브 트레저디(Dart Mirror Ov Tragedy)라는 한국의 심포닉/고딕메탈 밴드의 14년 신보였는데, 솔직하게 말해서 음악을 집중해서 듣고 있기 힘들었다. 그래서 그냥 그런 장르는 필자에게 별로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넘겼는데, 이번에 들어본 이 곡들은 고딕 메탈임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구조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 듣기에 부담스럽지 않다. 그러면서도 위에서 설명한 것 처럼 효과적으로 에픽성을 전달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히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곡들의 특징을 보자면, 우선 굉장히 심포닉하다. 장르 특성상 당연하겠지만, 여러 관현악들을 사용하기도 하면서 심포닉한 특징을 구사하고 있는데, 배경에 깔리는 일렉기타 연주는 멜로디컬한 리프를 구사하며 곡의 핵심을 맏기도 하지만, 관현악이 등장하는 부분에서는 보통 리프보다는 배경에 깔리는 연주를 하면서 무거운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쓰인다.(예컨대 1번 트랙을 들어 보면 2절 중간부분에 1절과는 달리 무겁게 긁는 기타연주가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점진적으로 무거워지는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한 것이라고 본다.) 보컬 멜로디는 매우 무겁고 진지한데, 이 멜로디를 바탕으로 절후렴을 구성하고 곡의 완급 조절을 통해 5분여의 짧은 시간 내에 하나의 주제 단락을 전달한다.


다만, 여기서 하나의 "주제 단락"은 그 자체로 완결성을 갖기 보다는 앞 곡에서 주제를 이어받고 뒷 곡에 넘겨주는 하나의 단위 정도로 존재한다. 즉, 하나의 곡으로서는 감정 단위에서 독립성을 갖지 않고, 3곡이 전부 이어질 때 하나의 이야기가 완결성을 갖도록 되어 있다. 즉 1번 트랙은 발단-전개의 역할을 하며 끝내고, 이를 이어받은 2번 트랙이 감정을 더 고조시키고, 3번트랙이 강렬하게 폭발하는 클라이막스를 구성한다. 각각의 트랙들은 절후렴 구조에 매우 충실한 전개구조를 갖고 있는데, 절후렴이 전개되면서 감정을 조성하고 이를 브릿지의 기타솔로나 새 보컬 파트 등이 강하게 고조시킨 다음 마무리 후렴구나 코다를 통해 폭발시키는 기본적인 구조에 충실하고 있다.


1번과 2번 트랙에서의 보컬 파트는 클린 보컬과 하쉬 보컬이 교차되면서 나타나는데, 보통 클린 보컬은 감정을 절제하며 전개시키고 하쉬보컬은 이를 받아서 강하게 고조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구조를 가진 익스트림 메탈 등에서 보통 볼 수 있는 방식이기도 한데, 하쉬 보컬을 억지로 집어넣었다거나 하는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없이 상당히 어울리게 처리하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완성도가 높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 3번트랙은 하쉬보컬이 없이 클린보컬만으로 전개되는데, 3부작에서 절정 부분을 차지하며 가장 비장한 트랙이기 때문에, 오히려 이러한 클린보컬만의 전개가 감정을 직선적으로 폭발시키는 느낌을 들게 하기 때문에 상당히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된다.


전체적으로 5분여의 짧은 3곡의 연결을 이용해서 심포닉한 연주를 구사하고 강렬한 멜로디를 전개하며, 이를 통해 매우 진중하고 비장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이 상당히 일품이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전개에서 특별한 단점을 찾기는 힘들고, 곡의 주제는 강한 호소력을 전달한다. 전체적인 연주의 완성도와 보컬 멜로디와의 짜임새, 이를 통한 주제 표현과 감정을 이동시키는 과정을 살펴 보면, 결코 대충 만든 곡이 아니라 굉장한 완성도를 자랑하는 곡임을 알 수 있다. 관현악을 전면적으로 사용하면서도 유치해지거나 부담스럽지 않고 헤비한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작곡가의 기본기가 매우 탄탄하다는 점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작곡 상의 유일한 단점이라면, 곡의 길이가 짧은 편이고 구조가 단순하기 때문에 다차원적인 깊이를 보유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래, 반복해서 듣다 보면 질릴 수 있는 위험이 존재한다. 그러나 필자가 최근 들어본 다른 시유 곡의 경우 지나치게 프로그레시브 지향적인 작곡을 하는 바람에 심각하게 듣기가 힘들었는데, 이를 통해 살펴볼 때 이 곡처럼 기본적인 구조를 바탕으로 멜로디와 분위기로 승부를 보는 방식이 접근성이나 완성도 측면에는 이득이 되기도 한다. 특히 본 곡은 멜로디 구성이 상당히 잘, 깔끔하게 짜여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구조 내에서 최선의 결과를 내 주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본 3부작 곡은 작곡 상 상당한 완성도를 보유한 명곡이라고 생각하지만, 불행하게도 "보컬로이드" 라는 형식 자체가 갖는 치명적인 단점 또한 그대로 보유하고 있다. 이미 서두에 언급했지만, 본 곡 또한 그러한 그러한 문제점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물론 본 곡은 시유 치고는 상당히 좋은 보컬을 들려준다고는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보컬로이드 치고는" 좋다는 뜻이지, 사람 목소리와 같은 퀄리티를 내 준다는 말이 아니다. 본 필자가 이 곡을 듣고 놀란 이유도, "보컬로이드임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작곡 자체가 그 단점을 무시할 정도로 탄탄했기 때문이지, 보컬로이드의 단점을 극복했기 때문이 아니다.


만약 본 곡을 실제 사람이 불렀을 경우, 퀄리티가 최소 몇 배는 더 상승했을 것이다. 그만큼 본 곡의 보컬 표현에는 상당한 아쉬움이 존재한다. 이는 현재로서는 보컬로이드를 사용한 이상 더 이상 어쩔 수가 없는 부분이다. 조용한 부분과 고조되는 부분 사이의 완급을 잘 조절하고, 클라이막스에서 강렬한 감정을 표출해야 호소력 있는 보컬 퍼포먼스가 가능한데, 보컬로이드는 이러한 부분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사실 그렇기 때문에, 보컬로이드가 대중적인 인기를 끌지 못하고 소수 매니아들의 전유물로 전락한 것이라고 본다.) 본 곡 뿐만 아니라 이 곡이 수록된 앨범 내 다른 곡들도 마찬가지인데, 마지막에 보면 실제 사람의 목소리로 부른 커버곡이 2개 수록되어 있다. 그 곡들과 앞부분의 보컬로이드 트랙들을 비교해 보면 정말 상당한 차이가 느껴진다.


이 곡에서 그러한 표현을 하기 위해서는 창법과 음색, 호흡과 강약을 적절히 조절해 가면서 불러야 하는데, 그러한 표현이 이루어지지 못하기 때문에 보컬 목소리 자체에서 큰 호소력을 느끼기 힘들고 이상한 거부감이 느껴진다. 또한 발음의 연결도 문제인데, 특히 2번 트랙의 전반부 조용한 부분을 들어 보면 가사 표현이 상당히 어색하다는 것이 느껴지고, 1번 트랙도 다소 그런 부분이 존재한다. 본 곡을 듣고 감동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은 오로지 멜로디와 작곡 그 자체일 뿐, 목소리가 아닌 것이다. 따라서 본 곡을 실제 사람이 부른 버전이 없다는 것은 정말로 아쉽다.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곡은 보컬로이드라는 재료를 바탕으로, 그리고 전형적인 절후렴 구조의 5분여의 기본적인 구조 하에서 시도하고 구현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결과물을 내 준 상당한 완성도의 명곡이라고 생각한다. 캐치하면서도 결코 유치하지 않고 매우 진지한 탁월한 멜로디감각, 곡의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조성하는 작곡을 바탕으로 비장하면서 웅장한 느낌을 매우 잘 살린 훌륭한 곡을 만들어 내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본 곡은 커다란 인기를 끌지 못했던 것 같다. 한국에서 나온 보컬로이드 곡이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인터넷에 찾아봐도 관련 글들도 별로 없고 고딕메탈 팬들에게도 별로 알려지지 않은 듯 하다. 정말로 안타까운 부분이다.


이처럼 높은 퀄리티를 가진 곡들이야말로 널리 인기를 끌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재생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은 분위기의 곡이라서 그런지, 보컬로이드 팬덤 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지는 못했던 것 같다. 물론 외부로 나올 경우에는 보컬로이드라는 형식 자체 때문에 큰 인기를 끌지 못했을 것이다. 필자처럼 보컬로이드라는 사실 자체에 이미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고, 그게 아니더라도 보컬로이드의 인공적인 목소리 자체가 듣자마자 불쾌감을 조성하기도 하기 때문에, 작곡상의 탁월한 면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심지어, 인터넷에 찾아보니 일러스트가 마음에 안 든다고 안 듣겠다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하니, 정말 통탄할 일이다.


그래서 본 필자는, 비록 나온지 몇년 된 곡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렇게 따로 부각시키는 글을 쓰고자 한다. 이런 완성도의 곡이 널리 알려져야먄 앞으로도 이러한, 또는 이 이상의 완성도를 자랑하는 곡이 더 많이 나올 것이다. 훌륭한 곡을 만들어준 작곡가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는 마음과 함께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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